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1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05)

본문 : 행 1:3

제목 :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행전의 서론부분을 가지고 여러 주째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있어서 이 서론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서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예수님의 행하심과 가르치심이 사도행전을 이끌고 갈 핵심주제이기 때문에 간단한 서술이지만 자꾸 반복에서 우리 가슴속에 담아두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의 주인공은 성령님도 사도들도 아니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이 어떻게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는가를 보여주는 책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행전을 보면서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소개하기 보다는 사도들이 행한 일들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보다는 그들의 행위자체를 더 중요하게 본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기도, 사도들의 방언, 사도들의 은사, 사도들이 행한 기적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정작 사도들이 전하고자 하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사도행전 서론부분을 설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가장 큰 비극은 복음이 무엇이며 교회가 무엇이며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극심한 혼란이 있다는 사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설교자들이 설교를 하면서 성경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핵심, 중요한 목적, 강조해서 가르쳐야할 핵심을 가르치지 않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오히려 더 강조하다가 보니까 듣는 성도들이 혼란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무엇인지 교회가 무엇인지 그리스도인들이 행하여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사도들의 행위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행하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행하심과 가르치심의 핵심이 죽으심과 부활하심인데 다른 행하심과 다른 가르치심을 강조할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행하고 하는 것보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고난 받으신 후에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심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님께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신 것은 “고난 받으신 후에”라고 했습니다.

 

여기 “고난 받으신 후에”라는 말은 옛날 우리가 보던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해 받으신 후에”로 번역했던 말입니다.

 

여기 “고난”이나 “해”는 때로는 “죽음”으로도 번역이 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의 고난이나 해는 고난을 받으시고 죽음을 당하신 후에 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후에 다시 살아나셔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엄청난 비극입니다.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그 집에 어른이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면 그 가족이나 친척은 물론이고 동네 사람들까지도 그 죽음을 많이 아쉬워하면서 슬퍼하고 통곡을 하면서 울었습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고인이 가는 길에 꽃상여를 만들고 좋은 관도 만들고 양지바른 곳에다가 무덤을 만들어서 아주 정성을 다해서 보내드렸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장례식장에서 통곡을 하거나 슬피 우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합니다.

 

대부분 오래사신 분들이고 더 사신다고 해도 별로 즐거울 일이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이나 주기 때문에 호상이라고 해서 그렇게 슬퍼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살만큼 살다가 죽는 사람은 그래도 별 아쉬움이 없겠지만 아직 젊은 나이에 병이나 사고로 죽음을 당하는 사람은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 모릅니다.

할 일도 다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죽어야만 한다면 가슴이 엄청나게 아플 것입니다.

 

병원에 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사고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살아보려고 살려보려고 본인이나 가족들이 얼마나 몸부림을 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것이 정말로 다행한 일이고 감사할 일입니다.

 

사람들은 아직 건강하기 때문에 아직 죽을 나이가 안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 별로 걱정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 생명의 소중함을 잘 모르기 때문에 살아 있음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르고 어떤 사람들은 좀 괴롭다고 해서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살아 있다는 것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 참으로 소중한 일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에게 엄청난 비극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꿈과 희망이 한꺼번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안타까운 순간이었습니다.

 

그것도 원수들의 손에 아주 비참하게 십자가의 형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은 정말로 비극이었습니다.

가느다란 희망마저도 없는 깜깜한 절망이었습니다.

 

그런 비참함에서 그런 절망 속에서 예수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은 인간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이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가 일본사람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36년 동안이나 남의 나라 사람들에게 고난을 당하면서 살았습니다.

비열한 일본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빼앗기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해방의 날이 왔습니다.

일본군이 항복을 하고 우리나라를 되찾은 그날이 1945년 8월 15일 광복절 날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우리나라 백성들이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다시 사셨다는 소식은 이 기쁨보다 더 기쁜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계속해서 반복되는 그들의 설교와 전도는 바로 이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후에 다시 사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다시 사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이기적이고 그렇게 믿음이 없고 그렇게 겁이 많던 제자들이 사도행전에 와서 어떻게 이렇게 용감하게 목숨을 내어놓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을 내었을까 하고 궁금해 합니다.

 

성령님이 그들에게 오셔서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그들을 그렇게 용감한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용감한 사람으로 변한 것은 예수님께서 살아나셨음을 확실히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망의 권세를 확실하게 깨뜨리고 다시사신 예수님을 그들이 만나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용감한 복음의 용사들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잃어갑니다.

힘도 없고 용기도 없고 능력도 없습니다.

바람 한번만 세게 불면 다 날아가 버릴 정도로 위태한 상태로 겨우 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고 우리도 부활한다는 신앙을 가지게 해 주는 곳인데 그동안 엉뚱한 것으로 교인들을 가르쳤습니다.

기도하면 복 받는다.

기도하면 성공한다.

