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3.2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87)
본문 : 롬 16:3-5
제목 : 나의 동역자 브리스가와 아굴라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어디에서 살며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고 누구를 만나는가 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일과 직접 연관이 있는 것이라면 더욱 귀한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에게 있어서 이런 것들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고린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아굴라는 소아시아 북부 지방에 있는 '본도'(Pontus)라는 곳에서 출생을 했고
이들 부부는 로마에서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역사가의 기록에 따르면 이를 부부가 사도 바울을 만난 경위가 밝혀집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장막 제조업자였습니다. 이들은 로마에 살면서 삶의 터전을 마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훗날에 바울을 도운 것을 보면 상당한 재물을 모았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글라우디오 황제가 모든 유대인은 로마를 떠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강제 추방령이였습니다.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권리금 한 푼도 못받고 재고품을 헐값으로 정리하고 그야말로 공권력에 의한 파산 선고를 한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이 사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정든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도착합니다. 낯설고 물 설은 곳에 정착해서 그들은 다시 장막 제조업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고린도에 와서 뜻밖에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분이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저들이 바울을 만난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가장 위대한 사역자를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저들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버렸습니다.
바울이 일년 육개월 동안 고린도에서 복음사역을 감당하는 동안 말씀으로 잘 양육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저들의 일생을 통한 최대의 축복의 기회가 된 것입니다.
이런 만남이 없었더라면 이들 부부의 이름이 성경에 여섯 번이나 기록될 까닭이 없을 것입니다.
마틴 부버라는 사람이 말하기를 "참 만남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듯이 이들의 만남은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는 롬8:28절의 말씀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만나고 광성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한 것도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이유에서 여기에 오셨든지 여러분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천국 복음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교회에서 이 로마서 강해를 들으시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천국 백성으로 확실히 보장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믿습니다.
또 할 일이 많은 교회에 보내 주신 것은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할 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면서 일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나의 동역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동역자'라는 말은 '함께 일하는 사람', '돕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어떤 모양으로든지 쓰임을 받는 모든 사람들을 바울은 동역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기독교 선교 역사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일꾼이었습니다.
지칠 줄 모르고 아시아와 유럽을 순회하면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자기 혼자의 힘이 아니라 수많은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 귀한 사역을 잘 감당할수록 도와준 사람 중에 브리스가와 아굴라라고 하는 이 부부도 포함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고 천국 시민으로 살면서 어떤 사람들은 그저 수혜자로서 방관자로서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귀한 은혜를 받았다면 은혜의 복음이 전하여지는 일에 이 은혜의 복음을 맡은 교회가 부흥하는 일에 동역자가 되는 것도 참 중요한 일입니다.
주의 일에 동역자가 되는 일은 은혜 받은 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칭찬하시고 복을 주시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서 우리 모두가 방관자가 아닌 구경꾼이 아닌 동역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복음의 진리를 함께 가르치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8:26절에 "아볼라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라는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볼로 라는 유대인은 학문과 웅변에 뛰어난 인물로서 에베소에 와서 성경을 가르치며 전도하였습니다.
그는 열심히 예수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여 가르쳤지만 아볼로는 세례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굴라 부부는 그를 데려다 가는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서 가르쳤다고 말씀합니다.
아볼로는 성경에는 능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이해는 명쾌하지 못했음이 분명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아볼로의 결함을 비난하거나 헐뜯지 않고 개인적으로 그것을 채워주는 조력자가 되고 있음을 봅니다.
