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1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32)
본문 : 행 2:37-39
제목 : 이 약속은.
“37.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다르고 우리가 가는 길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엉뚱한 길로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불신의 무리들이 이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많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이 세상의 모든 분야를 거의 다 장악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 그들의 삶의 원리, 그들의 학문, 그들의 문화, 그들의 도덕, 그들이 세상을 사는 목적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그 가운데서 우리는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뿐만 아니라 우리가 모여 있는 교회 내에도 온갖 거짓 선생들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참된 신앙을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교회를 이용해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무지한 지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 개인의 경험이나 생각을 교리화 해서 교회를 엉뚱한 길로 인도하는 지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엉뚱한 길로 가기 쉽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그 중심에 누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인 개혁주의 신앙은 철저하게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것인데 그것을 바꾸어서 사람을 그 중심에 놓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사람의 자유를 위해서 교회가 신앙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중심을 개혁주의라고 하고 인간중심을 자유주의라고 합니다.
사람들 편에서 볼 때 인간중심이 자유주의가 너무나 좋아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모인 교회에서 하나님보다 인간이 더 앞서고 하나님의 뜻보다는 인간의 생각이 더 앞서고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인간의 행복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 인간이 좀 더 행복하고 우리 인간이 좀 더 잘 살고 우리 인간이 좀 더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종교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자유주의 신앙이 정말로 좋아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따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길을 따라 구원의 길로 가는 곳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하나님중심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어떤 것들은 한 60점 정도면 합격을 시켜주고 그 일을 하는데 지장이 없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들은 철저하게 100%가 되어야 되는 일들도 있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를 나가는데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준비가 되었는데 배 밑에 아주 작은 구멍하나를 방치해 두고 출항을 했다면 그 배는 아주 작은 구멍하나 때문에 바다 속에 가라앉고 말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는데 작은 부품 하나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으로 추락을 하고 사고를 내는 경우기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 멸망으로 달려가는 세상에서 하나님나라로 향해서 가는 방주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아주 철두철미하게 정비를 해야 합니다.
작은 구멍이 하나 있어도 안 되고 조금만 방향을 잘못 잡아도 안 됩니다.
거짓 선생이 있어서도 안 되고 욕심 많은 지도자가 있어도 안 됩니다.
작은 교리하나가 잘못된 성경해석 하나가 우리를 엉뚱한 길로 가게 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검증을 하고 철저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바른길을 가고 있는가?
우리가 철저하게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 사도행전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여기가 신약교회 신앙의 기초이고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신약의 교회가 처음 시작이 될 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그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을 받은 베드로가 일어서서 신약교회의 첫 설교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해 주셨다는 것이 설교의 요지였습니다.
그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평소와 다른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말해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렇게 큰 이적들을 보여주어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다른 반응을 나타낸 것입니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셨기 때문에 이런 기적적인 일들이 그들 마음속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들은 마음이 찔렸고 형제들아 그러면 우리가 어찌할꼬. 라고 반응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할 39절의 말씀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마음에 찔려서 형제들아 그러면 우리가 어찌할꼬. 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회개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서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님의 선물을 받게 해주신다고 하고 그 약속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본문 39절에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회개를 하고 세례를 받으면 죄 사함을 받게 하고 성령의 선물을 받게 해 주시겠다는 이 약속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은
여기 “이 약속”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앞 절인 38절의 말씀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본문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많은 약속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향하여 맺은 약속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 약속을 붙잡고 그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아는 대로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소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무엇을 흥정을 하시거나 계약을 맺으시거나 약속을 하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따라서 하나님 마음대로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하시든지 인간들이 왜 이렇게 하십니까? 이렇게 좀 해주십시오. 라고 말할 권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망하게 하시면 망하고 하나님께서 흥하게 하시면 흥하고 하나님께서 죽이시면 죽고 살리시면 사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께서 너무나 감사하게도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약속을 해 주시고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나다가 보면 많은 약속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약속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이해하고 그 약속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 약속하신 것을 따르면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이고 목적입니다.
제가 서론에서 하나님 중심의 신앙에 대해서 길게 설명을 한 이유는 이 말씀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이 하나님의 약속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면서 삽니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하고 아무리 좋은 방법을 만들어서 실천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떡 줄 사람의 의지가 중요한 것이지 내가 먹을 준비를 잘 하고 떡 주기를 바란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많은 약속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이라는 말이 옛날 언약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아담에게 여인의 후손이 나와서 뱀 곧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약속에서 시작해서 많은 약속들을 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불러내어서 네 자손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삭이나 야곱에게 그 약속이 계속되게 해 주셨습니다.
다윗에게 그 왕위가 영원할 것이라고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지은 죄로 망할 때 그 남은 자들에게 구원을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많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많은 약속들을 해 주셨습니다.
