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9.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골32)
본문 : 골 4:7-9
제목 :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보낸 이유.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신약성경을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눕니다.
복음서와 역사서 서신서 그리고 예언서로 분류됩니다.
복음서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이 사복음이 기록되어 있어서 사복음서라고 합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사서는 사도행전을 역사서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신약시대의 교회가 시작되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에서부터 유다서까지를 서신서라고 합니다.
서신서들은 그렇게 시작된 교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다시 한 번 바르게 알려줌으로서 교회가 바로 서서 가게 해 줍니다.
복음서 시대와 사도행전의 시대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성령님의 특별하신 역사로 교회가 시작이 되는 아주 특별한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적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귀신이 쫓겨나가고 병자들이 일어나고 심지어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그런 기적적인 특별한 일들이 이 세상에 계속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알리고 그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 특별한 시기에 기적들이 일어났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평상시에는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각기 흩어져서 교회를 세우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교회에서는 옛날처럼 그런 기적이 많이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박해가 심하게 되고 여러 이단들이 교회에 침투하고 거짓선생들이 들어와서 믿음에 혼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더군다나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사도바울마저 감옥에 갇혀버렸습니다.
옛날 같으면 감옥에서 기도만 하고 찬송만 해도 옥문이 열려서 나올 수 있었는데 이제는 기도도 안하고 찬송도 안하는지 감옥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고 세월만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을 에바브라가 방문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이미 들으신 바대로 에바브라는 바울에게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골로새로 와서 골로새교회를 세운 사람입니다.
에바브라가 바울을 방문한 이유가 두 가지가 있었다고 봅니다.
하나는 지금 골로새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에 대해서 보고하고 그 답변을 얻어오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골로새교회에는 이단들과 거짓선생들이 들어와서 온갖 잘못된 교리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지켜야 된다 할례를 받아야 하고 금식과 고행을 행하여야 한다.
신비주의나 천사숭배 사상들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있었습니다.
그런 이단들에 대항해서 어떻게 바른 신앙을 유지해야 할 것인가를 자문하기 위해서 바울을 방문했던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답변을 쓴 것이 골로새서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포함한 온 우주만물의 창조주가 되시며 죄로 오염된 온 우주를 새롭게 재창조하신 구주가 되시며 지금도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통치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주가 되시며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받았고 그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향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이 뒤집힐만한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 진리는 변함이 없는 것이며 이 진리 안에서 우리는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렇게 활발하게 기적을 일으키면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이 왜 그렇게 힘이 없이 감옥에 갇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답변이 오늘 본문의 말씀 중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골로새교회에 보내는 서신서를 마감하면서 이 서신서를 전달하고 있는 두기고와 오네시모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 그들을 보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신실한 일꾼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이 서신서를 두기고 편에 보냈고 그와 함께 오네시모도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들을 소개하면서 “사랑 받는 형제”, “신실한 일꾼”, “주 안에서 함께 종 된 자”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서신서는 보통 서신이 아니고 하나님의 비밀이 들어 있는 특별한 서신입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1:26-27)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이 비밀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영원한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비밀문서를 아무에게나 맡길 수가 없습니다.
실실하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는 사람이 편지를 가지고 온다면 사람들이 그것을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중요한 서신을 가지고 가는 사람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 중요한 임무를 맡은 두기고와 오네시모는 정말 신실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두기고가 어떤 일을 한 사람인지 성경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동행한 사람입니다.
바울이 아시아로 보내는 편지인 에베소서, 골로새서, 디모데전서를 가지고 간 사람입니다.
오네시모라는 사람의 이야기는 빌레몬서에 잘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원래 빌레몬의 종이었는데 도망하였다가 바울을 만나서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성도가 된 사람입니다.
주인인 빌레몬에게 바울이 특별히 편지를 써서 이제는 유익한 사람이 되었으니까 용서하고 종처럼 생각하지 말고 사랑받는 형제로 받아주라는 편지를 했는데 그것이 빌레몬서입니다.
이처럼 두기고나 오네시모는 원래 그렇게 특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복음을 받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받는 형제가 되었고 신실한 일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나 복음의 일꾼이 되는 중요한 핵심은 신실함입니다.
신실함이 없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복음을 맡은 일꾼도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 신실함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피스토스(πιστός)라는 단어인데 믿을만한 충실한 이란 뜻을 가진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전서 4:1-2절에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충성이라는 말도 피스토스 즉 신실함이라는 단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신실 혹은 충성은 하나님의 비밀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맡은 자들의 유일한 자격입니다.
