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5.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골28)
본문 : 골 3:20-21
제목 : 아비들아.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요즘 가정마다 아이들 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우리 목사님들 가정에도 아이들 때문에 문제가 많습니다.
훌륭한 목사님 가정의 아이들일수록 교회에 출석도 하지 않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큰 교회 목사님들이 목회에 너무 신경을 쓰다가 보니까 아이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신경을 쓴다고 해도 요즘 세상이 너무나 악해져서 세상에 나가서 놀다가 보면 누구나 막론하고 그렇게 되어버리기가 쉽습니다.
학교가 아이들을 바르게 교육 시키는 교육의 전당이 아니라 사탄의 소굴이라고 합니다.
경쟁하고 서로 싸워야 하는 전쟁터이고 강자가 약자를 왕따 시키고 착취하는 곳이고 조폭들처럼 조직이 있고 폭력이 있는 곳에 우리 아이들을 매일 보내고 있습니다.
또 세상은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술이나 담배나 마약이나 오락이나 도박이나 뭐든지 돈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는 세상에 우리 아이들을 내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집에 가만히 있어도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서 온갖 퇴폐문화들과 나쁜 사상에 오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잠깐 교육적인 말 몇 마디 했다고 아이들을 바르게 자라게 할 수 없습니다.
부모들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아이들의 마음을 바르게 잡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전 국민이 나서서 이런 풍토를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 아이 하나만 바르게 키울 수가 없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력 위주의 사회에서 학력이 없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학교는 보내야 합니다.
어렵다고 해서 우리 자녀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녀가 어떤 자녀인데 고스란히 사탄에게 내어줄 수가 있겠습니까?
힘이 든다고 해도 어렵다고 해도 자녀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20절의 말씀은 자녀가 부모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고 21절의 말씀은 부모가 자녀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린이 날이고 어린이 주일이기 때문에 21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부모가 자녀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아비들아
“아버지들아”라고 하지 않고 “아비들아”라고 해서 좀 기분이 나쁘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말에서 아비는 아버지의 낮춤말이기 때문에 아버지들은 기분이 좀 안 좋으실 것입니다.
사실 신약의 헬라어에서는 구별이 없이 사용이 되었는데 우리말로 번역할 때 구별을 해서 번역을 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로 번역할 때는 주로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킬 때고 아비로 번역을 할 때는 보통 우리 인간의 아버지를 나타낼 때 그렇게 쓴 것 같습니다.
아비들아 라고 했지만 그 아버지라는 말에는 엄청난 뜻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아무나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라는 말은 대단한 권위를 가진 말입니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그 은혜에 있어서 동등하다는 말입니다.
임금이 나라를 다르시면서 백성에게 베푸는 은혜나
스승이 제자를 가르침으로서 제자에게 베푸는 은혜나
부모가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베푸는 은혜가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있어서 임금과 같고 스승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 아버지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 쓰는 것을 좋아하시는 호칭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아비라고 하는 말은 자녀에게 있어서 엄청난 권위를 가진 말이면서 그만큼 자녀에게 해 주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냥 아이를 낳아서 음식만 먹여서 키우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부모님들은 그것을 큰 은혜라고 말합니다.
내가 너를 낳아서 이렇게 키우면서 밥을 안 주었니, 옷을 안 입혔니, 학교를 안 보냈니, 먹여주고 입혀주고 학교 보내 주었으면 감사한 줄 알아야지 우리 때는 밥도 못 먹고, 옷도 못 입고, 학교도 안 보내줘서 공부도 못했다. 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된 사람은 그런 정도로 의무를 다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들을 돌보신 것처럼 돌봐줄 책임이 아비 된 자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임금이 백성에게 베풀어야 할 그 은혜 스승이 제자에게 베풀어야 할 그 은혜 심지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그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이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아무리 잘 해주어도 자식들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 임무가 상한선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형편에 이만큼 해주면 잘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녀들 눈에는 더 잘해주는 아버지들이 많기 때문에 불평이 많은 것입니다.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해 주어야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아무리 잘 해주어도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버지라고 할 때 아무렇게나 해서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해 주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늘 부족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버지입니다.
