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30.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10)
본문 : 행 1:8
제목 :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지금은 이렇게 완성된 신구약성경말씀도 가지고 있고 신구약 성경 말씀을 정확하게 연구해서 만든 교리도 가지고 있고 교회당과 정치에 필요한 헌법들과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신앙의 형제자매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별 어려움이 없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세계 각국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선교를 하기도 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주는 좋은 일도 하면서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그래도 좀 더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기록된 2천여 년 전의 상황을 살펴보면 기독교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연약한 상태였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기록한 신약성경도 없었고 교리도 없었고 교회도 정치형태도 교회헌법도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오히려 유대교의 이단으로 몰려서 숨어서 다녀야 하고 쫓겨 다녀야만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열두제자와 그것도 한 사람은 배반하고 떠나버렸고 그 외에 몇 몇 사람들이 전부였습니다.
그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대부분 어부출신들이고 당시에 사람들이 별로 알아주지 않는 별 볼일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엄청난 일을 벌리게 됩니다.
그렇게 기독교를 핍박하던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만방에 퍼져나가도록 했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런 별 볼일이 없던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세계만방에 퍼져나가도록 했을까요?
그 비밀이 오늘 본문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하신 이 말씀 속에 그 비밀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그 약속하신대로 성령님을 보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게 될 것이고 그 능력으로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는 일을 감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성령님께서 오셔서 제자들에게 주신 그 능력이 그렇게 무지하고 그렇게 나약하고 그렇게 별 볼일이 없었던 사람들로 하여금 엄청난 일을 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능력”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제자들로 하여금 그런 엄청난 일을 하게 해준 능력이 무엇일까를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헬라어 성경에서는 오직 너희가 권능을 받게 될 것이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런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오직 이라는 말이 성령님에게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 앞에 붙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오셔서 받게 되는 오직 그 능력으로 증인의 삶을 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이라고 번역된 알라(ἀλλὰ)라는 단어는 오직으로도 번역을 하는 말이지만 주로 “그러나”로 많이 번역하는 단어입니다.
영어성경에서도 그러나(but)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나”로 번역하는 것은 “오직”으로 번역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직은 오로지 그 능력에 중점을 둔다고 한다면 그러나는 좀 다른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제자들이 잘 못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은 힘없고 연약한 상태의 삶을 살았지만 그러나”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은 자신의 힘으로 살았지만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서”라고 해석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직이라는 뜻 보다는 그러나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시기 이전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몰랐고 예수님께서 하신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몰랐습니다.
그들은 오직 이 세상일에만 관심이 많았고 끝까지 이스라엘의 회복에만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오셔서 그들에게 예수님을 바르게 아는 능력이 주어졌기 때문에 이전과 다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이 능력 즉 성령의 능력이라고 하면 방언을 말하거나 병든 사람을 고치거나 신비한 일이 일어나는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고 능력의 핵심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독교를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가고 자기들을 나타내고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는 도구로 사용을 해서 우리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사도행전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 때문에 자기들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나라의 교회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이단이나 거짓 선생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바른 진리의 말씀의 증인으로서 사는 능력을 받는 길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를 아는 능력
성령님께서 오시면 제자들이 능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이 오시면 하시게 될 일에 대해서 미리 말씀하신 것을 여러 번 소개해 드렸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15:26)라고 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오시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성령님께서 오시면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을 해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단순히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의 의미들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하신 일의 의미들을 알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로 미루어 볼 때 성령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일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성령님께 받게 될 능력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게 되는 능력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도바울은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해서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의 유명한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의 엄한 교육을 받았고 율법으로는 무엇 하나 나무랄 것이 없는 바리새인이요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요 유대교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나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빌3:7-8)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나 귀하고 너무나 고상하기 때문에 그가 그동안 배우고 알았던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기고 심지어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능력이라고 하면 병을 고치고 신비한 기적을 일으키고 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병을 고치고 신비한 기적을 일으키고 하는 것은 그 일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아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그런 능력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병을 고치는 것 병든 자에게 있어서 너무나 소중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암만 병을 고친다고 해도 어차피 인생은 결국은 병들고 늙어서 죽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병들 일이 없는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아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 어떤 특별한 사람은 그것도 일생에 한번쯤은 기적을 체험하기도 하지만 그런 기적이 날마다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아무에게나 다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은사주의자들이 저급한 신비주의자들이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나고 기도하면 모든 병이 다 낫는 것처럼 선전을 해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수천 명 수만 명이 모이면 어쩌다가 한두 명 기적을 체험하는 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된다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속아서 그런 경험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마치 믿음이 없는 가짜 신자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다단계를 체험해 보신 분들은 알 것입니다.
수천 명 수만 명이 모이면 그 중에 몇 명은 돈을 법니다.
그러나 그 몇 명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사람은 그 몇 명이 돈을 벌게 해 주려고 재산 다 바쳐서 거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돈을 번다고 외치는 사람은 사기꾼입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사이비 이단이나 거짓선생의 속임에 넘어가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이 고상한 지식에 눈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주시는 능력의 최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님께서도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데 그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원리를 아는 능력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할 때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우리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이 고백하지 못하는 이런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고백합니다.
우리 주님이 그리스도 즉 우리를 구원하실 구주가 되심을 믿고 고백을 합니다.
