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2.1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82)
   본문 : 롬 15:25-27
   제목 : 성도를 섬기는 일

   우리는 앞 절에서 바울의 선교에 대한 열정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는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주님의 말씀에 의해서 당시의 땅 끝이라고 생각이 되던 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러 가는 것이 일생 일대의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그 목표를 향해서 끊임없이 열정적으로 나가고 있는 모습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런 그가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갑자기 "그러나 이제는"이라는 말로 화제를 바꾸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땅 끝까지 가고자 하는 열렬한 마음이 있지만 그러나 지금 당장 먼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도를 섬기는 일"이었고 그 일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난한 성도들이 있었고 마침 이방인들의 교회에서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헌금을 모아 주었기 때문에 그 헌금을 전하러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일을 진행시키는 우선 순위를 배우게 됩니다. 
  즉 사도가 그토록 보기를 사모했던 로마 교회의 교인들과 만나게 되는 개인적인 기쁨보다는 우선적으로 어려운 성도들을 도와 주는 일을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서로 사랑 가운데서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한 몸 의식을 갖게 하는 일에 무엇보다도 먼저 힘쓰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지만 성도를 서로 섬기는 일도 또한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누구를 왜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일도 소중한 일이지만 우리 서로가 하나가 되어 서로 섬기고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고 서로 한 마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 섬김의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1.섬김의 대상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섬김의 대상이 "성도를 위하여"라는 말과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라는 말로 보아서 그 대상을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도"요 하나는 "그 성도 중에 특별히 가난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우리 모든 성도들이 서로 섬김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 섬긴다는 말은 헬라어로 디아코네오(διακονεω)라는 말입니다.
  이 말에서 사역자나 집사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교회의 제일 기본이 되는 사역자나 집사라는 말이 이 "섬긴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라면 교회는 서로 섬기는 자들이 모인 단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높은 직분이나 낮은 직분이 없습니다
  서로 서로를 섬기는 곳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 더 많이 섬기는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는 아주 소중한 사람들만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아주 작은 소자 한 사람이라도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요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이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러기에 어느 한 사람도 업신여김을 받거나 차별 대우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모두가 모두에게 서로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서로 서로 섬김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성도들 중에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이 섬김을 받을 대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과 소수의 부자들이 모여서 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부자들이 자기들이 가진 재산을 팔아서 공동체 앞에 내어 놓으면 그것으로 함께 먹고 살았습니다.
  생산성이 없이 그저 있는 것을 소비하는 단체가 되다가 보니 자연적으로 모두가 가난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신앙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인 사람들 신앙을 위해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 바친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그들은 가난해졌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좀 나은 교회들이 섬김의 손길을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 내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신앙을 따라서 바른 삶을 살려고 하다보면 가난하게 됩니다
  부자가 되면 부자가 되려고 하면 교회를 떠나야 할 이유가 많기 때문에 아직 교회에 있는 성도들은 비교적 가난합니다.

  또 가난한 심령을 가진 사람들이 복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고통을 당해 본 사람 시련을 겪어 본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가난은 성도의 필수 과목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지나온 과거에 남보다 가난했거나 사고를 당했거나 슬픈 기억이나 고난을 당했다고 하면 그것 때문에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는 동기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어려움들이 있었기에 여러분이 지금 주님을 의지하여 너무나 귀한 것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주위에 환경이 좋지 않고 여러 가지 고통 속에 있는 성도가 있다면 그분을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 고통들을 통해 성도가 되었기 때문에 그 당하는 고통들까지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가난이나 고통들이 업신여김을 받는 이유가 아니라 자랑의 대상이요 섬김의 대상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가난 시련 연약함 병듦 실패 모자람 이런 모든 것이 우리의 훈장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사랑하면서 그들을 섬길 줄 아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섬기는 이유
  본문 27절 말씀에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로부터 신령한 것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셔서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사를 진행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구주 예수께서 나시게 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교회는 세계 복음의 중심지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의 모든 교회는 이 예루살렘 교회에 빚진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복음에 빚진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죄를 짓고 그 죄를 무조건 탕감받은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이 복음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순교를 하면서 복음을 가지고 왔던 많은 서양 선교사들에게 빚진 자들입니다.  