하나님의 비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맡은 자들의 임무가 너무나 소중합니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이 비밀을 바르게 전하지 않고 변질시킨다면 그 영향은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비밀의 맡은 자가 신실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복음의 진리를 조금도 가감이 없이 그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무엇을 조금만 더하거나 거기 있는 것을 하나라도 빼어버리면 아주 엉뚱한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정말로 그대로 변질됨이 없이 전해야 합니다.
옛날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종이 주인의 시중을 들기 위해서 주인을 따라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주인을 잘 모셔야 할 종이 주인을 잘 섬기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니까 주인이 화가 나서 등에다가 편지를 써서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종이 궁금해서 지나가던 사람에게 뭐라고 썼는지를 알아보았더니
이놈이 집에 도착하거든 곤장을 치고 감옥에 처넣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종이 얼른 그 글을 지우고 대신 이놈이 내려가거든 우리 딸과 결혼을 시켜서 잘 살게 하라고 고쳐 쓰고 집에 와서 주인의 딸과 결혼을 해서 잘 살았다는 옛날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우리나라 가요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남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가슴 아픈 사연에 울고 웃는 사람도 복에 겨워 웃는 사람도
점 하나에 울고 웃는다 점 하나에 울고 웃는다
아~~~~인생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전하는 복음이란 엄청나게 변질된 복음들입니다.
순수한 십자가의 복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잘 사는 복음을 복음이라고 전하고 내 스스로 바르게 살아서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엉터리 복음입니다.
아예 복음을 전하지 않고 세상적인 성공학이나 윤리도덕이나 행복론 같은 것들을 복음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것을 좋아하니까 그런 것 전하고 인기 있는 목사가 되어서 잘 살기 위해서 엉터리를 복음이라고 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복음의 비밀을 맡은 자가 신실하다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삶이 거짓 없는 신실한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은 잘 하는데 그 사람의 삶을 보니까 엉터리라고 한다면 그가 전하는 복음이 거짓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믿는 것과 행함이 일치해야 합니다.
전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일치해야 합니다.
또 복음의 비밀을 맡은 자가 신실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거 어려움을 당해도 변절하지 않고 끝까지 충성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다가 신앙생활 하다가 복음을 전하다가 하는 일이 좀 잘 안 된다고 어려움을 당한다고 딴 길로 가는 사람은 신실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가 보면 어려움도 당합니다.
특별히 십자가의 복음을 따라가는 삶에는 어려움이 더 많이 따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좁은 길이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한결같이 비가 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변함없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신실한 사람 참된 믿음이 있는 사람 충성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두기고나 오네시모처럼 하나님의 비밀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맡아서 전하는 자들입니다.
그 비밀의 진리를 바르게 알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신실한가에 따라서 우리의 복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2.바울의 사정을 바르게 이해하게 하기 위해서
오늘 본문에 편지를 써서 신실한 종들에게 보내는 것은 바울이 처한 사정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7절에도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라고 했습니다.
8절에도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9절에도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라고 했습니다.
당시 바울이 처한 사정이란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서 감옥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정을 골로새교인들이 들어서 무슨 효과가 있을까요?
바울이 옛날처럼 이적을 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오고 그런다면 그런 내용을 골로새교인들이 잘 알면 더욱 믿음에 유익이 되겠지만 감옥에 잡혀서 고생을 하는 것이 무슨 유익된 일이라고 사정을 알게 하려고 편지를 보낸다는 것일까요?
오늘날 사람들이 간증을 하면 대부분 옛날에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거지처럼 살았는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 모든 일이 잘 되어서 이렇게 잘 산다고 간증을 합니다.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면서 예화를 쓰는 것도 대부분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예수님 믿고 충성을 많이 했더니 복을 받아서 성공을 했다 예수님 믿고 잘 살고 싶으면 충성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거꾸로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옛날에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때는 꽤나 잘 나가던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나서 모든 것을 다 잃었고 이제는 감옥에 갇혀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정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골로새교회의 교인들도 이런 사정을 다 알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는 것일까요?
이런 사정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신앙에 유익함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감옥에 갇혀서 고생을 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끝까지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정말로 가치가 있는 너무나 귀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저희 순교하신 할아버지 양용근 목사님 책을 쓰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자료를 모으면서 준비를 하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저희 집안에서는 목사님의 순교를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온 집안에서 목사님이 일본에서 법대를 졸업하고 돌아오면 총독부에 들어가서 권력 있는 사람이 되어서 집안을 일으킬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벼슬은 안 하고 평양신학교에 입학해서 목사가 되셨고 목사가 되셨으면 큰 교회를 맡아서 목회나 잘 하실 일이지 신사참배반대운동하신다고 감옥에 갇혀서 옥사를 하시고 말았기 때문에 집안사람들은 다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가만히 목사님의 마음이 되어서 생각을 해봅니다.