이런 고백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그 안에 오셔서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능력을 주심으로 그런 위대한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위대한 믿음의 고백이 우리로 하여금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 거룩한 백성 성도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그런 것만 알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시범을 보여 주시면서 예수님의 삶이 우리의 삶의 모범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어떤 자세로 사셨는가를 보고 우리도 그런 삶을 본받아서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면 그런 삶의 원리도 알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따라 답습하면 정말로 신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능력하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그런 능력을 좋아합니다.
제자들도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아서 예수님처럼 기적을 행하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능력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적은 특별한 경우에만 행하셨고 늘 기적으로 세상을 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지만 늘 그렇게 해서 먹고 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혼인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지만 모든 잔치 집에서 그렇게 물로 포도주를 만들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지만 모든 병든 자를 다 기도로 고치라고 하시거나 모든 죽은 자를 다 다시 살리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끝내는 그런 기적적인 방법이 아니라 수모를 당하시면 잡혀가시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병든 자를 고치기도 하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했습니다.
잡혀서 감옥에 갇혔다가도 찬송과 기도로 옥문을 열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끝까지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어느 시점에서 그 능력은 없어졌으며 결국 그들 자신도 감옥에 갇히게 되고 비참하게 순교를 당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런 기적적인 방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함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목숨까지 내어놓음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능력은 이런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게 하는 능력입니다.
이기적으로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삶은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희생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사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성령님께서 능력을 주실 때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희생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은혜에 감사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기 보다는 무엇을 얻기 위해서 복을 받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따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목사들까지도 자기희생과 헌신은 없습니다.
품삯을 위해서 일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 일하고 이 세상에서 부자로 잘 살려고 일합니다.
어떤 아주 훌륭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시는지 얼마나 인자한 모습을 가지셨는지 얼마나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음성으로 말씀을 하시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 목사님을 성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은퇴하시고 난 후 그의 모습을 보니까 세상의 장사꾼이 그런 장사꾼이 없고 세상에 어떤 직업에 종사한 사람이 그런 많은 돈을 가져갈 수 없다고 할 정도로 많은 돈을 가져가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그렇게 인자한 모습과 음성이 돈을 위한 장사 속이었다고 생각하니까 자신이 속은 것이 너무나 억울해서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납니다.
죽을 때 한 푼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그래서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라고 하시던 분이 그렇게 많은 돈을 챙기는 것을 보고 속았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밤을 새며 부르짖던 기도가 결국 이런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구나 생각하니 사기를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먹고 살자니 어쩔 수 없었겠지 하는 동정심도 가지만 우리가 예수님께 배워야 할 아주 중요한 것을 배우지 못해서 그렇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혹시 성령님께서 그 속에 계시지도 않은 사람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도 구원받지 못할 사람에게 천하보다 귀한 나의 영원한 생명 나의 영혼을 맡기고 따르던 사람들이 얼마나 억울하고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일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아는 능력
나무는 보되 숲은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가고 있는 삶 전체의 모습은 보지 못하고 부분적인 것만 보면서 삽니다.
신앙생활의 부분적인 것만 알고 전체의 모습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도 부분적으로만 보고 그 능력의 목적지가 무엇인지를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분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전체의 그림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실 때 그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 삶의 원리를 알게 하셨는데 왜 그런 일을 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님께 능력을 받아서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는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하려는 예수님의 목적을 알았기 때문에 그 일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것을 걸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노력으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세계만방에 전해지게 한 것입니다.
이런 영원한 세상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기독교를 그저 이 세상에서 좋은 일 하고 평안하게 사는 종교의 하나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정말로 근시안적인 눈을 가지고 삽니다.
멀리는 보이지 않고 가까운 곳만 보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돈이 몇 천원 있으면 그 돈 다 없어질 때까지 오락실에 가 있는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곧 닥쳐올 중간고사도 안중에 없습니다. 그냥 오늘 즐거우면 그만입니다.
철없는 어른들도 그렇습니다.
오늘 주머니에 돈 몇 푼 있으면 그것으로 술 사다가 마시고 취해버립니다.
오늘 재미있는 일 있으면 내일이야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이 오늘 즐기고 맙니다.
오늘 나의 이런 무책임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내년에 그 후년에 먼 미래에 내가 당할 고통을 조금이라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군에 가면 “훈련 때 흘린 땀 한 방울이 전쟁 때 피 한 방울이다.”라고 훈련을 철저하게 시킵니다.
땀을 흘리면서 훈련을 받는 사람은 전쟁 때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훈련 받기 싫어서 땀 흘리지 않는 사람은 전쟁이 나면 땀 흘리지 않은 만큼 피를 흘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력이 없는 성공은 없습니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은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것도 어느 정도 절제할 줄 알라야 하고 내일을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오기 싫다고 안 오고 피곤하다고 쉬어버리고 마음에 좀 안 드는 일이 있다고 예배드리는 일을 포기하면 쉽게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일에 매달려서 기도하고 세상의 평안을 위해서 살다가 보면 전점 나태해지고 맙니다.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믿고 행하는 일의 목적지가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이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너무나 귀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에 우리를 데려가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 승천하시면서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 능력으로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능력을 주실 것이고 오직 그 능력으로 증인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그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지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 능력으로 우리는 우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셨던 그 삶의 원리를 아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희생과 헌신의 삶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셨던 그 원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도 희생적이고 헌신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시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셨던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우리에게 주셨고 그 목적지를 향하여 갈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 성령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강하게 역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능력으로 진리를 알고 삶의 원리를 알고 바른 목적지를 행해서 계속 전진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