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신경07)
본문 : 빌 2:9-11
제목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저는 요즘 참 행복합니다.
이렇게 좋은 설교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특별히 개혁주의 목사로서 개혁자들이 주장한 설교의 개혁에 앞장서서 바른 설교를 할 수 있어서 정말로 행복합니다.
칼빈이나 루터 같은 개혁자들은 중세교회의 종교심이나 선행심을 강조하는 설교에서 구원의 도리를 선포하는 설교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 구원의 도리를 선포하는 설교를 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신경 강해설교로 그 구원에 이르는 믿음 즉 우리가 믿는 믿음이 어떤 것인지를 가장 근본적인 것부터 설명을 할 수가 있어서 너무나 기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씀드리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지난 시간부터 우리가 믿는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유일하신 아들이라는 것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 아주 특별하신 아들로 존재하시는 분이심을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 즉 성부하나님과 모든 면에서 동등하신 하나님이심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이 특별하게 유일하게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곧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라고 할 때 그 분을 통한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구원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지극하시며 구원을 통해 우리가 받는 은혜가 너무나 큰 것이기 때문에 천지를 창조할 때처럼 말씀으로 하시지 않으시고 특별하게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 유일하신 아들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 중에서 “우리 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 예수님을 왜 우리가 우리의 주님이라고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주님의 뜻
주님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퀴리오스(κύριος)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주인, 주님, 선생님 등의 뜻을 가진 말입니다.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주님이라는 말은 여러 경우에 사용이 되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유대인들이 당시 총독인 빌라도를 부를 때도 “주여”라고 불렀습니다.
노예들이 그들의 주인을 부를 때도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가 남편을 부를 때 “주”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 선생님 대신 “주님”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주님이라는 호칭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자신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때는 그런 인간관계에서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 이상의 뜻이 있습니다.
단순히 우리의 상전이고 우리의 주인이고 우리의 선생님이 되시는 그런 의미에서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 훨씬 높은 뜻이 들어 있는 호칭입니다.
1)주님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호칭입니다.
유대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나타낼 때 주님이라는 호칭을 썼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직접 가르쳐주신 이름이 여호와이십니다.
유대인들은 이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굉장히 거룩하게 여겼습니다.
함부로 부르지도 않고 성경을 필사할 때 여호와가 나오면 붓을 새 붓으로 바꾸어서 기록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라고 읽지도 않았습니다.
여호와라는 말이 나오면 그 말 대신에 주님이라고 읽었습니다.
하나님을 부를 때 야훼시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 아버지를 부를 때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과 같습니다.
물론 서양에서는 존대 말이 없고 서로 친근감 있게 서로 이름을 불러 주는 것을 좋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풍습에서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아주 버릇이 없는 사람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부를 때 하나님 아버지도 있고 주님도 있는데 굳이 여호와라고 부르는 것은 자기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려고 하는 교만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을 다른 신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우리의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표시를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부를 때 여호와시여 라고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 대체어로 주님이라는 말을 오랫동안 사용했기 때문에 주님이라고 하면 됩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때도 그런 의미에서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호칭은 주님이라고 부르지만 그 의미는 우리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호칭입니다.
주님이라고 할 때 우리 인간적인 관계에 있어서 주인님하고 부르는 것처럼 하면 안 되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심을 알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2)예수님이 천지 만물의 주인이심을 나타내는 호칭입니다.
사도신경에서 주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나 개인의 주님이 되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도신경에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좁은 의미에서가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고 그 천지 만물의 주인이 되셔서 지금도 이 우주 만물을 섭리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1장 1-3절 말씀에 예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고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 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14절에는 그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을 이렇게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했습니다.
그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데 그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3)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의 주님이 되심을 나타내는 호칭입니다.
베드로후서 1:11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곧 구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 구주라는 말은 구원의 주님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데 주인이 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에서 우리의 믿음을 강조하는 중심점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에 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이런 신앙고백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우리의 믿음의 중심에도 구원하시는 예수님이 중심이 되십니다.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라는 호칭에서도 구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최선의 것을 주셨으며 우리의 구원을 통해 최고의 것을 우리에게 주심을 강조하는 말씀이 유일하신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배우게 될 예수님이란 이름 속에도 구원자란 뜻이 있고 그리스도라는 호칭에도 구원자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이라고 부를 때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이 되신다는 의미가 제일 강하게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호칭이 “우리의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2.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자세
성경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10장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롬10:9)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우리 주”라고 고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주인이시오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인이 되심을 고백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 고백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 우리 자신은 종이나 천한 신분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서신서를 쓰면서 늘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임을 자랑했습니다.
사람들의 종이라면 창피스러운 일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우리주님의 종이라고 하면 그것은 너무나 영광스러운 일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처럼 예수님의 종이 아니고 자유인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를 비웃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종이 되지 못한 순간 사탄의 종이 되고 죄의 종이 되고 죽음과 영원한 멸망의 종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자신들은 자유인처럼 사는 것 같지만 철저하게 사탄의 속임수에 속아서 이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결국은 멸망의 길로 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망의 권세에서 참된 자유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저주에서 영원한 형벌에서 참된 자유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주로 고백하는 순간 우리는 참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주님을 부를 때 그 의미를 바르게 알고 불러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배운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서 주님의 이름을 바르게 불러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했습니다.
