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3.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골22)
본문 : 골 3:16
제목 : 말씀과 지혜와 찬양.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번 예배학교에 가신 분들은 우리가 싸워야 할 적군이 있다는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우리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면서 삼킬 자를 찾는다고 했는데 그 대적 마귀와 대항하여 싸울 강력한 무기가 하나님의 말씀과 찬송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있는 골로새서에는 우리가 싸워야 할 적군을 우리의 옛사람으로 보았습니다.
물론 우리의 옛 사람도 사탄과 관계가 있습니다.
사탄이 우리 속에 남겨둔 나쁜 생각들이 우리가 물리쳐야 할 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귀신이 우리를 넘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옛날 우리가 사탄에게 속해 있었을 때의 잘못된 습관들이나 성격들이 우리 속에 남아 있어서 그런 것들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니고 모태신앙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이 타락할 때 사탄이 이미 심어 놓은 악한 습성들 때문에 그 악한 습성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위에 것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하는데 우리의 습성에는 아직도 이 세상의 것을 바라보며 이 세상을 더 사랑하면서 살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 속에는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분함과 노여움 악의와 비방 부끄러운 말 거짓말 이런 습성들이 남아 있어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속에 아직도 남아 있는 사탄의 습성들을 내쫓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적으로 생각하고 그것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런 나쁜 습성들과 싸울 무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무기를 크게 세 가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내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용할 무기는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마음에 풍성하게 있을 때 승리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좋은 무기는 지혜로 피차에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좋은 무기는 감사함으로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 무기들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오늘 제 설교의 목적입니다.
말씀과 지혜와 찬양 이 세 가지 무기를 잘 활용하셔서 사탄의 세력과 또 나 자신 속에 남아 있는 악한 습성들과 싸워서 이기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라고 했습니다.
우리 속에 아직 남아 있는 나쁜 습성들을 없애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의 삶속에 풍성하게 거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는지를 바르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란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일 수도 있고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한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사역에 관한 말씀이 우리 속에 거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본문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 둘 중에서 택일하라고 하면 저는 후자가 더 가까운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들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 66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그 말씀 한절 한절이 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모든 성경의 말씀들이 여러분 마음에 풍성하게 거하면 정말 좋을 것입니다.
그 성경 가운데는 특별히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직접 하신 말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각각 좋아할 말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활고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정말 좋아할 말씀이 있습니다.
먹을 것 때문에 입을 것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공중의 새를 보고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새도 먹이시고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이신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병이 들어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좋아하실 것입니다.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라고 하시고
나병환자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라고 하시고
장님들이 나아오니까 “너희 믿음대로 되라”라고 하셨습니다.
중풍병자도 나병환자도 장님들도 다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윤리도덕적인 삶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산상보훈에 귀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원수까지 사랑하고,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는 이런 말씀들은 정말로 인간관계에 있어서 좋은 말씀들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이런 말씀을 좋아하실 것입니다.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라고 하신 말씀을 들으면 힘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씀들은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일률적으로 해당이 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이 살고 무슨 병이 걸려도 다 고침을 받고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런 말씀들은 특별한 시대의 특별한 사람들에게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처음에는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 이런 이적들을 행하셨지만 이런 방법으로 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러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것들을 바라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진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요6:47-51)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육신이 먹고 살 것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의 떡을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 떡이 십자가에 우리 죄 대신 죽으실 예수님의 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다고 할 때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을 때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6:68)
이 영생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말씀이며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이 우리 속에 풍성하게 거하게 하는 것이 우리 속에 있는 세상의 모든 악한 것들을 쫓아내는 무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일들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그 행하신 일들이 우리에게 너무나 복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천국 즉 하나님나라를 전해주시고 가게 해 주신 것이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성령님의 내주하심과 충만하심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시기를 예수님께서 떠나가시면 예수님과 똑같은 분이신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오시면 가장 중요하게 하시는 일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나게 하고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그 구원이 우리 속에서 완성되도록 중생시켜주시고 믿음도 주시고 회개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시고 점점 거룩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또 우리가 천국까지 가는 길에 인도자도 되어주시고 보호자도 되어주시고 변호자도 되어주신다고 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위로자도 되어주시고 문제를 해결할 힘도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지혜도 주시고 능력도 주셔 우리가 맡은 임무들을 잘 완수할 수 있도록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런 좋으신 성령님이 이런 능력이 있으신 성령님이 내 속에서 왕성하게 역사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완전히 맡겨버리라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계신지 안계신지 표도 안 나게 그러지 말고 완전하게 확실하게 아주 전부 맡겨버리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래 교회를 다녔어도 아직 주판알 굴리고 머리 굴리고 계산하고 이리재보고 저리 재보고 하지 말고 전적으로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세상으로 갈까 하나님나라로 갈까 망설이지 말고 위를 바라보며 위에 것을 생각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내 마음을 완전하게 장악하도록 해 보라는 것입니다.