결국 아볼로는 이들 부부를 통해 복음의 진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후에 아볼로는 아가야로 가서 힘차게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으며, 고린도교회에 4파가 있었는데 그 중에 아볼로파가 있었던 것을 보면 아볼로의 위치가 어느 정도였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아볼로의 배후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이들 부부가 바울과 동업을 하면서 어느 틈엔 이들의 신앙이 아볼로를 가르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는지 정말 놀랄만한 성장이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직분을 맡았다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점점 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피하고 기독교를 그저 하나의 도덕적인 종교로만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함께 이 복음에 대해서 가르치는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진리란 많은 사람들이 지지한다고 해서 비진리가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목소리 큰 사람들이 이기고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편에 서 있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돈으로 권력으로 인기로 사람들을 자기 편에 모으려고 하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같은 편이 되어 준다는 것은 참 귀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 천국 복음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가르치는 일에 함께 하는 자들이 참된 동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바울을 만나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배운 것이 우연이 아니듯이 여러분이 저를 만나고 로마서의 진리를 듣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로마서를 통해 진리를 알게 하신 성령님을 여러분이 모시고 산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입니다
그 강해를 세세하게 들으신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이 진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바르게 가르쳐 하나님의 동역자 바울의 동역자 저의 동역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많이 알아야 하고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하나님의 도에 대해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있게 아볼로를 가르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실천을 해야 합니다
진리는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삶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도 몸소 행하시면서 가르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내가 먼저 그 복음을 이해하고 실천하면서 살 때 많은 사람들이 나의 삶의 모습을 보고 진리를 깨닫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때로는 내가 하지 못한 것 내가 할 수 없는 것들도 가르칠 때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형편이 틀리고 살아온 환경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될 수 있는 대로 지금부터라도 힘써 행하면서 가르치시기를 바랍니다.
2.복음의 진리를 위해 물질을 바친 자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5절 말씀에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6:19절 말씀에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노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오늘날처럼 웅장한 예배당이나 건물이 없었고 거의가 가정 교회였습니다.
골4:15절에는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빌레몬서1:2절에는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은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발상지였습니다.
빌립보에는 자주장사 루디아의 집이 빌립보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집이 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헌신이었습니까?
우리 나라에도 오래된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개인 가정에서 두, 세 사람이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저희 부친도 교회가 없는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가셔서 그곳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처음에는 아랫채 방 한 칸을 예배 처소로 사용을 하다가 나중에는 벽을 다 헐고 교회당으로 섰습니다
그러다가 저희 집터에다가 교회당을 새롭게 지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수고와 희생이 없는 안일한 신앙 생활을 하기를 원합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복을 못받고 구원을 못받는 것은 아닙니다
물질적인 희생이 없다고 헌금을 하지 않는다고 구원에서 제외되거나 하나님께 벌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동역자가 된다는 것은 우리의 가진 것을 희생해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물질을 주신 것은 이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물질로 충성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부자가 되고싶거든 하나님께 교회당을 지을 수 있는 축복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물질을 하나님을 위해 바르게 쓰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부자가 될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없는데도 부자가 되시거든 조심을 하십시오
그 부는 여러분을 타락으로 파멸로 인도하는 나쁜 것이 될 ㄱ서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3.복음의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6:4절 말씀에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역자가 되기 위해서 어느 정도로 헌신을 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하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라는 말을 직역을 하면 '사형 집행 자의 도끼 밑에 자기 목을 내어 놓다'라고 해석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잡혀서 순교를 당하려고 할 때 그들 부부가 대신하여 사형을 당한다고 자처했던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일이 실제적으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모든 일에 함께 목숨을 걸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그렇게 말한 것인지 잘 알 수 는 없습니다
아마도 이 사건은 에베소에서 데메드리오와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바울의 목숨을 해하려고 할 때 바울의 생명을 구하려고 온갖 극단적인 위험을 무릅쓴 것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바울이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그와 함께 일사 각오로 생사 고락을 함께 하였다는 점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죽을 각오를 가지고 함께 하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죽을 각오까지 하는데 무엇인들 못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처럼 자기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동역자가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 위대한 일들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어떤 사업에 동업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웬만하면 동업하지 말고 혼자하라고 충고를 합니다
사람들은 죽도록 함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자기에게 불리하면 하루 아침에 배반을 하고 마는 것이 죄로 물든 사람들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일은 모두가 함께 다 동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의 일은 우리가 목숨을 바쳐 순교를 하면서 라도 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평화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서로 목숨을 대신해야할 그런 일은 없습니다.
