2014. 11. 30.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43)

  본문 : 행 3:3-5   

  제목 :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시고 신약의 교회가 시작될 때의 이야기입니다. 

  성전 미문이라고 하는 문 앞에 늘 와서 구걸을 하는 거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날 때부터 걸을 수 없는 사람이었고 지금 나이가 40세이니까 40년 동안을 일어날 수도 없고 걸을 수도 없는 상태로 살았습니다.

  누가 엎어다가 성전 문 앞에 앉혀놓으면 한 푼 주세요. 하고 구걸을 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 마침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시간이 되어서 성전으로 올라가다가 그 앞을 지나가면서 그를 보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을 해서 그 사람을 고쳐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기사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신앙이 정상적인가 비정상적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적으로 믿지 않는 자유주의자들은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이것은 거짓말이거나 성경 기자가 잘못보고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느냐는 것입니다.

  정말로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그렇게 해 보라고 합니다.


  반대로 너무 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대로 흉내를 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픈 사람들을 만나면 무조건 외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날지어다. 라고 명령을 합니다.

  그래서 안 되면 고침 받을 사람이 믿음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하고 넘어갑니다. 

  가끔은 엉터리로 서로 짜고 조작을 하여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처럼 하는 사기꾼도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성경을 대하는 태도가 올바른 태도가 되어야 합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적들은 다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일어난 기적들은 우리들이 보고 배우고 따라하라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 기적의 당사자들이 기록한 성경 말씀이 사실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런 기적적인 일들을 역사 속에서 일으키시고 보여주시고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는 그런 기적을 표적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표적이고 예수님이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는 것도 하나의 표적입니다.

  이제 베드로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설교를 할 것인데 그 설교가 사실임을 입증해주는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 한 가지는 이런 표적들 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거기에도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 앉아서 구걸을 하는 사람이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육신의 병든 모습을 가지고 우리의 영적으로 병든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육신을 고쳐주면서 우리의 영적인 병을 고쳐주시는 예수님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기 직전의 상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앉은뱅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있었고.

  베드로와 요한이 그를 주목하여 보면서 우리를 보라고 하였고 

  그러자 그도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말에는 다 보았다고 번역을 했지만 헬라어에서는 그 의미가 조금씩 다른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 본다는 의미들을 통하여 말씀에 들어 있는 교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본문 3절에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쓰인 헬라어는 에이도(εἴδω)이고 영어성경은 see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냥 우리가 흔히 쓰는 대로 보통으로 ‘보다’라는 뜻입니다.


  앉은뱅이가(앉은뱅이라는 말이 장애인을 낮잡아서 부르는 말이라 좀 미안하지만 여기서는 영적인 우리를 지칭하는 말이고 특정인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해해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볼 때 특별하게 본 것이 아닙니다.

  그저 수많은 사람들이 성전을 들락거리고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로 보는 것이고 아무런 의미 없이 그냥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나 권세가 있고 돈이 많아 보이는 사람들은 특별히 좀 더 얻을까하여 유심히 바라보았겠지만 당시 베드로와 요한은 권력자도 아니고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허술한 옷을 입은 보통사람이었기에 별로 특별한 눈으로 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몇 살부터 성전 미문에서 구걸을 했는지 모르지만 오랜 세월 동안 거기서 거기 드나드는 사람만 보면서 그들에게 한두 푼 얻으려고 하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에 태어나서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보고 사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거지같이 태어나서 거지같은 인생들을 바라보고 살면 평생 거지같은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보는 것만 알고 자기가 보는 것 내에서만 살아갑니다.


  그래서 자녀교육에 깊은 뜻을 가진 사람들은 자녀들의 시야를 고쳐주기 위해서 좋은 환경으로 이사를 하기도 하고 외국에 여행을 보내기도 하고 유학을 시켜서 공부를 하게 하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우리나라가 못살고 환경도 안 좋고 반대로 외국에는 잘 살고 환경도 좋아서 유학을 보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가 더 잘살고 더 좋은 환경을 가졌기 때문에 유학을 보낼 필요는 없습니다.

  밖에서 오히려 우리와 다른 문화나 배우고 마약이나 혼잡한 이성관계만 배우고 와서 더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으니까 조심을 해야 합니다.


  영적인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밖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는 사람들은 그것 밖에 모릅니다.

  온통 하나님이 없다고 가르치는 교육만 받고 그런 문화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발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상에 깊이 빠질수록 하나님은 없어지고 온갖 죄악들로 가득 찬 세상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교회들에 거짓선생들이 들어와서 잘못된 것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아닌 엉터리를 가르치는데 어떻게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처럼 살지 않고 세상 사람들처럼 사는데 그 속에서 어떻게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님들이 교회에서는 믿습니다. 아멘하고 집에 가서는 다른 사람이 되는데 그것을 본 자녀들이 어떻게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 읽는 것도 중요하고 성경공부도 중요하고 설교를 듣는 것도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부모님이 우리의 신앙 선배가 어떻게 사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입으로 외치는 진리보다 삶속에서 실천되는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 나무나 중요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교회는 그래도 주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학생들이 그것을 보고 자란다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는 삶이 어떤 삶인가를 보고 사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런 우리의 삶을 보고 앞으로 더 많은 아이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줄 믿습니다.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본문 4절에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에서 “주목하여”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아테니조(ατενίζω)이고 영어성경에서는 looked straight로 번역을 했습니다.

  이 단어의 뜻은 “주시하다, 응시하다, 뚫어지게 바라보다”입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이르되 우리를 보라하니”에서 “우리를 보라”는 헬라어로 블레포(βλέπω)이고 영어성경은 “Look at us”로 번역을 했습니다.

  “보다 주의하다 조심하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그냥 무심코 보라는 말이 아니라 주의를 해서 집중해서 보라는 뜻입니다.


