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2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79)
본문 : 롬 15:17-18
제목 : 바울의 자랑
어떤 목사님이 자랑에 대하여 설교를 하면서 사람들이 자랑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첫 째는 별 볼일이 없어서 자랑을 한다고 했습니다.
별 볼일 있으면 사람들은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자랑은 부족하기 때문에 한다고 했습니다.
자랑을 하는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이 자랑스럽기 때문인데 남들이 평범하게 생각이 되는 것도 부족한 사람에게는 자랑거리가 되기 때문에 그 부족함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자랑은 자기가 수준이 낮기 때문에 한다고 했습니다
높은 사람은 굳이 자랑해서 더 높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랑하지 않지만 낮은데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높아지려고 하기 때문에 자랑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랑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별 볼일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과 자기 자신의 수준이 낮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언 27장 1절 말씀에 보면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좀 자랑할 일이 있어서 자랑을 하고 나면 금방 후회할 일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나는 생전 감기 한번 안 걸린다고 자랑을 했더니 그 다음날 바로 감기가 걸릴 때도 있습니다
아들 공부 잘한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사람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뭐 좀 좋은 일이 있어서 으시대고 자랑을 하면 바로 돌아서서 후회하는 일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자랑하지 않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살지만 사람이 어찌 그렇습니까 좋은 일이 있으면 금방 자랑을 하고 싶고 입이 근지러워서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바울이 자랑할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랑하는 것은 참 별 볼일이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또 잘 못하면 자신의 수치를 드러낼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랑한다고 했을 때는 자랑할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바울의 자랑거리를 살펴보고 우리도 쓸데 없이 자랑하는 것을 버리고 자랑할만한 일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1.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했습니다
본문 17절 말씀에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 관한 일", "하나님께 대한 일", "하나님을 섬기는 일" 또는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등으로 해석을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관계된 일들은 자랑할만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모든 일들도 자랑을 할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들도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1)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말라.
로마서 4장 2절에 보면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행위로 의로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워졌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2)하나님 앞에서 인생의 자랑은 헛된 것이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 보면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절에 보면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고 말씀했습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 마르는 풀과 같고 떨어지는 꽃과 같은 인생이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자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 하나님 앞에서의 자랑은 우리 자신을 패망의 길로 인도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3)자랑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다.
예레미야 9장 2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지혜나 우리가 가진 부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그 은혜받은 것을 하나님 앞에서 자랑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공로로 내세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이기에 하나님 앞에서의 자랑은 금지되어 있는 것입니다.
4)오히려 연약함을 자랑하라
고린도후서 11장 30절 말씀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 말씀에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저 자기의 약점을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나의 연약함을 자랑하는 것은 연약한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하나님을 자랑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강함을 자랑하는 것은 나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내가 빼앗는 것이기에 조심을 해야 되는 것이지만 나의 연약함을 자랑할 때 연약한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내가 장점을 자랑하면 상대방은 열등감에 빠져 괴롭지만 내가 약점을 자랑하면 상대방은 동질감을 느끼던지 아니면 우월감을 느끼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와서 아 우리 교회에 새 신자가 등록을 했다 누가 헌금을 많이 했다라고 자랑을 하면 좋으면서도 은근히 부럽고 샘이 납니다 그러나 아이고 교인이 떠났다 어려운 일이 있다 하면 가슴이 아프면서도 위로가 되기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2.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했습니다.
본문 17절 말씀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만 자랑할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자랑에 비하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랑은 배설물과 같은 것임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볼 때 바울에게는 자랑거리가 많았습니다.
바울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고. 좋은 학교를 졸업했고. 사회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전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 백성들이 존경하는 바리새인이요,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거기에다 젊고 똑똑하고 용기도 있었습니다. 그만하면 어느 누구보다도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인 자랑들은 배설물처럼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6:14절에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했습니다.
1)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구원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총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갈3:16).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까지 인간은 모두 죄인이었으며. 죄인이 최종적으로 가는 길은 사망이요. 지옥의 형벌이었습니다(롬6:23).