다만 서로 작은 일에 배신하지 않고 마음이 하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을 하시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보이면 이들 부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저들은 목숨까지도 대신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 양보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양보하고 조금 더 희생하면서 일을 하시면 함께 하지 못할 일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서로가 이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같은 동역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된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함께 가르치는 동역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희생하고 목숨까지도 바치면서 이 복음의 동역자가 되려는 각오를 하고 충성을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들 부부가 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 되었듯이 우리의 행적도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본문 : 롬 16:3-5
제목 : 나의 동역자 브리스가와 아굴라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어디에서 살며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고 누구를 만나는가 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일과 직접 연관이 있는 것이라면 더욱 귀한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에게 있어서 이런 것들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고린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아굴라는 소아시아 북부 지방에 있는 '본도'(Pontus)라는 곳에서 출생을 했고
이들 부부는 로마에서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역사가의 기록에 따르면 이를 부부가 사도 바울을 만난 경위가 밝혀집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장막 제조업자였습니다. 이들은 로마에 살면서 삶의 터전을 마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훗날에 바울을 도운 것을 보면 상당한 재물을 모았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글라우디오 황제가 모든 유대인은 로마를 떠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강제 추방령이였습니다.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권리금 한 푼도 못받고 재고품을 헐값으로 정리하고 그야말로 공권력에 의한 파산 선고를 한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이 사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정든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도착합니다. 낯설고 물 설은 곳에 정착해서 그들은 다시 장막 제조업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고린도에 와서 뜻밖에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분이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저들이 바울을 만난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가장 위대한 사역자를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저들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버렸습니다.
바울이 일년 육개월 동안 고린도에서 복음사역을 감당하는 동안 말씀으로 잘 양육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저들의 일생을 통한 최대의 축복의 기회가 된 것입니다.
이런 만남이 없었더라면 이들 부부의 이름이 성경에 여섯 번이나 기록될 까닭이 없을 것입니다.
마틴 부버라는 사람이 말하기를 "참 만남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듯이 이들의 만남은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는 롬8:28절의 말씀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만나고 광성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한 것도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이유에서 여기에 오셨든지 여러분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천국 복음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교회에서 이 로마서 강해를 들으시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천국 백성으로 확실히 보장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라고 믿습니다.
또 할 일이 많은 교회에 보내 주신 것은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할 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면서 일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나의 동역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동역자'라는 말은 '함께 일하는 사람', '돕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어떤 모양으로든지 쓰임을 받는 모든 사람들을 바울은 동역자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기독교 선교 역사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일꾼이었습니다.
지칠 줄 모르고 아시아와 유럽을 순회하면서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였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자기 혼자의 힘이 아니라 수많은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그 귀한 사역을 잘 감당할수록 도와준 사람 중에 브리스가와 아굴라라고 하는 이 부부도 포함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고 천국 시민으로 살면서 어떤 사람들은 그저 수혜자로서 방관자로서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귀한 은혜를 받았다면 은혜의 복음이 전하여지는 일에 이 은혜의 복음을 맡은 교회가 부흥하는 일에 동역자가 되는 것도 참 중요한 일입니다.
주의 일에 동역자가 되는 일은 은혜 받은 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칭찬하시고 복을 주시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서 우리 모두가 방관자가 아닌 구경꾼이 아닌 동역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복음의 진리를 함께 가르치는 자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8:26절에 "아볼라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라는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볼로 라는 유대인은 학문과 웅변에 뛰어난 인물로서 에베소에 와서 성경을 가르치며 전도하였습니다.
그는 열심히 예수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여 가르쳤지만 아볼로는 세례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굴라 부부는 그를 데려다 가는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서 가르쳤다고 말씀합니다.
아볼로는 성경에는 능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이해는 명쾌하지 못했음이 분명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아볼로의 결함을 비난하거나 헐뜯지 않고 개인적으로 그것을 채워주는 조력자가 되고 있음을 봅니다.