기도하면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 수 있다.

교회에 가서 윤리를 배우고 도덕을 배우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봉사하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것들만 가르쳤기 때문에 정말 신앙에서 필요한 다시사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후에 다시 사셨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죽음의 권세를 깨고 다시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활의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사신 것을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다시 산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기 때문에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우리가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도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인지 그냥 누가 만들어낸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어서 믿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안 믿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그것이 사실이고 우리가 믿지 않는다고 그것이 사실이 안 되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든지 말든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니까 믿든지 말든지 너희들 마음대로 해라

믿고 구원을 얻든지 믿지 않고 멸망을 당하든지 너희들 마음대로 하라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믿을 수 있는 많은 증거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에 있는 죄 때문에 악한 생각 때문에 그것을 믿지 않으려고 여러 가지 이유들을 가지고 못 믿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많은 증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성경이 예수님께서 다시 사신 사실에 대해서 확실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성경이 그냥 누구의 사상이나 철학을 가지고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하셨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된 사실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성경은 너무나 정확하게 너무나 자세하게 너무나 확실하게 이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확실하게 예수님께서 죽으셔서 무덤이 묻히신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확실하게 예수님께서 그 죽음에서 다시 사신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서 하나같이 다 목숨을 버렸습니다.

그 사실을 전하기 위해서 엄청난 고난을 당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가 위기를 맞이한 것은 지도자들이 고난의 길을 가지 않고 호화롭게 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부활의 신앙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려고 고난을 받지 않고 오히려 다른 복음을 전하여서 호화롭게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혹시 부활을 전하는 사람들의 말도 장사 속으로 듣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사람들을 유혹해서 자기들이 영광을 받고 누리고 살기 위해서라고 생각을 해버립니다.

 

세계의 여러 가지 역사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사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이 세상의 역사를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눕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엄청나게 많은 변화들이 이 세상에서 일어났습니다.

모든 법이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상이나 모든 의롭고 선한 기준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음악의 기원이 예수님으로부터 출발을 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미술의 기원이 예수님으로부터 출발을 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학의 기원이 예수님으로부터 출발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난 엄청난 놀라운 기적들이 예수님의 다시 사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것을 기록한 구약시대에 일어난 많은 기적들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기적들이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행한 많은 기적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기적적인 일들을 체험했습니다.

오늘날도 여기저기에서 특별히 복음을 전하는 선교현장에서 기적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모든 기적이 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많은 기적적인 일들이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적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기적이고 은혜입니다.

우리 속에 살아계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오늘 저와 여러분을 이 자리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통하여 지금도 살아계시는 예수님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 예수님과 교제하시기 바랍니다.

그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40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이 세상에 계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그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나타나 보여주신 것이 10여 차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은 미련하여서 구약성경에 선지자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예언한 것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성경의 그 예언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사심에 관한 것임을 말씀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성경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가슴이 뜨거워지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리 성경을 읽고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아직도 두려워 떨면서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에게 못 박히셨던 손과 발을 보여주시면서 보고 또 만져도 보고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정말로 성경을 바르게 읽고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따라 예수님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사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대강 적당히 수박 겉핥기식으로 교회에 왔다가 갔다가만 하니까 예수님의 죽으심도 부활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음식을 잡수시면서 또 살과 뼈가 있음을 보여주시면서 예수님의 영이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육체로 부활하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몸으로 다시 사셨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물론 그 다시사신 육신은 우리의 육신과는 다른 육신이었습니다.

영원히 다시사실 수 있는 육신이었고 우리가 가진 몸과는 차원이 다른 육신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사심을 보여주시면서 그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온 세상까지 전파될 것을 말씀하시고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나타나셔서 살아계심을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도 증인으로 사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도 살아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겉으로는 이래도 속마음은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말합니다.

겉으로 말만 그럴듯하게 잘 하는 사람보다 사실은 내가 더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속을 보시기 때문에 내가 더 잘 믿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동으로 하나도 나타나지 않고 속마음만 그런 사람은 아직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열심히 일을 하고 충성을 해도 마음에는 믿음이 없을 수도 있는데 행동에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주일날 교회에 한번 오는 것도 확실하게 꼭 오지 못한 사람이 믿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처럼 늘 졸기만 하는 사람이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지 못하고 헌신하지 못하는 사람이 믿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정말로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증인은 그 증인의 삶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으셨을 뿐 아니라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도 살아있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살아서 행동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미래에 다시 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미 거듭난 생명을 가졌습니다.

거듭난 생명은 죽지 않고 살아서 영원한 세상까지 살게 될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 살아 있는 생명 그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살아 있는 생명을 가진 우리가 죽은 사람들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 박차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께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후에 다시 사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확실한 많은 증거들로 예수님께서 다시 사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몸소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심으로 다시 사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 살아계시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신앙을 보여주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전파하는 증인으로서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