아무리 잘 해주고 가진 것을 다 주어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세대가 대부분 그렇겠지만 저도 부모님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자신들은 더 고생했다는 것을 앞세워서 또 어쩔 수 없는 형편이었다는 것을 앞세워서 자녀들에게 미안해할 줄 모릅니다.
그런 형편인 줄 다 잘 알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부족했다는 것을 인정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을 다 못해서 미안하다 이 한 마디만 해 주면 다 이해하고 용서할 것인데 끝까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된 우리는 아버지라는 이 엄청난 책임을 가진 자로서 그 책임을 다하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하고도 미안해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아비 된 자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엽게 한다는 말은 “화나게 부추기다” “흥분시키다” “격동시키다” “자극하다”라는 말로 번역이 되는 말입니다.
우리 자녀들을 아버지라는 권위를 가지고 함부로 대해서 화를 나게 하거나 흥분시키거나 격동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상하게 해서 오랫동안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나고 원통한 마음을 가지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이 기록된 시대의 부모는 자녀에게 있어서 주인이고 자녀는 종이나 노예와도 같았습니다.
당시 로마시대의 아버지는 자기 가족을 다스리는 절대적인 권한을 소유하였습니다.
가족을 노예로 팔수도 있고 밭에서 일을 시킬 수도 있고 심지어는 발에 착고를 채울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모든 법적 조치를 가장이 할 수 있었고 심지어 자녀를 사형에 처할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살아 있는 한 인간으로서 자유를 누릴 수가 없고 아버지가 돌아가셔야만 인간으로서 자기 스스로의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당시에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정말 대단히 획기적인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은 우리 기독교에만 있는 아주 중요한 가르침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지 못하고 그냥 천대하고 살았습니다.
근세에 와서야 어린이라는 말도 만들고 어린이날도 제정하고 어린이들의 권리에 대해서 생각하고 잘 돌봐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분으로 요즘은 어린이가 왕입니다.
너무 지나칠 정도로 대우를 해 주어서 버릇도 없어지고 너무 자유롭게 해 주어서 선악이 무엇인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해서 화가 나게 해서는 안 되겠지만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은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냥 오냐오냐 한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잘못된 길로 벗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3.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그래서 에베소서에는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엽게 하지 말 뿐만 아니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을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자녀를 잘 못 가르쳐서 너무 오냐 오냐 해서 아이가 저주를 받게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잘못된 자녀교육이 주로 성전 제사를 드리는 일에 관련이 된 것을 봅니다.
엘리 제사장은 아들을 잘못 가르친 대표적인 인물일 것입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면서 자녀들이 잘못을 할 때 훈계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물을 함부로 하고 성전에서 나쁜 짓을 해도 벌을 내리지도 않고 그것이 잘못이라고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들고 전쟁에 나가서 전사를 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삼상4:11)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우습게 알고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우습게 알고 함부로 행동한 것 때문에 비참하게 죽고만 것입니다.
레위기 10장에는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를 드리다가 죽임을 당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우리가 잘 아는 모세의 형인 아론이었습니다.
그들이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가져다가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그 자리에서 불에 타서 죽에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론이 자녀들을 잘 못 가르쳤다는 기록은 없지만 그들이 술을 마시고 제사를 드렸던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제사에 대해서 엄격하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자녀교육의 실패도 제사 즉 예배에 관한 교육을 잘못 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에게 세상의 교육 가르친다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세상으로 나가고 타락의 길로 방탕의 길로 나가는 것입니다.
예배는 비단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시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 때 아무렇게나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비록 이 세상에 있지만 세상과 다른 하나님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즘 부모님들이 예배의 중요성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부모님 자신들도 예배의 중요성을 알지 못합니다.
예배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는 이 세상을 성도로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냥 가끔 교회에나 가는 것을 가지고 바르게 살 수가 없습니다.