  저는 몇 해 전에 중국에 선교 여행을 가서 중국의 교회에서 설교를 하면서 그 빚진 자의 심정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저희 할아버지께서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서 공부를 하시고 그 선교사들에게 부탁하여 마을에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 모든 집안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저도 이렇게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 선교사님들에게 빚진 심정으로 중국 교회에서 설교를 했는데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 빚진 자의 심정으로 우리 교회도 이제 선교사를 파송하여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을 받은 우리는 육신의 것으로라도 그 은혜를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방 교회들은 예루살렘의 교회로부터 신령한 것을 받았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 교회들은 육신의 것으로라도 예루살렘 교회를 향하여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다시 신령한 것을 그들에게 줄 수 없기 때문에 이 땅에서 먹고 사는데 필요한 것으로 그들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교회를 통해서 신령한 것을 받았습니다.
  교회의 직분자들로부터 신령한 것을 받았으면 육신의 것으로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이 은혜가 너무나 신비하고 너무나 큰 것이기에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에 그 은혜를 주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우리의 작은 것이라도 보잘 것 없는 육신의 것이라도 드리는 것입니다
   
3.섬김의 방법
  본문 26절에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라고 했습니다.
  또 27절에도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라고 했습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 있는 성도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섬김에 있어서 기쁨으로 그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후서 8장 1절 이하에 이 마게도냐 성도들의 섬김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그리이스 북쪽 곧 현재의 발칸 반도에 위치해 있는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교회였고, 환난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은 교회였고, 극한 가난 속에서도 풍성한 연보를 한 교회였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들도 정치적으로는 로마로부터 압박을 받으며 착취를 당하였고,
  종교적으로는 유대인들의 난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런 환난이 저들에게도 궁핍한 생활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련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을 가졌고, 그 기쁨은 넘치는 연보로 나타났습니다.
  저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에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하나님께 헌금 생활을 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① 환난에서 기쁨을 누렸습니다.
  사람마다 환난과 시련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지 아니합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기쁨을 누린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불신자들은 환난 중에서 낙심하고, 좌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참된 성도는 환난 속에서도 기쁨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이 시련을 당할수록 오히려 넘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저들이 신앙이 얼마나 성숙해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환난은 성도를 낙심케 못합니다. 오히려 환난은 성도에게 내세의 상급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오히려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이 형통하고 어려움이 없을 때 남을 섬겨도 섬기는 것이지 내가 어려움을 당하는데 남을 어떻게 도우며 섬길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의 섬김은 오히려 환난 가운데서도 기뻐하며 더 어려운 사람은 없는가를 살피고 그들을 도와주고 섬긴다는 것입니다.

② 극한 가난에서 풍성한 연보를 하였습니다.
  어려운 사람일수록 아마 이런 생각을 많이 가질 것입니다.
  내 생활이 조금 넉넉해지면 그 때 남을 도우며 살아야지, 그 때에 헌금도 많이 하고, 구제도 멋지게 해야지 라는 생각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를 마게도냐 교회들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가난이라는 상황이 남을 돕는 일에나 하나님께 드리는데 있어서 인색함의 동기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극한 가난 속에서도 자기들이 줄 수 있는 것을 주었습니다.

  저들의 연보생활은 '힘에 지나도록'이었습니다. 이것은 저들의 희생적인 연보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풍성한 연보'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저들이 극한 가난 속에 있지만 마치 부자처럼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6장 10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③ 자신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성도는 물질을 드리기 전에 먼저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은 단지 동정적인 생각으로, 인간적인 사랑의 행위로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헌금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마음에서 연보를 한 것입니다.
  성도가 자기 자신을 주님께 드리지 못하면 다른 모든 것도 주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이런 예가 적합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남편이 딴살림을 하면서 본처에게 미안하니까 좋은 차도 사주고, 호피 밍크코트도 사주고, 생활비를 넘치도록 준다고 가정합시다. 
  아내가 그 사실을 알고도 그것을 받고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까?
  돈이 큰 것이 아니라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헌금 몇 푼 하는 것으로 신앙 생활 잘한다고 생각지 말고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니까 물질도 드리기가 힘이 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마게도냐의 교회들이 성도를 섬긴 일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우리의 섬김의 대상이 되는 성도들이 그 중에서도 특별히 가난한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한 마음이 되어 함께 서로 섬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다 하나님께 복음 전파자들에게 선교사들에게 다른 성도들에게 빚진 자들입니다
  그 빚을 갚는 심정으로 서로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앞에도 환난이 있고 별로 풍족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 성도들을 위해 연보를 하고 헌신을 하면서 섬겨야 한다는 것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서로 서로 섬기는 교회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