로마서 5: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을 의지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선행이나 명상이나. 수행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어느 중국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허황된 세상에서 어영부영 헤매며 살다가 깊은 우물 속에 빠졌습니다. 저는 혼자 힘으로 빠져 나오기가 불가능하여 사람살려 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나를 들여다보더니 '아이고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소 아무래도 전생에 지은 잘못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으니 참회하고 저 세상으로 가는 수 밖에 없소' 라고 말하더니 그냥 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에 또 한 사람이 오더니 '사람이란 까딱 잘못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니 이 일을 경험 삼아 다음에는 조심하시오' 하고 또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한참 후에 또 한 사람이 부르짖는 나의 음성을 듣고 우물을 들여다보더니 '아니 사람이 빠져 있군' 하더니 사다리를 놓고 내려와 나를 끌어올려 주어서 저는 비로소 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처음 사람은 석가모니였고,
두 번째 사람은 공자였으며.
세 번째 저를 구원해 주신 분은 예수님 이었습니다."
2)십자가로 말미암아 변화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폭행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요, 신실한 전도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주목하는 자는 바울 사도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새롭게 변화됩니다.
십자가는 사람을 새롭게 변화시킬 뿐 아니라 가정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국가를 변화시키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는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십자가는 새로운 세계 문명을 탄생시켰고 지금도 십자가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새로운 변화의 역사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18세기의 영국은 모든 면에서 파산할 위기에 놓여있었습니다. 정치인들은 부패했고. 상류층들은 시민으로서의 의무나 사회적인 책임을 망각 한 체 자기 유익에만 급급하였고. 하류층은 자포자기 한 체 술에 흠뻑 취해 있었습니다.
시골에는 노상 강도들이 들끓었고. 도시에서는 수많은 청소년 범죄자들이 폭력을 휘둘러서 거리는 살벌하기만 했습니다. 도시마다 수많은 실업자와 범죄자와 굶주린 자들로 들끓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종교마저 심히 오염되고 쇠퇴한 상태였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은 요한 웨슬레를 변화시키셨고. 요한 웨슬레 한 사람의 변화는 파산 직전의 영국을 변화시키고 구원하는 놀라운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변화된 웨슬레의 설교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고. 이 변화의 물결은 마침내 전 영국을 휩쓸고 지나갔던 것입니다.
웨슬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에 알코올 중독자가 거기서 해방 받고.
전에 창녀와 놀기를 즐기던 자가 그런 생활을 버리게 되었고.
도적이 변하여 정직과 근면으로 부지런히 일해 자기 노력으로 일하면서 살며.
전에 남을 비방하고 악담을 즐기던 사람이 지금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님을 섬기고 모범적 생활을 한다"라고 했습니다.
3)십자가로 말미암아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성도가 세상에 모든 것을 이기는 능력이 됩니다.
성도들은 십자가로서 죄악을 이깁니다. 세상에 유혹을 이깁니다. 환란을 이깁니다. 원수 사단. 마귀들을 이깁니다. (골2:15. 엡2:16).
세계의 국기를 보면 십자가 형상이 들어간 국기가 여러 나라 있습니다.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영국.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그리스 등 이들 나라들은 일찍부터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여서 십자가 국기를 만들었고. 그 때부터 큰 복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이들 나라들이 점차 십자가를 사랑하기보다 세속적인 향락을 더욱 사랑하다보니 사회가 점차 병들어 가고 이미 받았던 복조차 점차 상실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십자가를 사랑하는 나라. 십자가를 자랑하는 나라 그런 나라가 건강한 나라입니다. 복 있는 나라입니다. 승리하는 나라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봄으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봄으로 우리는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봄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봄으로 담대할 수 있습니다.
이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이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이방인에게 전도하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본문 18절 말씀에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이며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말 본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왜냐하면"이라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18절의 말씀은 17절에서 주장한 것, 즉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한 것에 대한 이유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하는 것은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자신이 했던 일들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는 것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 바울이 일한 것, 바울을 통해서 나타난 표적과 기사들,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모든 것은 이방인을 전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일 즉 이방인을 전도하는 일 외에 감히 다른 것을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그 일을 위하여 바울 자신이 버림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말을 한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방인을 전도하라는 사명을 맡겨 주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일을 수행함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전도를 할 때 우리 부모 형제도 전도하지 못하는데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전도하나 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에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무엇 하러 외국에까지 선교를 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명령은 땅 끝까지 이르러 이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일에 대하여 자랑을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 자신이 부끄러워질 수 있는 일이며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세상적인 일을 자랑하기를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껏 자랑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계 만방에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을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이 자랑거리가 많아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하나님 우리 예수님 그리고 그 복음 전도됨을 마음껏 자랑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 롬 15:17-18
제목 : 바울의 자랑
어떤 목사님이 자랑에 대하여 설교를 하면서 사람들이 자랑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첫 째는 별 볼일이 없어서 자랑을 한다고 했습니다.
