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4.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89)
   본문 : 롬 16:7
   제목 :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人死留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입니다.
  사람에게는 재물보다도 명예가 소중함을 비유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때가 되면 이 세상을 떠납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길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이름이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입에 좋게 오르내리면 비교적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이 되는 일입니다.
  물론 그 일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어지는 일은 아닙니다.
  그 일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미 기록이 된 자들임을 압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예수님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 자리에는 아무나 올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신 자들 즉 하나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이 된 자들만이 이 자리에 올 수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이미 하나님의 생명책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조금 더 노력을 해야 할 것은 구원받은 백성으로만 기록이 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행도 기록이 되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행정록에 교회의 재정장부에 또는 봉사기록부에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시는 선한 일들이 하나하나 다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그 기록에 여러분의 이름이 많이 남으시기를 바랍니다

  또 여러분이 어떠한 삶을 사는가 여부에 따라서 후세의 사람들이 우리의 삶의 족적을 살펴서 책을 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멋있는 우리의 삶이 한 페이지라도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멋있는 삶을 살다가 간 사람들의 이름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라는 사람의 이름입니다

  "안드로니고"는 헬라어로 "승리한 남자"라는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그리고 "유니아"는 라틴어에서 온 로마식 이름으로서 여자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기록이 된 것으로 보아서 부부사이가 아닌가 하고 생각들을 합니다.
  
  남자건 여자간 부부건 남남이건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그냥 접어두기로 하고 이 두 사람이 어떤 일을 했기에 이렇게 바울의 기억 속에 남아 성경책에까지 기록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1.내 친척
  오늘 본문 말씀에 이 두 사람을 소개하면서 "내 친척이요"라고 먼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배운 로마서 9:3절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 중에 특별히 친척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이 저주를 받아 예수님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친척들이나 동족들이 예수님을 믿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서에는 본문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그리고 11절의 헤로디온과 21절의 누기오, 야손, 소시바더 이들 여섯 사람들이 바울의 친척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모든 동족들이 예수님을 믿었으면 하는 것이 바램이었습니다
  그의 소원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유대인들과 그 중에서 이렇게 몇몇 친척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에 대하여 참으로 기쁘게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친척들이 자신과 함께 이 위대한 사역을 함께 했다는 자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친척끼리 무엇을 하면 잘 될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신 분도 게시겠지만 그러나 사실은 친척끼리 어떤 일을 함께 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가까운 사람끼리는 서로 비교가 되고 그래서 은근히 경쟁이 되는 사이입니다.
  요즘은 보통 차남이 똑똑하고 차남이 더 출세를 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태어날 때부터 형을 경쟁의 상대로 하여 부단한 노력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간에 친척간에 무슨 일을 함께 협력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또 잘 알수록 부족하게 여겨지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잘 모를 때 멀리서 볼 때는 좋아 보이기도 하고 믿음직스럽기도 하고 강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고 모든 것을 알고 나면 좋은 점 보다는 추한 점이 더 많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비교적 서로를 잘 아는 친척끼리 무슨 일을 같이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또 친척끼리는 잘해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조금 잘 못하면 섭섭하게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주님의 일을 할 때는 이런 것도 초월해야 합니다
  주님의 일은 이 세상의 일과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는 경쟁의식이나 비교의식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상대평가 하시지 않고 절대평가를 하십니다
  우리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대하여 얼마나 충성했나를 보시지 남보다 무엇을 얼마나 더 많이 했나를 보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또 주님의 일은 잘난 척하기 위해 가식적으로 위선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겸손하게 진실하게 해야 합니다

  저희 교회에도 저와 친척이 되시는 분들이 몇 분 계십니다
  이런 부정적인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성을 다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주 안에서 한 형제 자매들입니다
  육신의 피로 맺어진 혈육의 형제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어진 형제자매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더 힘을 합하여 주님의 일을 해야 될 사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나와 함께 감옥에 갇혔던 자들 
  본문 말씀에 이 두 사람을 "나와 함께 갇혔던"사람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여러 번 옥고를 치른 사람이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함께 옥살이를 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에베소에서 함께 감옥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3절 이하에 자신과 함께 복음을 전하면서 고통을 당했던 동역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를 했습니다.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라고 했습니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이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부끄럽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진하여서 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짊어지고 모진 고난을 당했습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매를 맞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옥에 갇히고 심지어 비참하게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이 좋은 일에 기쁜 일에 함께 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고통을 당하는 일에 함께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것도 스스로 자진해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일에 뛰어들어서 함께 고난을 당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평소에 참 친한척하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금방 마음이 변해버립니다
  어려움에 함께 동참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일꾼들이 어려움에도 함께 동참을 했던 것은 그 당시의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믿음이었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입니다.
   