그 약속들을 종합해 보면 메시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해주신다는 약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주시어서 그리스도가 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이 구약성경의 핵심입니다.
그 약속을 따라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약속대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서 예수님이 편이 되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설교를 통하여 강조하는 것은 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형벌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주목하는 것은 이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 인간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기적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강림하실 때 일어났던 신비한 일들을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거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바르게 살고 정말로 훌륭한 일들을 많이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선한 행위보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은 거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해 주신 약속이 어떤 사람들에게 해당되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 약속이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에게 해당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은 당시에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그 이스라엘 사람들과 그들의 자손들에게 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이 이 약속을 따라 회개를 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즉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도 받고 성령님의 선물도 받아서 믿음으로 이 세상을 살게 되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은 당시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당시의 일들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삼게 하신 것은 이 말씀의 효력이 당시 사람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후세의 사람들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우리가 복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와 우리의 자손에게도 효력을 발생한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귀하고 너무나 중요한 것이 너무나 쉽게 너무나 확실하게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주신다는 이 약속을 받게 되는 것은 너무나 큰 복입니다.
이런 약속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약속을 안다고 해도 그 약속을 지키기 어렵다고 한다면 그림의 떡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귀한 것을 얻을 수 있는 약속이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 쉽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는 정말로 쉽고 행복한 길이 되었습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은 반드시 받아야 할 약속입니다.
누구에게나 전해주고 싶은 약속입니다.
이 약속이 너희와 너희 자손뿐만 아니라 “먼 데 사람”에게도 해당이 되는 약속이라고 했습니다.
먼데라고 하는 것은 앞 말씀과 연관하여 깊이 생각하면 시간적으로 먼데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 그 자손의 자손 이렇게 세월을 따라 먼 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약속은 직접적으로는 공간적으로 먼 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나라 뿐만 아니라 먼 이방 민족들에게도 이 약속이 해당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을 하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 증거 하는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유다에서 땅 끝까지 전하여야 할 사명을 교회가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으로 부터 시작해서 온 유다나라까지 이방인들과 혼혈족이라고 무시하던 사마리아까지 그리고 짐승과 같이 여기던 이방의 모든 나라까지 이 복음을 전하고 이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그 명령이 그대로 이루어져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지금 땅 끝까지 전파되고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거의 다 알도록 전파되었고 소수의 남은 나라들이 복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예루살렘은 교회를 의미하고 온 유다는 국내 전도를 의미하고 사마리아는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타문화권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고 땅 끝은 선교를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거짓 복음이 전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온갖 사이비 이단들이 교회를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속지 않도록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되 지금은 그것을 복지 선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어려운 사람이 없나를 살펴보고 그들에게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타문화 권에서 온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힘이 있는 대로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땅 끝의 사람들을 위해서 선교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서 먼데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먼 데 있는 사람들을 하나 더 말하라고 하면 부족하고 흠이 있는 사람들에게 까지라고 해석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모자라고 병든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도 이 약속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너무나 죄가 크고 악하게 살아서 저런 사람이 천국에 가면 나는 지옥에 가겠다는 말을 들을 만한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더욱 더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떵떵거리고 사는 사람들이야 이 세상에서라도 잘 사니까 억울할 것이 없겠지만 이 세상에서도 외면을 당한 사람이 천국에도 못 간다면 얼마나 불쌍하겠습니까?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나님의 약속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약속이 나와 내 자손과 땅 끝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까지 해당이 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말씀이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열두 아들로 시작한 이스라엘이 한 나라를 이루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열두제자로 시작한 교회가 수천수만 수십억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2천년의 세월을 흐르는 동안 이 복음이 세계만방에 전파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을 믿고 천국백성이 된 사람들이 많겠다고 생각하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본문에 “얼마든지”라고 번역이 된 말은 조금은 오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헬라어에서 얼마든지 보다는 많은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이 말을 “얼마든지”라고 번역을 함으로서 누구든지 아무나 다 얼마든지 이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있다고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는 번역입니다.
여기에 분명하고 중요한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든지 라는 말은 그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수식어이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교회에 오지만 그 사람들이 다 그냥 오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자들만 오게 되고 이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부르신다는 말은 “소집한다.” “초대한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특별히 정한 사람들을 소집하고 초청하는 것을 부르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로마서를 공부하면서 이 부르심의 특별한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부르실 때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시는 자들을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신 자들을 부르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29-30)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니까 누구나 예수님을 믿는구나. 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중이떠중이 누구나 오면 되는구나. 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그 택함을 받은 사람만 불러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그 약속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어서 사람들이 그 약속에 참여한 지가 2천년이 흘렀고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아무나 다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세월동안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아주소수의 사람들만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이 길을 좁은 길이라고 하고 좁은 문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그 약속에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이 일에 우리가 동참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약속에 참여하도록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후손과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 약속에 참여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