“주여”라고 부르기는 하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또 알면서도 행함이 없이 입으로만 “주여”라고 부르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기도 하고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고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고 해도 그 날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여 혹은 주님 하면 그 주님이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시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특별하신 분임을 알고 불러야 합니다.
그 의미를 잘 모르고 주여 주여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에서 통성기도를 하기 전에 주여 삼창을 부르고 기도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큰 소리로 간절하게 기도를 하자는 그 뜻을 몰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주님이 어떤 분인지 그 주님을 부를 때 우리가 어떤 자세로 주님을 불러야 되는지를 모르고 그냥 부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이라고 부르고 나서 기도하는 것을 들어보면 누가 주님인지 알 수 없는 기도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주인이고 주님이 종이 되어 달라는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다면 그 때는 주인님 제게 뭘 시키실 일은 없으십니까 제가 오늘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이런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주인이고 하나님이 종인 것처럼 이것저것 시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에서 가르쳐 주신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면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과 필요한 것들을 구하시면 됩니다.
주님이라고 하든지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하든지 결국은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니까 어떻게 부르든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할 것은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또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그 의미를 잊어버리고 아무렇게나 부르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은 구원의 주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부른다면 그 이름을 부름으로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는 것을 제일 소중하게 여기고 불러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마음으로 주님을 부르는 것은 구원과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많은 교회들이 엄청나게 변질이 되어 있습니다.
목회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 때문에
목회를 잘해서 재산 불리고 권력을 잡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잘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혹은 그들에게 세뇌되어서 자신도 모르게 따라가는 사람들 때문에
그들이 잘 사는 모습 보고 목회자가 된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교회가 아니고 또 하나의 타락한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종교가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설교를 엉터리로 합니다.
아예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을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교회의 외형적인 부흥을 위해서 구원의 도리를 선포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복 받고 잘 살기 위해서 성도들에게 복 받고 잘 사는 방법을 가르치고 그것이 최고라고 말합니다.
그 엉터리 목사들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이상한 것들이 교회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단 사상들이 거짓선생의 가르침들이 진리로 위장해서 교회에 들어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따르니까 그것이 진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개혁주의 목사들까지 그들을 따라 흉내를 내고 설교를 하니까 그런 엉터리 사상이 진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성도들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무엇이 성경의 진리인지 하나님의 뜻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부르면서 왜 내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엉터리 목사들에게 속아서 교회에 다니면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 예수님께서 나는 도무지 너를 알지 못한다. 나에게서 떠나라고 하는 청천병력 같은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구원이 중요한 것이고 구원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참된 복이고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유일한 구주가 되심을 바르게 알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3)주님을 부르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초대교회 때는 로마가 유럽을 중심으로 많은 나라들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로마황제는 각 나라의 종교들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어떤 신을 섬기던지 어떤 예배 형태를 가지던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자유롭게 종교 활동을 하도록 허락을 했습니다.
로마당국에 세금을 내는 일과 로마황제인 가이사의 주권을 인정하는 일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지배 하에서 살려면 “가이사가 주님이시다” 라고만 하면 원하는 종교가 무엇이든지 무슨 신을 섬기든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너무나 확실하게 믿고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예수님이 주님이시다.”는 말을 하지 않고 “가이사가 주님이시다.”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 이런 말은 아무리 해도 괜찮은데 예수님이 주님이시다 라고 하면 바로 잡혀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냥 적당히 예수님을 믿으면 됐지 꼭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분명하게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라고 고백을 했고 당당하게 예수님을 주님으로 불렀습니다.
그것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것과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이 주님이시라고 확실하게 주님의 이름을 부르다가 수천 명의 성도들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도 하고 화형에 처해지기도 하고 칼에 찔려 죽기도 하고 사나운 짐승에게 찢겨 죽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되심이 너무 자랑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참된 의미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주님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작은 이익과도 바꾸어버리고 조금만 불이익이 와도 바꾸어 버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바꾸어버렸습니다.
“혹시 주인이 바뀌었습니까?”
제가 기독신문에 낸 설교제목입니다.
말은 주여, 주여 하는데 주인이 바뀐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이 주님이 아니고 세상 쾌락이 주님입니다.
예수님이 주님이 아니고 돈이 재산이 주님입니다.
예수님이 주님이 아니고 세상의 성공이 출세가 주님입니다.
예수님이 주님이 아니고 나의 외모가 주님입니다.
예수님이 주님이 아니고 나 자신의 생각 내 자신의 철학 내 자신의 뜻이 주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부르는 의미가 무엇인지 바르게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시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부르는 참된 의미를 바르게 아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그 무엇과도 바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