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2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신경06)
본문 : 요 3:16-17
제목 : 그의 유일하신 아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사도신경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같이 한번 외어 보실까요?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고 할 때 불치병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정도의 그런 능력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는 그런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좋으시고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이시라고 해도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겠지만 그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육신의 아버지 같은 분이 아니라 완벽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 주실 수 있는 아버지이십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창조해 주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만물이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아주 선하게 창조하셔서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여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이 우주 만물을 섭리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우주 만물을 본존하시고 유지하시고 통치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짧은 소견으로 볼 때 우리에게 불리하고 세상이 공평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우리 편에 서서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 우주 만물의 역사를 진행시키고 계시는 분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부터는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실까요?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사도신경의 절반이 예수님에 관한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님의 나심과 고난 받으심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
그리고 승천하심과 심판주로 다시 오실 것에 대한 고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그의 유일하신 아들”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기 “그의”란 앞서 말씀드린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말할 때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말씀을 하셨는데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를 나타낼 때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과 예수님과 하나님 관계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전적으로 다릅니다.
사람의 이해력을 동원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이용했지만 실제적인 관계는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1.“유일하신 아들”의 뜻
새로 번역된 새번역 사도신경은 우리가 읽은 대로 “유일하신 아들”로 번역을 했습니다.
이전의 사도신경에서는 “그 외아들”로 번역을 했던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3:16절에서는 “독생자”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일하신 아들”, “외아들” “독생자”는 같은 말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잘 못 이해를 해서 인간적인 관계로 이해를 하면 여러 가지 웃지 못 할 이상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신데 어째서 아들을 하나밖에 못 두셨을까?
아들을 많이 두면 골치가 아프다는 것을 하나님도 아셨을까?
아들을 낳으실 때 어떻게 나셨을까?
하나님이 아버지시면 어머니는 누구실까?
이런 이상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독생자”로 번역된 헬라어는 모노게네스(μονογενής)라는 단어입니다.
“홀로 태어난” “독생한” “외아들” “독생자” 이런 단어로 번역이 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유일한 아들”이나 “외아들”이나 “독생자”로 번역을 하고 그렇게 이해를 합니다.
우리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을 이야기할 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아들이시오 외아들이시오 독생자이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외아들이나 유일한 아들, 혹은 독생자라는 말은 우리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외아들이나 독생자와 같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번역에서는 외아들이나 독생자라는 말을 쓰지 않고 “유일하신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모노게네스(μονογενής)라는 단어는 모노스(μονος)라는 말과 기노마이(γίνομαι)라는 단어가 합쳐서 된 단어입니다.
모노스(μονος)라는 단어는 유일한, 하나뿐인, 홀로 있는, 이런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기노마이(γίνομαι)라는 단어는 존재하게 되다, 발생하다, 창조되다, 생기다, 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모노스라는 말이 유일하다 하나뿐이다 라고 해서 외아들 혹은 독생자라는 말을 썼지만 여기에는 단 하나뿐인 특별한 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리고 기노마이라는 말에 창조되다, 생기다, 라는 뜻이 있어서 태어난 아들이나 생겨난 아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창조되거나 생기거나 잉태된 그런 뜻 보다는 존재하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유일하신 아들이란 하나님께서 인간들처럼 외아들을 낳으시거나 창조하시거나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은 아주 유일하게 아주 특별하게 하나님의 아들로 존재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이해를 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우리들과 같은 그런 의미에서 아들이 아닙니다.
또 우리 인간들처럼 낳으시거나 아니면 창조하시거나 하신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 아니라 물론 하나뿐인 아들이지만 아주 유일하게 특별하신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2.성부 하나님과의 관계
우리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라고 할 때 그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를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와 같은 그런 관계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주 특별한 의미에서 유일하신 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 특별하신 관계가 어떤 관계라는 것일까요?
성경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기독교에는 “삼위일체”라는 아주 독특한 교리가 있습니다.
이 삼위일체교리는 그 교회가 혹은 그 교파나 교단이 이단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제일 첫 번째 조건입니다.
삼위일체를 부인하면 무조건 이단입니다.
물론 삼위일체를 시인한다고 다 바른 교회는 아닙니다.
삼위일체는 시인하지만 다른 것에서 이단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하나님은 한분이신데 거기 삼위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부하나님이 계시고 성자예수님이 하나님으로 계시고 성령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분이시라고 하는 말은 성경에 여러 군데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6:4절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라고 했습니다.
고전 8:4절 하반 절에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라고 했습니다.
딤전 2:5절에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기록된 말씀 외에도 하나님이 한분되심을 말씀하는 성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한분이신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도 하나님이시고 성령님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세분으로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분이신데 세분이신 하나님을 우리가 잘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리를 하기를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정리를 한 것입니다.
한분이신데 삼위가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분이신데(삼위이신데) 하나로 존재하신다고도 말합니다.
