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2.2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83)
본문 : 롬 15:28-29
제목 : 열매와 축복
바울이 이방인을 전도하라는 명령을 받고 3차에 걸쳐서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전도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전도했고 많은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로마를 거쳐서 땅 끝이라고 생각이 되던 서바나까지 전도 여행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루살렘으로 다시 가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방인 교회들이 거두어 준 헌금을 받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에는 그런 내용들이 기록되지 않았지만 사도행전을 보면 지금 이 장면 즉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나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한다는 것을 안 여러 사람들이 와서 만류를 했습니다.
당신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거기서 결박을 당하여 잡혀 가게 될 것이고 결국은 죽게 될 것이니 가지 말라고 울며불며 간곡히 당부를 했습니다.
그 때 바울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 21:13)라고 했습니다.
그냥 로마로 가서보고 싶은 성도들을 만나 보고 서바나로 가서 복음을 전하면 좋았을 것인데 왜 이렇게 잡혀 갈 각오를 하면서 죽을 각오를 하면서 꼭 예루살렘으로 먼저 가고자 했을까요
그 첫 번째 이유는 지난주에 말씀을 드린 대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여 전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미 복음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섬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두 번째 세 번째 이유를 오늘 본문이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했던 이유 또 하나는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하기 위해서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인들에게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믿고 성도들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증하여 보여 줌으로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즉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하신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확증함으로 고난을 당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에게 힘이 되고자 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 바울 자신이 로마교회를 방문할 때에도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수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고 있으며 이방인들에게 전해지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그 복음이라는 것을 서로 인정함으로서 로마 교회의 성도들이 가진 그 복음이 얼마나 큰 복이라는 것을 더욱 잘 알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니면서 배운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이려는 유대인들 편에 서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도성과 그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 좀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기회에 자신이 복음을 전하여 맺은 열매들 그들이 헌금한 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가 한 일에 대해서 확증을 받고 이제 바울이 전하는 그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요 자신이 이방인 전도를 위해서 부름을 받은 사도라는 확증을 받는 것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런 본문의 배경을 생각하면서 오늘 본문에 기록된 열매와 축복이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고 생각을 해 보려고 합니다.
1.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본문 28절에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서바나 선교 계획을 가지고 중간 기착지(奇着地)로서 로마를 곧바로 가지 않고 지체하면서까지 예루살렘을 굳이 방문하고자 했던 의도가 본문 가운데 명확히 나타나 있습니다.
바울은 그가 이방인 교회에서 모은 헌금을 직접 예루살렘에 가져가지 않고 그의 신실한 동역자들을 통해서 대신 보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굳은 결심을 가지고 직접 예루살렘을 방문하고자 했던 주된 이유는 기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 교회에 그의 선교 사역을 낱낱이 보고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들을 열매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히 성도들이 보낸 연보를 열매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할 때 열매로 말씀을 하신 일이 있습니다.
이사야 5장 2절 이하에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 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 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 백성답게 살기를 바라고 그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 주셨는데 하는 짓은 들 포도같이 바르게 살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13장에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면서 나무에는 열매가 있어야 되듯이 성도들도 열매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일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장에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알곡은 천국 곡간에 들이고 가라지는 불사른다고 말씀을 하심으로 천국 백성은 알곡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씨앗이라고 한다면 그 복음을 받은 성도는 그 씨앗을 움트게 하고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 나무와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고 그 흘리신 피로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구원 받은 성도라고 한다면 이 세상 사람들이 맺지 못하는 열매가 우리들에게는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을 때는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 받았을 때나 구원 받기 전이나 그의 삶이 똑 같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신학교 때 교수님 한 분이 이런 비유로 말했습니다.
쓰레기통에 폐 깡통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쓰레기통에서 폐 깡통을 골라내는 것으로 끝이 난다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폐 깡통이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게 만드는 것까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범죄 타락하여 아무런 쓸모도 없이 버려진 상태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그 버려짐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다시 원래 인간의 도리를 다 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이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구원받은 백성으로서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이런 열매들이 많이 맺혀지시기를 바랍니다
구원받은 백성의 증거가 삶의 열매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
본문 29절 말씀에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축복"은 헬라어로 율로기아(ευλογια)라는 말인데 이 말은 좋은 이라는 뜻을 가진 유(ευ)라는 말과 말씀이라는 뜻을 가진 로고스(λογοs)라는 말이 합하여진 말입니다.
어원대로 직역을 하면 좋은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어원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로 이해를 합니다
이 "축복" 즉 "율로기아"라는 말은 크게 세 가지의 뜻으로 구분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쓸 때는 찬양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또 이 말을 사람이 사람들에게 쓸 때는 복을 빌어 주는 말로 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쓰실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좋은 말씀 약속의 말씀들을 통해 주시는 복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축복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큰 은혜라는 말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신령한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율로게오의 복 즉 은혜는 말로 다 할 수 없이 너무나 충만한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하거나 우리가 그 것을 믿지 못해서 그렇지 알고 보면 너무나 많습니다.