별 볼일 있으면 사람들은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자랑은 부족하기 때문에 한다고 했습니다.
자랑을 하는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이 자랑스럽기 때문인데 남들이 평범하게 생각이 되는 것도 부족한 사람에게는 자랑거리가 되기 때문에 그 부족함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자랑은 자기가 수준이 낮기 때문에 한다고 했습니다
높은 사람은 굳이 자랑해서 더 높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랑하지 않지만 낮은데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높아지려고 하기 때문에 자랑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랑을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별 볼일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과 자기 자신의 수준이 낮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언 27장 1절 말씀에 보면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좀 자랑할 일이 있어서 자랑을 하고 나면 금방 후회할 일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나는 생전 감기 한번 안 걸린다고 자랑을 했더니 그 다음날 바로 감기가 걸릴 때도 있습니다
아들 공부 잘한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사람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뭐 좀 좋은 일이 있어서 으시대고 자랑을 하면 바로 돌아서서 후회하는 일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자랑하지 않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살지만 사람이 어찌 그렇습니까 좋은 일이 있으면 금방 자랑을 하고 싶고 입이 근지러워서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바울이 자랑할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랑하는 것은 참 별 볼일이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또 잘 못하면 자신의 수치를 드러낼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랑한다고 했을 때는 자랑할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바울의 자랑거리를 살펴보고 우리도 쓸데 없이 자랑하는 것을 버리고 자랑할만한 일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1.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했습니다
본문 17절 말씀에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씀은 "하나님께 관한 일", "하나님께 대한 일", "하나님을 섬기는 일" 또는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등으로 해석을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관계된 일들은 자랑할만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모든 일들도 자랑을 할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들도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1)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말라.
로마서 4장 2절에 보면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행위로 의로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워졌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2)하나님 앞에서 인생의 자랑은 헛된 것이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 보면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절에 보면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라고 말씀했습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 마르는 풀과 같고 떨어지는 꽃과 같은 인생이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자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16장 18절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 하나님 앞에서의 자랑은 우리 자신을 패망의 길로 인도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3)자랑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다.
예레미야 9장 2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지혜나 우리가 가진 부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그 은혜받은 것을 하나님 앞에서 자랑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공로로 내세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이기에 하나님 앞에서의 자랑은 금지되어 있는 것입니다.
4)오히려 연약함을 자랑하라
고린도후서 11장 30절 말씀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 말씀에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저 자기의 약점을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나의 연약함을 자랑하는 것은 연약한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하나님을 자랑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강함을 자랑하는 것은 나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영광을 내가 빼앗는 것이기에 조심을 해야 되는 것이지만 나의 연약함을 자랑할 때 연약한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내가 장점을 자랑하면 상대방은 열등감에 빠져 괴롭지만 내가 약점을 자랑하면 상대방은 동질감을 느끼던지 아니면 우월감을 느끼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와서 아 우리 교회에 새 신자가 등록을 했다 누가 헌금을 많이 했다라고 자랑을 하면 좋으면서도 은근히 부럽고 샘이 납니다 그러나 아이고 교인이 떠났다 어려운 일이 있다 하면 가슴이 아프면서도 위로가 되기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2.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했습니다.
본문 17절 말씀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자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만 자랑할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자랑에 비하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랑은 배설물과 같은 것임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볼 때 바울에게는 자랑거리가 많았습니다.
바울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고. 좋은 학교를 졸업했고. 사회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전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 백성들이 존경하는 바리새인이요, 율법주의자였습니다.
거기에다 젊고 똑똑하고 용기도 있었습니다. 그만하면 어느 누구보다도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인 자랑들은 배설물처럼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6:14절에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했습니다.
1)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구원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총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갈3:16).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까지 인간은 모두 죄인이었으며. 죄인이 최종적으로 가는 길은 사망이요. 지옥의 형벌이었습니다(롬6:23).