안되면 안 되는대로 망하면 망하는 대로 죽으라면 죽을 각오도 하고 아주 전적으로 성령하나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시도록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2.모든 지혜로 가르치며 권면하며
본문 말씀에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라고 했습니다.
지혜라는 말은 많은 지식들 중에서 진짜 진리가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에 대한 지식을 많이 쌓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고 적용시키는 데는 많이 부족합니다.
이단들도 성경을 인용해서 자기들이 받은 교훈을 가르칩니다.
감리교나 순복음교회나 개혁주의 교회가 아닌 교회들도 성경말씀을 가지고 자기들의 주장을 내세웁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교회에 이미 거짓선생들 이단들의 많이 침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서신서를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때 지식으로 배우지 말고 이 지혜로 배우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이 골로새서 교인들이 에바브라를 통해서 복음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잘 성장하고 있다는 그 소식을 들은 그날부터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골1:9)
그들의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장 2-3절에 보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결국 지혜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아는 것이고 그 하나님의 뜻의 비밀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며 거기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비밀을 서로 나누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안에 있는 진리를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거짓 선생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다른 것을 가르치면 내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다는 것을 아는 것이 참된 지혜입니다.
3.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본문 말씀에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했습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와 찬양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설명하고 싶어도 이것들의 명확한 구별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이 말씀에는 시만 가지고 찬송만 가지고 신령한 노래만 가지고 찬양을 하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시가 되었든지 찬송가가 되었든지 노래가 되었든지 상관이 없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만 가지고 부르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시는 주로 시편의 노래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이 시편에 나와 있는 시로만 찬양을 했습니다.
이 시편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신령한 노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다윗의 시대나 초대교회 때는 악기나 음악의 여러 장르들이 발달하지 못한 때였기 때문에 그냥 시편을 악기도 없이 목소리로만 노래하는 것을 찬양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여기 찬송은 오늘날의 감각으로 구별하면 시편찬송가 이후에 나온 여러 가지 찬송가들로 생각을 해 봅니다.
찬송가는 시편찬송만 부르던 시대에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느끼던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찬송가가 거룩하다고 생각하고 그 외에 노래는 거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찬송가도 그 만들어지던 시대의 유행가를 개사해서 만든 노래가 많습니다.
그냥 전통적으로 오래 동안 불렀던 노래라 정이 많이 들었겠지만 오래 동안 부르다가 보니까 가사의 의미도 생각하지 않고 타성에 젖어서 형식적으로 부르기 쉽습니다.
신령한 노래는 찬송가보다 뒤에 나온 복음성가와 요즘 우리가 부르는 예배찬송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새로운 노래라 검증이 되지 않아서 좀 불안하시기는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종류의 노래들도 신앙과 연관해서 하나님을 높여 드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내용이 있으면 됩니다.
어떤 노래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 우리의 마음이 함께 들어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음악의 장르도 여러 가지 장르로 부르시면 됩니다.
음악은 모든 장르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누가 먼저 사용했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악기를 쓴다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아직까지 무악기로 찬송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악기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지금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옛날 문화 속에서 삽니까?
편한 옷 편한 집 좋은 가전도구들로 문화를 누리고 살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만 옛날처럼 하려고 한다면 잘못입니다.
시든지 찬송이든지 신령한 노래든지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것이 찬양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우리에게 큰 무기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설교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백성들이기 때문에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나라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야 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길을 방해하는 방해꾼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사탄과 사탄을 따르는 자들이 우리의 적군들입니다.
그들은 언제라도 우리를 유혹하여 넘어뜨리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이런 적들과 사우기 위해서 강력한 무기를 가져야 합니다.
또 하나의 적은 내 마음 속에 있는 사탄의 잔재들입니다.
사탄이 타락한 인생의 마음에 주는 온갖 나쁜 습성들이 우리가 천국에 가는 길을 방해하는 우리의 적이 되기도 합니다.
이 마음속에 있는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무기가 필요합니다.
그 무기를 오늘 본문 말씀에 세 가지로 말씀을 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우리 마음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내주하심과 충만하심으로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속에 오신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완전히 나를 장악하도록 맡겨드리는 것이 최상의 무기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비밀을 충분히 알고 그 복음의 진리로 서로를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무기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시가 되었든지 찬송가가 되었든지 노래가 되었든지 그것이 어떤 장르의 노래든지 어떤 악기를 사용하여 부르는 노래이든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르는 찬양이면 되고 그것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찬송하는 것이면 더욱 더 큰 무기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풍성하게 거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시기 바랍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이 귀한 무기를 사용하여 늘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