1)하나님의 자녀요 후사가 되는 복
롬8:16,17절-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후사 곧 대를 이을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2)만물이 다 우리의 것이 되는 복
고전 3:21-23-"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만물의 모든 것이 다 이제 우리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3)이 모든 것을 풍성히 누리는 복
딤전6:17-"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그것을 누리며 살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의 주인이 되어 그것을 누리며 산다는 것입니다.
4)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에베소서1: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과히 측량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복을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칼빈주의자들입니다
즉 칼빈이 보았던 그 눈으로 성경을 보는 자들입니다.
칼빈주의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본만 말씀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충만한 은혜를 생각할 때 이렇게 생각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구원을 추구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것이 예수님의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의 은사를 추구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기름 부으심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힘을 추구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통치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구속을 추구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고난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저주에서 면죄를 추구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생명의 소생을 추구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도 불멸도 영원한 천국도 모든 좋은 것이 다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칼빈주의자들이 갖는 축복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한 축복이 이것입니다
3.하나님의 열매가 되는 축복
우리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축복은 우리가 하나님의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혀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큰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열매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건져 주셨는데 그것은 목적이 있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우리가 정말로 바른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 살았던 것이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라에서 많은 돈을 들여서 백성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백성들이 백성의 의무를 다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군에서 군인들을 먹이고 재우고 훈련시키는 것은 나라를 지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은 나이들었을 때 도움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라에 군에 부모에 불출 불효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참된 자유를 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바르게 살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큰 은혜를 받고서도 막상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로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지인 우리를 예수님이라는 나무에 접붙임을 받게 하시고 생명을 얻게 하신 것은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충만한 은혜를 공급받으면서도 거기에 합당한 열매가 없으면 다시 잘라 불사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쓸모없는 인생들이었습니다
말라 죽어가는 나무 가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님이라는 참 포도나무에 접붙임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새 생명을 얻었고 열매를 맺는 소중한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이 없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한 축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 소중한 것을 받아 새로운 피조물로 새 생명을 얻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런 귀한 것을 주셨나를 생각할 줄 아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남은 생애에 의의 열매 선한 열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열매들을 많이 맺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 롬 15:28-29
제목 : 열매와 축복
바울이 이방인을 전도하라는 명령을 받고 3차에 걸쳐서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전도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전도했고 많은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로마를 거쳐서 땅 끝이라고 생각이 되던 서바나까지 전도 여행을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루살렘으로 다시 가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을 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방인 교회들이 거두어 준 헌금을 받아 가지고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에는 그런 내용들이 기록되지 않았지만 사도행전을 보면 지금 이 장면 즉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나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한다는 것을 안 여러 사람들이 와서 만류를 했습니다.
당신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거기서 결박을 당하여 잡혀 가게 될 것이고 결국은 죽게 될 것이니 가지 말라고 울며불며 간곡히 당부를 했습니다.
그 때 바울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 21:13)라고 했습니다.
그냥 로마로 가서보고 싶은 성도들을 만나 보고 서바나로 가서 복음을 전하면 좋았을 것인데 왜 이렇게 잡혀 갈 각오를 하면서 죽을 각오를 하면서 꼭 예루살렘으로 먼저 가고자 했을까요
그 첫 번째 이유는 지난주에 말씀을 드린 대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여 전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미 복음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섬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두 번째 세 번째 이유를 오늘 본문이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했던 이유 또 하나는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하기 위해서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인들에게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믿고 성도들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증하여 보여 줌으로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즉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하신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확증함으로 고난을 당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에게 힘이 되고자 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 바울 자신이 로마교회를 방문할 때에도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수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고 있으며 이방인들에게 전해지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그 복음이라는 것을 서로 인정함으로서 로마 교회의 성도들이 가진 그 복음이 얼마나 큰 복이라는 것을 더욱 잘 알게 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니면서 배운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이려는 유대인들 편에 서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도성과 그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 좀 의심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기회에 자신이 복음을 전하여 맺은 열매들 그들이 헌금한 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가 한 일에 대해서 확증을 받고 이제 바울이 전하는 그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요 자신이 이방인 전도를 위해서 부름을 받은 사도라는 확증을 받는 것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런 본문의 배경을 생각하면서 오늘 본문에 기록된 열매와 축복이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고 생각을 해 보려고 합니다.
1.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본문 28절에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서바나 선교 계획을 가지고 중간 기착지(奇着地)로서 로마를 곧바로 가지 않고 지체하면서까지 예루살렘을 굳이 방문하고자 했던 의도가 본문 가운데 명확히 나타나 있습니다.