  가난해져도 함께 가난해 지고 굶어도 함께 굶고 고난을 받아도 함께 받고 감옥에 가도 함께 가고 죽어도 함께 죽을 수 있던 그 시절의 믿음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님들도 다 그런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지키고 천국에 가는 길에 목숨을 같이할 수 있는 동역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은 자들
  본문 말씀에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사도'는 예수님의 열두제자를 말하기 보다는 넓은 의미로 그리스도를 따르며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으로 주님께서 직접 세우신 12제자 이외의 다른 제자들도 포함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유명히 여김'은 좋은 의미로 '유명한', 혹은 '뛰어난' '소문난', '이름난'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그러므로 안드로니고와 유니고는 그들의 믿음과 봉사로 인해서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의 인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복음의 사역을 돕는 많은 사도들에게도 잘 알려졌을 정도로 주님의 일을 많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이름이 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보통으로 일을 해 가지고는 소문도 나지 않을뿐더러 모든 사람들이 다 칭찬하는 일을 하기는 더욱 힘이 드는 일입니다

  같은 일을 가지고도 이 사람은 잘했다 저 사람은 못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보는 사람들마다 칭찬을 할 정도로 좋은 일을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스스로 자기를 피알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야 알아 주든 말든 잔뜩 자기의 자랑을 늘어 놓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그 사람을 알아주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사람을 오히려 사람들은 알아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두 사람은 자신을 자랑하려고 하지 않고 겸손하게 낮추려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하는 선한 일들을 남들이 알지 못하게 숨어서 하려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인정을 받고 유명해진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춤으로 더욱 높아지는 것이 참된 높아짐이요 
  자신이 한 선행을 감추려고 함으로 더욱 유명해지는 것이 참된 명성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본문 말씀에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라고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기독교 역사 초기에서부터 일찍 회심을 하고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이었습니다.
  바울보다 먼저 복음을 받아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를 선배로 깍듯이 대우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들이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후배인 바울을 도와서 귀한 일들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선배라는 자만심 때문에 후배가 하는 일을 우습게 여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자만심을 버리고 복음을 위해 후배가 하는 일을 힘껏 도왔던 것입니다.

  후배는 선배를 존경하고 선배는 후배를 더 귀하게 볼 줄 아는 ㄱ서이 옳바른 선호배관일 것입니다.

  선배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선배는, 후배의 경험하지 못한 일을 체험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선배는 그 방면에 있어서 특별히 후배보다 아는 바가 많은 사람입니다.  

  욥12:12에 말하기를,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라고 하였습니다.
  잠16:31에 말하기를,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하였습니다.

  인생의 선배에게 인생을 배우고 신앙의 선배에게 신앙을 배우는 것이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선배는 후배를 키워 줄줄 알아야 합니다.
  후배 중에서도 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배라고 해서 무엇이든지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후배들이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바울은 선배를 존경했고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후배를 더 잘하도록 도와준 멋있는 선후배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멋있는 인생을 살다가 간 귀한 두 분의 삶을 살펴 보았습니다
  많은 기록이 없어서 그들의 행적을 일일이 살피지는 못했지만 본문의 기록으로만 봐서도 이들이 얼마나 귀한 삶을 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친척이면서도 친척이 하는 일을 잘 도왔습니다
  이 두 사람은 바울이 어려움을 당할 때 함께 했고 감옥에까지도 함께 간 의리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이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 특별히 주님의 복음 사역을 담당한 사도들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바울의 선배이면서 후배인 바울을 섬기며 도와주었던 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삶이 여러분의 삶에도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좋은 평가가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