  그 앉은뱅이는 무심코 지나가는 행인으로 베드로와 요한을 보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주목하여 주시해서 뚫어지게 그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그가 보는 것처럼 그냥 무심코 보고 지나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매일 거기 나와서 구걸하는 사람이었고 당시의 형편으로 보아서 그렇게 구걸해서 먹고 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에 무심코 지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베드로와 요한이 그를 관심을 기자고 뚫어지게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불쌍한 처지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그 형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보고 그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한 번의 눈길이 그를 그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너무나 중요한 눈길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누군가가 그런 동정의 눈길로 나를 불쌍히 여기는 눈길로 도와주고자 하는 눈길로 바라보아 준다면 나도 멋있는 삶을 살 수 있었는데 그런 사람이 없어서 늘 그렇게 어렵고 힘든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많은 재능들을 가지고 있고 큰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서 그러고 있습니다.

  그런 재능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으면 누군가가 보아주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는데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야 말로 하면 무엇 하겠습니까?

  오히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면 볼수록 점검해 보면 볼수록 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일뿐이고 나약한 존재일 뿐인데 누가 나를 보아준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나약하고 못난 나를 좋은 눈으로 보아주고 그래도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우리에게 눈길을 주신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온 세상을 비추는 환한 빛이시고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하신 분이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주목하여 보신다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조금도 없으신 너무나 깨끗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죄 많고 흠이 많고 더럽기 짝이 없는 무능한 나를 주목하고 보신다는 것입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나를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밝혀 벌을 주려고 나를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긍휼의 눈으로 사랑의 눈으로 용서의 눈으로 나를 구원하시려는 눈으로 나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흉악한지도 아시고 내가 얼마나 연약한지도 다 아시고 나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기 위해서 나를 보셨다는 것입니다.


  창세전에 이미 나를 보시고 아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을 해 주셨기 때문에 나를 보시고 나를 부르시고 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려고 나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이 그 앉은뱅이에게 요구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요구합니다.

  “나를 보아라.” 

  그냥 보지 말고 주의 깊게 집중하여 내가 너를 보는 것처럼 너도 나를 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는 처음에 영어학교로 시작했습니다.

  C.M.S. 영어 학교였는데 그 교재 회화편 제 1권이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Look at me. Stand up. Walk over here. Walk over there.입니다.

  나를 보아라! 일어서라! 이리 걸어와라! 저리 걸어가라! 입니다.

  아이들하고 수천 번 수만 번 했던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하나님께서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인지 몰랐습니다.

  우리 인생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 사람들이 우리에게 처음으로 쓰는 말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음성으로는 듣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아라. 일어나라. 이리 걸어와라. 저리 걸어가라.


  세상만 보지 말고 나를 바라보아라.

  네 욕심 네 생각 네 고집 이런 것 버리고 나를 바라보아라.

  그리고 그 죄악 된 자리에서 일어나라.

  그 형벌의 자리 그 저주의 자리 그 멸망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거기 희망도 없고 보람도 없고 아무 쓸모도 없는 그런 곳에서 일어나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리 걸어오라고 하십니다.

  주님 앞으로 걸어 나오시라는 것입니다.

  진리 앞으로 영원한 생명 앞으로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 앞으로 걸어 나오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속이고 우리의 제물을 빼앗기 위해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빼앗기 위해서 온갖 이상한 것들을 보여주며 유혹을 합니다.

  우리의 시선이 그런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면 처음에는 작은 것들을 얻게 되지만 그 미끼 때문에 우리의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우리의 영워한 생명까지 빼앗기게 됩니다.


  나를 아시고 나를 선택하시고 나를 구원해주시려는 하나님 앞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 주목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죄악 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 앞으로 걸어 나오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본문 5절에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바라보거늘”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에페코(ἐπέχω)이고 영어성경은  attention 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보다, 바라보다, 굳게 잡다, 매달리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무심코 보았으나 집중해서 보라는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듣고 그 말대로 집중해서 매달리는 심정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그들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았다고 했는데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뭔가 보통 한두 푼 얻는 것보다 좀 큰돈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지긋지긋한 이놈의 거지생활 청산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평생 먹고 살 큰돈을 바라고 집중해서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보라마라 할 것 없이 몇 푼 던져주고 가는데 나를 보라고까지 하니까 뭔가 큰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 사람도 들리는 소문에 의해서 예수님에 관한 소문도 들었을 것이고 예수님의 제자들에 관한 소식도 들었을 것이고 예수님과 제자들의 주변에 일어났던 기적적인 이야기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 소문대로 기적 같은 일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줄 기대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매달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았든지 간에 이 사람은 아주 간절한 마음으로 뭔가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았고 그 결과 그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그에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겠지만 이 사람은 기적적으로 일어나 걸었을 뿐만 아니라 사도들과 함께 성전에 걸어들어 갔으며 거기서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사실입니다.


  단순히 일어나서 걸어 다니는 건강한 사람만 된 것이 아니라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의 본분을 되찾은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복도 받았지만 영적인 복도 함께 받는 놀라운 일이 이 사람에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도 나를 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일어나서 하나님께 나오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런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다시 세상의 복을 더 사모하고 산다면 그것은 우리를 불러주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죄악 된 세상에서 세상의 쾌락과 세상의 행복에서 불러내어 신령한 복을 받는 사람들이 되게 해 주셨는데 다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백성의 본분인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외면하고 어떻게 하든지 세상의 부귀영화를 바라고 그것을 위해서 목을 매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엇을 얻으려고 여기 오셨습니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은혜 받은 사람이 해야 할 가장 귀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목하여 보아주셨습니다.

  우리를 불러 주시고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복된 자리에 오게 해 주셨습니다.


  세상 것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 주목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만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받기를 기대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