바울은 그가 이방인 교회에서 모은 헌금을 직접 예루살렘에 가져가지 않고 그의 신실한 동역자들을 통해서 대신 보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굳은 결심을 가지고 직접 예루살렘을 방문하고자 했던 주된 이유는 기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 교회에 그의 선교 사역을 낱낱이 보고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확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들을 열매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히 성도들이 보낸 연보를 열매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할 때 열매로 말씀을 하신 일이 있습니다.
이사야 5장 2절 이하에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 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 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 백성답게 살기를 바라고 그들을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 주셨는데 하는 짓은 들 포도같이 바르게 살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13장에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면서 나무에는 열매가 있어야 되듯이 성도들도 열매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일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장에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알곡은 천국 곡간에 들이고 가라지는 불사른다고 말씀을 하심으로 천국 백성은 알곡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씨앗이라고 한다면 그 복음을 받은 성도는 그 씨앗을 움트게 하고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 나무와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고 그 흘리신 피로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구원 받은 성도라고 한다면 이 세상 사람들이 맺지 못하는 열매가 우리들에게는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을 때는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구원 받았을 때나 구원 받기 전이나 그의 삶이 똑 같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신학교 때 교수님 한 분이 이런 비유로 말했습니다.
쓰레기통에 폐 깡통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쓰레기통에서 폐 깡통을 골라내는 것으로 끝이 난다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폐 깡통이 다른 용도로 쓰일 수 있게 만드는 것까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범죄 타락하여 아무런 쓸모도 없이 버려진 상태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그 버려짐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다시 원래 인간의 도리를 다 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이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구원받은 백성으로서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이런 열매들이 많이 맺혀지시기를 바랍니다
구원받은 백성의 증거가 삶의 열매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
본문 29절 말씀에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축복"은 헬라어로 율로기아(ευλογια)라는 말인데 이 말은 좋은 이라는 뜻을 가진 유(ευ)라는 말과 말씀이라는 뜻을 가진 로고스(λογοs)라는 말이 합하여진 말입니다.
어원대로 직역을 하면 좋은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어원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로 이해를 합니다
이 "축복" 즉 "율로기아"라는 말은 크게 세 가지의 뜻으로 구분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쓸 때는 찬양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또 이 말을 사람이 사람들에게 쓸 때는 복을 빌어 주는 말로 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쓰실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좋은 말씀 약속의 말씀들을 통해 주시는 복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축복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큰 은혜라는 말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신령한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율로게오의 복 즉 은혜는 말로 다 할 수 없이 너무나 충만한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하거나 우리가 그 것을 믿지 못해서 그렇지 알고 보면 너무나 많습니다.
1)하나님의 자녀요 후사가 되는 복
롬8:16,17절-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후사 곧 대를 이을 상속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2)만물이 다 우리의 것이 되는 복
고전 3:21-23-"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만물의 모든 것이 다 이제 우리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3)이 모든 것을 풍성히 누리는 복
딤전6:17-"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그것을 누리며 살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의 주인이 되어 그것을 누리며 산다는 것입니다.
4)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에베소서1: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과히 측량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복을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칼빈주의자들입니다
즉 칼빈이 보았던 그 눈으로 성경을 보는 자들입니다.
칼빈주의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본만 말씀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충만한 은혜를 생각할 때 이렇게 생각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구원을 추구하면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것이 예수님의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의 은사를 추구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기름 부으심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힘을 추구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통치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구속을 추구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고난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저주에서 면죄를 추구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생명의 소생을 추구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영생도 불멸도 영원한 천국도 모든 좋은 것이 다 예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칼빈주의자들이 갖는 축복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한 축복이 이것입니다
3.하나님의 열매가 되는 축복
우리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축복은 우리가 하나님의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혀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큰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열매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건져 주셨는데 그것은 목적이 있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은 우리가 정말로 바른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 살았던 것이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라에서 많은 돈을 들여서 백성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백성들이 백성의 의무를 다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군에서 군인들을 먹이고 재우고 훈련시키는 것은 나라를 지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것은 나이들었을 때 도움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라에 군에 부모에 불출 불효하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참된 자유를 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바르게 살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큰 은혜를 받고서도 막상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로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지인 우리를 예수님이라는 나무에 접붙임을 받게 하시고 생명을 얻게 하신 것은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충만한 은혜를 공급받으면서도 거기에 합당한 열매가 없으면 다시 잘라 불사른다고 말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쓸모없는 인생들이었습니다
말라 죽어가는 나무 가지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님이라는 참 포도나무에 접붙임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새 생명을 얻었고 열매를 맺는 소중한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이 없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풍성한 축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 소중한 것을 받아 새로운 피조물로 새 생명을 얻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이런 귀한 것을 주셨나를 생각할 줄 아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남은 생애에 의의 열매 선한 열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열매들을 많이 맺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