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26)
본문 : 행 2:25-28
제목 : 항상 내 앞에 계시는 하나님.
“25.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7.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중요성을 아시고 믿음을 의의기준으로 정해주셨습니다.
물론 그 믿음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한정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믿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눈에 뻔히 보이는 것조차도 믿지 못하는 세상에 사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으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비웃기만 하고 믿음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들을 동원해서 믿도록 해 보았습니다.
신비한 체험을 통해서 믿음을 가지게 해 보았습니다.
기도해서 병도 낫게 해 보고 기도해서 성격도 고쳐보고 기도해서 성공적인 삶도 살게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가지고 참된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에 실패를 했습니다.
정말로 기적적인 일을 체험해 본 당사자들도 그것을 통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에 이르지 못하고 믿음이란 이렇게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데 어려운 일들을 극복해 나가는 도구로만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머리가 좋아져서 그런 체험들을 심리학적으로 해석을 해버립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라고 해도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그렇게 믿고 행동에 옮기면 그런 정도의 기적은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체험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설명하려고도 해 보았습니다.
성경말씀이 얼마나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인가를 설명해서 오히려 더 비과학적인 진화론을 믿고 사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과학적으로 정돈이 된 것이라고 해서 믿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생각할 때 아니면 아닌 것이지 그것이 논리적이든 과학적이든 역사적인 근거가 있든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들의 체험이나 과학적이고 논리적은 근거로 믿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믿는 것이고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못 믿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고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설명을 해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만 예수님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에게만 성령님께서 오셔서 그 믿음이 효력을 발생하게 해서 믿을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있는데 이 설교가 끝난 다음 거기서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 3천명이 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지독하게 예수님을 못 믿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버린 그 사람들이 어떻게 베드로 설교 한 번 듣고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오순절 성령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들어가셔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고 그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에게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그 믿음을 그들의 입으로 고백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 모여서 이렇게 바른 진리를 알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바른 믿음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며 우리가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이며 우리 속에 성령님께서 와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로 위대한 사람들이며 이 자리가 정말로 복된 자리라는 것입니다.
자부심을 가지시고 오늘도 성령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역시 베드로의 설교의 한 부분입니다.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가지고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심을 설명한 베드로는 그 일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다시 한 번 설명을 한 후에 지금은 다윗의 시편을 인용해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심을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들을 통해 새로운 믿음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가 가진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그 믿음을 귀하게 여기고 혹시라도 그 믿음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아울러서 내가 그 귀한 믿음에 걸맞은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확인해 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이 쓴 시편의 시를 베드로 사도가 인용을 하면서 우리가 가진 믿음을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이 시는 세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다윗의 신앙고백입니다.
다윗이 그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에 대해서 고백을 하는 것임으로 다윗의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 사도는 이 시를 선지자이기도 한 다윗이 예수님의 고백을 미리 예언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시가 다윗의 고백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대한 예언이라는 것을 뒤에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는 오늘날 우리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다윗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바로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도 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심으로 흔들리지 않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우리 앞에 계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 25절에는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인용구인 시편 16편 5절에는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항상 자기 앞에 계신 하나님을 보면서 살았다고 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도 하나님께서 피해갔고 하나님만 나에게 복을 주시는 분임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다윗도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위로 형들은 풍채도 좋고 훌륭한 사람들이었지만 막내인 다윗은 외모로 볼 때 나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역대 왕 중에서 가장 훌륭한 왕이라고 평가를 받는 것은 그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늘 오늘 인용한 시편의 고백처럼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라고 고백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늘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알고 믿었고 그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했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에게 오는 모든 기쁜 일들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도 하나님께 피했습니다.
하나님께 아픈 마음도 말씀 드리고 억울한 심정도 호소하면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악하고 자신도 연약하여 이런 어려움들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시고 또 피할 길도 주신다고 믿었기 때문에 늘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이 다윗의 시가 예수님에 대한 예언의 시라고 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이런 고백을 하실 것을 미리 알고 다윗이 선지자로서 이 시를 썼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라고 했는데 여기 “그”란 바로 앞 절에서 하나님께서 사망에서 풀어 살리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백을 하시기를 “내(부활하신 예수)가 항상 내(예수) 앞에 계신 주(여호와)를 뵈었음이여”라고 고백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시지만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메시야로서 사역을 하실 때 항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보면서 사역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이 일을 수행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그것도 고난의 길을 걸으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시는 일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렵고 힘든 일을 기꺼이 하신 것은 그 앞에 계신 하나님을 늘 뵈옵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할 때도 늘 내 앞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앞에 계시는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신앙의 가장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장이라고 하는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에 대해서 기록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누구 앞에서 누구를 기쁘게 하면서 사는가에 따라서 그 인생이 달라집니다.
나쁜 친구들 앞에서 나쁜 친구들이 기뻐하는 것 하면서 사는 사람은 그 앞날이 뻔합니다.
함께 술을 마셔야 하고 함께 나쁜 짓도 해야 그 친구들이 기뻐하기 때문에 자신도 나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세상 친구들 좋아하는 사람치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늘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 좋은 부모님의 말씀을 따르고 교회 안에 신앙 좋은 선배들에게서 배울 때 바른 신앙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늘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고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늘 우리 앞에 계셔서 우리가 살아나갈 길을 예비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살려고 하면 늘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고 늘 위험한 모험을 해야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살면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시고 인도하시는 길로 가면 됩니다.