결국 아볼로는 이들 부부를 통해 복음의 진수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후에 아볼로는 아가야로 가서 힘차게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으며, 고린도교회에 4파가 있었는데 그 중에 아볼로파가 있었던 것을 보면 아볼로의 위치가 어느 정도였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아볼로의 배후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이들 부부가 바울과 동업을 하면서 어느 틈엔 이들의 신앙이 아볼로를 가르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는지 정말 놀랄만한 성장이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직분을 맡았다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점점 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피하고 기독교를 그저 하나의 도덕적인 종교로만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함께 이 복음에 대해서 가르치는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진리란 많은 사람들이 지지한다고 해서 비진리가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목소리 큰 사람들이 이기고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편에 서 있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돈으로 권력으로 인기로 사람들을 자기 편에 모으려고 하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같은 편이 되어 준다는 것은 참 귀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 천국 복음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가르치는 일에 함께 하는 자들이 참된 동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가 바울을 만나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배운 것이 우연이 아니듯이 여러분이 저를 만나고 로마서의 진리를 듣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로마서를 통해 진리를 알게 하신 성령님을 여러분이 모시고 산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입니다
그 강해를 세세하게 들으신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이 진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바르게 가르쳐 하나님의 동역자 바울의 동역자 저의 동역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많이 알아야 하고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하나님의 도에 대해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있게 아볼로를 가르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실천을 해야 합니다
진리는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삶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도 몸소 행하시면서 가르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내가 먼저 그 복음을 이해하고 실천하면서 살 때 많은 사람들이 나의 삶의 모습을 보고 진리를 깨닫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때로는 내가 하지 못한 것 내가 할 수 없는 것들도 가르칠 때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형편이 틀리고 살아온 환경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될 수 있는 대로 지금부터라도 힘써 행하면서 가르치시기를 바랍니다.
2.복음의 진리를 위해 물질을 바친 자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5절 말씀에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6:19절 말씀에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노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오늘날처럼 웅장한 예배당이나 건물이 없었고 거의가 가정 교회였습니다.
골4:15절에는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빌레몬서1:2절에는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은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발상지였습니다.
빌립보에는 자주장사 루디아의 집이 빌립보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집이 교회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헌신이었습니까?
우리 나라에도 오래된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개인 가정에서 두, 세 사람이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저희 부친도 교회가 없는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가셔서 그곳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처음에는 아랫채 방 한 칸을 예배 처소로 사용을 하다가 나중에는 벽을 다 헐고 교회당으로 섰습니다
그러다가 저희 집터에다가 교회당을 새롭게 지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수고와 희생이 없는 안일한 신앙 생활을 하기를 원합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복을 못받고 구원을 못받는 것은 아닙니다
물질적인 희생이 없다고 헌금을 하지 않는다고 구원에서 제외되거나 하나님께 벌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동역자가 된다는 것은 우리의 가진 것을 희생해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물질을 주신 것은 이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물질로 충성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부자가 되고싶거든 하나님께 교회당을 지을 수 있는 축복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물질을 하나님을 위해 바르게 쓰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부자가 될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없는데도 부자가 되시거든 조심을 하십시오
그 부는 여러분을 타락으로 파멸로 인도하는 나쁜 것이 될 ㄱ서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3.복음의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6:4절 말씀에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역자가 되기 위해서 어느 정도로 헌신을 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하는 말씀입니다.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라는 말을 직역을 하면 '사형 집행 자의 도끼 밑에 자기 목을 내어 놓다'라고 해석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잡혀서 순교를 당하려고 할 때 그들 부부가 대신하여 사형을 당한다고 자처했던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일이 실제적으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모든 일에 함께 목숨을 걸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그렇게 말한 것인지 잘 알 수 는 없습니다
아마도 이 사건은 에베소에서 데메드리오와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바울의 목숨을 해하려고 할 때 바울의 생명을 구하려고 온갖 극단적인 위험을 무릅쓴 것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바울이 고난 가운데 있을 때 그와 함께 일사 각오로 생사 고락을 함께 하였다는 점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죽을 각오를 가지고 함께 하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죽을 각오까지 하는데 무엇인들 못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처럼 자기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동역자가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 위대한 일들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어떤 사업에 동업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웬만하면 동업하지 말고 혼자하라고 충고를 합니다
사람들은 죽도록 함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자기에게 불리하면 하루 아침에 배반을 하고 마는 것이 죄로 물든 사람들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일은 모두가 함께 다 동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의 일은 우리가 목숨을 바쳐 순교를 하면서 라도 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평화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서로 목숨을 대신해야할 그런 일은 없습니다.
다만 서로 작은 일에 배신하지 않고 마음이 하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을 하시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보이면 이들 부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저들은 목숨까지도 대신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 양보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조금 더 이해하고 조금 더 양보하고 조금 더 희생하면서 일을 하시면 함께 하지 못할 일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서로가 이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같은 동역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된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함께 가르치는 동역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희생하고 목숨까지도 바치면서 이 복음의 동역자가 되려는 각오를 하고 충성을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들 부부가 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 되었듯이 우리의 행적도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