로마서 5: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을 의지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선행이나 명상이나. 수행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어느 중국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허황된 세상에서 어영부영 헤매며 살다가 깊은 우물 속에 빠졌습니다. 저는 혼자 힘으로 빠져 나오기가 불가능하여 사람살려 달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마침 지나가던 사람이 나를 들여다보더니 '아이고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소 아무래도 전생에 지은 잘못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으니 참회하고 저 세상으로 가는 수 밖에 없소' 라고 말하더니 그냥 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에 또 한 사람이 오더니 '사람이란 까딱 잘못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니 이 일을 경험 삼아 다음에는 조심하시오' 하고 또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한참 후에 또 한 사람이 부르짖는 나의 음성을 듣고 우물을 들여다보더니 '아니 사람이 빠져 있군' 하더니 사다리를 놓고 내려와 나를 끌어올려 주어서 저는 비로소 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처음 사람은 석가모니였고,
두 번째 사람은 공자였으며.
세 번째 저를 구원해 주신 분은 예수님 이었습니다."
2)십자가로 말미암아 변화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폭행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요, 신실한 전도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주목하는 자는 바울 사도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새롭게 변화됩니다.
십자가는 사람을 새롭게 변화시킬 뿐 아니라 가정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국가를 변화시키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는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십자가는 새로운 세계 문명을 탄생시켰고 지금도 십자가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새로운 변화의 역사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18세기의 영국은 모든 면에서 파산할 위기에 놓여있었습니다. 정치인들은 부패했고. 상류층들은 시민으로서의 의무나 사회적인 책임을 망각 한 체 자기 유익에만 급급하였고. 하류층은 자포자기 한 체 술에 흠뻑 취해 있었습니다.
시골에는 노상 강도들이 들끓었고. 도시에서는 수많은 청소년 범죄자들이 폭력을 휘둘러서 거리는 살벌하기만 했습니다. 도시마다 수많은 실업자와 범죄자와 굶주린 자들로 들끓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종교마저 심히 오염되고 쇠퇴한 상태였습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은 요한 웨슬레를 변화시키셨고. 요한 웨슬레 한 사람의 변화는 파산 직전의 영국을 변화시키고 구원하는 놀라운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변화된 웨슬레의 설교는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고. 이 변화의 물결은 마침내 전 영국을 휩쓸고 지나갔던 것입니다.
웨슬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에 알코올 중독자가 거기서 해방 받고.
전에 창녀와 놀기를 즐기던 자가 그런 생활을 버리게 되었고.
도적이 변하여 정직과 근면으로 부지런히 일해 자기 노력으로 일하면서 살며.
전에 남을 비방하고 악담을 즐기던 사람이 지금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님을 섬기고 모범적 생활을 한다"라고 했습니다.
3)십자가로 말미암아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성도가 세상에 모든 것을 이기는 능력이 됩니다.
성도들은 십자가로서 죄악을 이깁니다. 세상에 유혹을 이깁니다. 환란을 이깁니다. 원수 사단. 마귀들을 이깁니다. (골2:15. 엡2:16).
세계의 국기를 보면 십자가 형상이 들어간 국기가 여러 나라 있습니다.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영국.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그리스 등 이들 나라들은 일찍부터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여서 십자가 국기를 만들었고. 그 때부터 큰 복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이들 나라들이 점차 십자가를 사랑하기보다 세속적인 향락을 더욱 사랑하다보니 사회가 점차 병들어 가고 이미 받았던 복조차 점차 상실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십자가를 사랑하는 나라. 십자가를 자랑하는 나라 그런 나라가 건강한 나라입니다. 복 있는 나라입니다. 승리하는 나라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봄으로 우리의 믿음이 성장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봄으로 우리는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봄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봄으로 담대할 수 있습니다.
이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이 주님의 십자가를 자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이방인에게 전도하는 것을 자랑했습니다
본문 18절 말씀에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이며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말 본문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왜냐하면"이라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18절의 말씀은 17절에서 주장한 것, 즉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한 것에 대한 이유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하는 것은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자신이 했던 일들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는 것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 바울이 일한 것, 바울을 통해서 나타난 표적과 기사들,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모든 것은 이방인을 전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일 즉 이방인을 전도하는 일 외에 감히 다른 것을 자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그 일을 위하여 바울 자신이 버림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말을 한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방인을 전도하라는 사명을 맡겨 주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 일을 수행함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전도를 할 때 우리 부모 형제도 전도하지 못하는데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전도하나 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내에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무엇 하러 외국에까지 선교를 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명령은 땅 끝까지 이르러 이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일에 대하여 자랑을 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 자신이 부끄러워질 수 있는 일이며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세상적인 일을 자랑하기를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껏 자랑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계 만방에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을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이 자랑거리가 많아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하나님 우리 예수님 그리고 그 복음 전도됨을 마음껏 자랑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