세상을 힘들게 사는 사람은 늘 자기의 뜻을 따라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편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길을 보고 그 길을 따라 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고 다윗의 고백처럼 그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구역이 그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기업이 아름다운 것임을 믿고 따르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사는 길입니다.
항상 우리 우편에 계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에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인용한 시편에서 다윗은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라고 했습니다.
오른편 혹은 오른 손은 항상 능력의 상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른편에 계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능력이 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시편 118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음을 노래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시118:15-16)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려움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실 때 여호와의 오른 손이 권능을 베푸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른 손을 쓰셔서 구원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낼 때 오른 손으로 권능을 베푸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도 어려움을 당할 때 늘 하나님께서 권능을 베푸셔서 구원해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그 권능의 하나님을 오른편에 계시는 분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구절 역시 다윗이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시지만 다윗이 선지자로서 예수님의 고백을 미리 예언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항상 예수님의 우편에서 능력을 주시는 분으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힘드신 일에 대해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조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끝까지 순종을 하신 것은 능력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능력의 하나님께서 끝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일에 권능으로 함께 하실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일에 끝까지 순종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이 믿음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우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해서 크신 능력을 행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 크신 능력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일에 끝까지 승리하게 해 주심을 믿습니다.
또 우리가 이 교회운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믿음을 갖게 하고 영원한 하나님나라로 인도하는 일에 권능의 손으로 함께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교회가 아무리 어렵고 힘이 드는 일이 있다고 해도 이 일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이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끝까지 능력의 오른팔로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또 오른손은 축복의 상징입니다.
창세기 48장에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큰 아들인 므낫세에게 야곱의 오른 손이 작은 아들인 에브라엠에게는 야곱의 왼손이 닿게 했는데 야곱이 손을 거꾸로 해서 동생에게 오른손을 형에게 왼손을 대고 축복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야곱에게 오른손과 왼손의 방향이 틀렸다고 지적했지만 야곱은 동생이 더 큰 축복을 받을 자라는 것을 알고 손을 바꾼 것입니다.
오른손으로 축복을 받는 것이 큰 축복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왕이면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큰 복을 받으려고 하면 항상 하나님의 오른편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른손을 들어 복을 주시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의 고백은 이런 것까지 포함이 되어 있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그 믿음의 고백에는 이런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제일 큰 복이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을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큰 복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능력이나 복이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해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해 주시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해 주시는 그 하나님의 능력과 복을 받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요동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
본문 말씀에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편에서 다윗은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우편에서 다윗에게 권능을 베푸시고 큰 복을 주신 것은 다윗으로 하여금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와도 하나님을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늘 다윗 앞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의 오른편에서 하나님의 권능에 의지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서 살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한 때 사탄의 유혹에 넘어져서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선지자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다시 제 자리를 찾은 것은 하나님께서 항상 내 앞에 계시고 능력의 손으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그런 믿음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는 그 자리에서 자리를 보전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오고 말았을 것입니다.
또 그가 전쟁에서 사람들을 너무 많이 죽였다는 이유로 성전건축을 자기 손으로 하지 못했지만 성전을 지을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했습니다.
금과 은과 목재와 모든 것을 다윗이 다 준비를 했고 솔로몬은 준비 된 것으로 건축만 했을 뿐입니다.
끝까지 자기가 할 일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십자가의 일을 끝까지 흔들림이 없이 다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늘 그 앞에 계시고 하나님께서 권능의 손으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흔들림이 없이 끝까지 신앙생활을 다 할 수 있는 것도 이런 고백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늘 우리 앞에 계시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 오른편에 계셔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우리에게 큰 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 있는 것입니다.
제가 순교하신 할아버지 양용근 목사님을 연구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38살 정말 한창의 나이입니다.
일본대 법대를 졸업하셨고 평양까지 다니면서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셨습니다.
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리따운 아내가 있습니다.
어린 두 아들과 두 딸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만 잘 하면 그들이 시키는 대로 말 한마디만 잘하면 그리운 가족들 곁으로 돌아가서 교회의 목사로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반대편에는 겨울의 견딜 수 없는 추위와 심한 고문이 있는 차가운 감옥이 있었고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육신의 고통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 무엇이 그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했을까요?
무엇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했을까요?
무엇이 그를 그 좋은 가족의 품과 행복의 길을 뒤로하고 차가운 감옥에서의 죽음을 선택하도록 했을까요?
하나님이 그 앞에 계신다는 믿음, 하나님께서 그의 오른편에서 능력을 주시고 그 능력으로 더 큰 복을 주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그런 극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주자주 마음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신앙만 포기하면 더 즐겁게 살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자주자주 생길 것입니다.
조금만 세상과 타협을 하면 조금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소홀히 하면 나는 더 잘 살수 있다는 유혹을 많이 받으실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죄짓고 잘 사는 것이 눈에 많이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다윗처럼 예수님처럼 이런 믿음의 고백을 할 때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 앞에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오른 편에서 크신 권능으로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오른 손을 드시고 우리에게 큰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요동하지 않습니다.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앞에 계시는 하나님을 늘 보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인도하심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 능력의 손에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복,
이 구원의 복을 붙잡고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흔들림이 없는 마음으로 변함이 없는 마음으로 이 복된 믿음을 끝까지 지키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