학교 때문에 행사 때문에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의 주일 예배에 소홀히 한 것 때문에 아이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지 않게 되고 그저 신앙생활을 종교 활동이나 취미생활의 하나로만 알게 됩니다.
성경에서 제사에 관한 교육을 제대로 가르친 사람은 아브라함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은 아브람이었고 하나님께서 고쳐주신 이름이 아브라함이었는데 그 뜻은 큰 아버지라는 뜻과 열방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브’가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아버지를 대표하는 사람이고 모든 아버지들의 아버지로서 모범적인 삶을 산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교육은 제사에 대한 확실한 교육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아들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가 백세에 얻은 너무나 귀하고 사랑하는 아들이었지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에 있어서는 아들보다 하나님의 명령에 우선해야 한다는 것을 아들에게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아들을 제물로 묶고 칼로 죽이려고 할 때 이삭은 반항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것을 평소의 교육을 통해서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소중함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책임져 주신다는 것도 그들은 이미 알고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그렇게 교육하지 못합니다.
예배가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지도 않고 나 자신도 실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조금만 핑계를 대면 예배를 안 드려도 되는 것처럼 허락을 해버립니다.
시험공부 해야 해 학교에서 나오라고 했어 학원에 가야 해 친구들하고 모임이 있어 그러면 교회에 안가도 된다고 허락을 해버립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도 그냥 시간만 때우고 형식적으로 참석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런 잘못된 예배의 교육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타락의 길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이 아이들 앞에서 모범을 보이셔야 합니다.
부모님 자신이 교회에 가기 싫어하고 간간히 예배에 빠지고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예배의 중요성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교회에 가기 싫어하고 예배를 드리기 싫어하면 아브라함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이 싫어하면 손발을 결박을 해서 목에 칼을 가져다 대면서 제사를 드리려고 했던 아브라함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가 장성해서 바른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교육을 받지 못한 이이가 세상의 유혹에 빠져서 고통을 당하는 것은 불 보듯이 뻔한 것입니다.
신앙을 잃은 다음에 후회하지 말고 아이들이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부모님 원망하도록 두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예배에 대한 교육을 잘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잘 몰라서 아이들을 학원에 보낸다고 또 교회에 가기 싫어한다고 그냥 내버려두지만 후일 그것이 얼마나 아이에게 불행한 일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공부 잘하면 뭐합니까? 출세하면 뭐합니까? 세상에서 좀 잘 살면 뭐합니까?
하나님도 몰라보고 영원한 생명도 잃어버리고 인간다운 삶도 살지 못한다면 공부 출세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4.낙심할까 함이라
자녀들을 노엽게 하면 그 결과 자녀들이 낙심을 하게 되기 때문에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교육함에 있어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교육한답시고 기를 죽게 해서 낙심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학교 다니는 아이들 만나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공부 잘하니? 반에서 몇 등하니? 그래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겠니? 꼭 이런 부담 되는 이야기만 합니다.
부모님들도 자녀들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은 공부해라 좋은 대학에 들어가라 출세해라 성공해라 돈 많이 벌어라 이런 말들입니다.
세상 일이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노력을 해도 잘 안되는데 자꾸 이야기 하니까 기가 죽고 낙심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 기죽이는 이야기는 하지 말고 기를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감을 가지고 기분 좋게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기를 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가를 알게 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셔서 우리를 경쟁시키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시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예 창세전부터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를 특별대우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에게 얼마나 엄청난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자비를 베푸시는지를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만 있으면 우리는 왕 같은 존재요 세상에서 제일 존귀한 자가 됩니다.
아무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습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있는 이 영원한 생명을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 별 볼일 없는 사람처럼 산다고 해도
잠깐 이 나그네 인생이 끝이 나면 엄청난 나라 영원한 나라 하나님나라를 상속받는 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들은 예배를 통해서 이런 사실을 깨닫고 느끼고 믿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녀들이 낙심하지 않도록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모로서 부끄러움이 없도록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