그 때 목사님의 나이 서른여덟입니다.
아름답고 사랑스런 아내가 있습니다.
이제 두세 살밖에 안 된 막내딸을 포함해서 정말로 사랑스런 아들 둘 딸 둘 사남매가 있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일본법대 졸업장도 있고 평양신학교 졸업장도 있습니다.
목사 안수도 받았고 담임할 교회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장래가 촉망된다고 존경하는 목사였습니다.
일본 순경이나 공산당이 일부러 죽이려고 하고 목사님은 안 죽으려고 반항을 하다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죽임을 당한 것도 아닙니다.
제발 살려줄 테니 말 한마디만 예하고 나가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일본왕은 신이라고 하는 말에 예라고만 하면 풀어준다는데도 그 예라는 말 한마디 안 하고 순교하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사람들이 몰라주고 비록 지금은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서 모든 가족들이 고생을 한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믿음을 사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옛날엔 몰랐지만 제가 목사가 되어서 복음의 진리를 알고 난 후에 그 순교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알았습니다.
그 순교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진실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숨까지도 버리고 사수하려고 했던 그 믿음이 정말로 귀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로인해 목사님의 네 형제의 모든 자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믿음이 소중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조금 출세하고 잘 사는 것보다 믿음의 소중함을 알았습니다.
만약에 바울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좋았을 때만 예수님을 따르고 뭐 잘 안될 때 예수님을 버리고 떠났다면 그들이 전한 복음을 우리가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힘들고 어렵게 살면서도 다 비참한 순교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그들이 전한 복음을 부인하지 않고 그대로 전하려고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전한 복음을 이렇게 믿고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 있게 자신의 형편을 알리려고 하는 것이 이런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내가 내 사적인 이익과 안일을 위해서 거짓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목숨을 걸고 내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을 전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또 하나 더 알기 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은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어려운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 세상의 일에 급급하지 아니하고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향해서 가는 것임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3.마음의 위로를 받게 하기 위해서
본문 8절에 그를 특별히 보낸 이유를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지금 골로새교회의 교인들은 많은 근심과 고통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 골로새교회의 교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바로 받고 그 복음을 믿고 영원한 천국을 향해서 가고 있는데 사람들이 자꾸 시비를 하고 자꾸 자신들이 가는 길이 잘못됐다고 하면서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 선생들이 이단들이 자신들이 가는 길을 비웃으며 유혹을 하고 있어서 마음이 정말로 괴로운 상태에 있었습니다.
신비한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봐라 우리는 이렇게 기적도 일어나는데 너희들은 그게 뭐냐 라고 비웃습니다.
유대교 출신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례도 행하지 않고 율법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비웃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복 받고 잘 살아야 되는데 너희들은 예수님을 믿어도 늘 가난하게 사느냐고 비웃습니다.
너희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바울도 감옥에 잡혀갔는데 너희들은 왜 그 길을 가느냐고 비웃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교회들이 우리처럼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믿고 복 받아서 잘 살아야 하고 자기들은 잘 살고 있다고 자랑합니다.
예수님 믿으면 신비한 기적들이 일어나서 죽을 사람도 살아나고 망한 사업도 더 잘되게 하는데 너희들은 왜 그 모양으로 사느냐고 비웃습니다.
아직도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아무도 가보지도 못한 천국이 있고 영생이 있다고 믿느냐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고야 하고 비웃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다 되냐 똑 바로 살아야지 믿습니다. 믿습니다. 그런 말 하지 말고 윤리도덕을 잘 지키고 선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듭니까?
그렇지 않다고 믿기는 믿지만 마음이 흔들릴 때가 많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혹시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혹시 있지도 않은 천국을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바보는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시기도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이 골로새서에 있는 말씀으로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우리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만왕의 왕이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천지 만물을 다 창조하셨고 지금도 다 다스리고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만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다른 길은 절대로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일을 많이 해도 아무리 죽도록 노력을 한다고 해도 십자가를 믿는 믿음 외에는 이 죄악에서 구원받을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만 알게 하시는 비밀입니다.
이 비밀을 알도록 허락받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리 똑똑해도 이 사실을 알 수도 믿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만 아는 특급비밀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의 비밀입니다.
이 말씀에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벌벌 떨고 있을 때 우리는 승리의 찬송 영광의 찬송을 부르며 기뻐 뛰며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바울은 골로새서교회의 교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같은 고통을 당하는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십자가의 복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십자가의 비밀은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자들만 알게 해 주시는 비밀입니다.
그 비밀을 우리가 알고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변함없이 신실 되게 이 복음을 따르며 많은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