그 신비한 진리를 사람의 언어로 정확하게 말씀을 드릴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세계에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모습으로 존재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서 생각할 것은 성부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시고 예수님이 아들이라고 한다면 그 관계가 어떤 관계인가 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에서 말씀하고 있는 관계는 성부와 성자가 같은 관계 즉 하나라고 설명을 하는데 왜 아버지와 아들로 구별을 하고 있으며 그 구별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궁금증 때문에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이단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주후 200년경에 오리겐(Origen)이라는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철학에 능통한 사람으로 그 철학으로 성경을 해석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유출설”(流出說)이라는 것을 주장했는데 물통에 물을 많이 부으면 물이 넘쳐나는 것처럼 하나님이 충만하셔서 마치 물이 넘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에게서 예수님이 흘러나오고 또 이 우주 만물도 흘러나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분명하지 못해서 철학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해 본 것입니다.
그러면서 흘러나온 예수님은 하나님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중간쯤 되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분은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으신 분이라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 이런 쓸데없는 학설을 만들어서 이단으로 정죄된 것입니다.
그 후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아리우스(Arius)라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교회의 장로로 이 사람도 유명한 철학가라고 했습니다.
이분의 주장도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일하시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은 두 분이라고 하든지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해야지 어떻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본체라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은 피조물이고 피조물이기 때문에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과 비슷한 분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거기에 반대를 한 사람이 아다나시우스(Athanasius)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비슷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의 주장이 주후 379년에 로마황제가 소집한 종교회의에서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신앙고백서를 만들었는데 그것을 “니케아 신앙고백”이라고 합니다.
그 신앙고백에서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분명하게 밝힙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이 신앙고백이 기독교의 정통교리로 개신교와 가톨릭에서 같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한 본체를 이루신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동일체이시면서 서로 다른 인격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3.유일하신 아들이 주는 의미
예수님이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라는 것과 삼위일체의 교리는 우리 인간이 이해하기가 힘이 들고 오히려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여러 이단들이 나오게 한 것인데 왜 굳이 이런 표현을 쓰셨을까요?
그런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어떻게 다 이해를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우리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1)구원의 중요성을 강조하심
오늘 본문 16절과 17절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고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그 목적을 16절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7절에는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말과 심판하지 않고 구원하신다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인생들은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고 멸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까지 보내시면서 하시고자 하는 일은 그런 우리 인간들이 심판을 받아서 멸망에 빠지지 않고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으셨다면 귀찮게 예수님을 보내시거나 이런저런 일들을 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말 안 들으면 노아홍수 때처럼 물로 세상을 쓸어버리면 됩니다.
물이 아니면 소돔과 고모라처럼 불로 태워버리면 됩니다.
그런 것 동원하지 않아도 이 세상을 멸망시키는 일은 아주 간단합니다.
지구를 태양에 더 가까이 가게 하시든지 더 멀어지게 하시든지 이상한 병균 좀 만들어서 퍼트려버리시든지 인간들끼리 서로 싸우게 하셔서 여기저기 만들어진 핵폭탄 사용하게 하면 금방 없어지고 맙니다.
꼴랑 돈 몇 푼 있다고 뭐 좀 살만하다고 뭐 좀 칭찬받는 일 했다고 교만하게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잘난 척하고 사는 이런 인생들을 하나님께서 왜 살려두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죄에서 영원한 멸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구원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는데 그 예수님은 하나님의 가장 귀한 유일하신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세상 사람들처럼 이런 구원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그런 행복 너무 바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은혜로 거저 받은 이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2)구원을 통해서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나타내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은 아버지가 자식에게 주는 최고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희생하면서 까지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 참 가소롭습니다.
자기 가진 것은 조금도 포기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것 다하고, 자기 갖고 싶은 것 다 갖고, 자기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그래도 남는 것이 있으면 눈곱만큼 희생하면서 생색은 다 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할 때 하나님의 가장 귀한 것을 희생하심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셔서 우리에게 주실 때는 말씀으로만 하셔도 창조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실 때는 말씀으로가 아닌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하시면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3)그 구원을 통해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을 주심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최고의 사랑으로 최고의 것을 내어주시면서 구원을 얻게 해 주신 것은 이 구원을 통해서 우리가 받는 것이 너무나 크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심판을 면하는 것
영원한 멸망을 면하는 것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하는 것
영원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
슬픔과 눈물이 없는 곳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이 없는 곳
황금보석으로 꾸민 아름다운 나라가 있는 곳
우리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는 곳에서 참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
이런 너무나 귀한 것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받는 구원 속에 포함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귀한 이 일을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친히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을 우리는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라고 부르고 그 분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십니다.
그분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중요성을 알게 하고 최고의 사랑으로 최고의 것을 주시기 위해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독생자를 우리를 위해 보내주셨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