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19.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78)
본문 : 롬 15:16
제목 : 복음의 제사장
"복음"이라는 말과 "제사장"이라는 말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요 서로 상극이 되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공의를 세우는 직무로 백성들이 범죄했을 때 짐승을 가져 오게 하여 그 짐승을 비참하게 죽임으로서 죄를 용서받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복음이란 범죄한 인생들에게 무조건 죄의 용서를 선포하는 복된 소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단어를 같이 써서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바울이 자신을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하는 의미를 생각하고 우리도 그 복음의 제사장인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여 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구약시대의 제사장
구약 시대의 제사장은 제물을 잡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구약 시대의 성전은 화려하고 아름답게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성전 앞마당에서 행해졌던 일은 그렇게 화려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날마다 짐승을 잡아 그것을 불로 태우는 일이 주된 일이었습니다
성소에 들어가서 분향한다거나 일주일에 한번 진설병을 갈아 놓는다던가 하는 일을 하였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일은 아무래도 날마다 짐승을 잡아 제사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산 짐승을 잡아죽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짐승을 전문적으로 잡는 사람들을 백정이라고 하여 가장 천한 직업으로 취급을 했습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이 실제적으로 하던 일은 이런 백정의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성전은 아름답고 화려했지만 또 거룩한 곳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곳이었습니다.
특별한 절기에는 수십 수 백 마리의 짐승을 잡기도 했는데 그 많은 짐승들이 흘리는 피의 냄새는 그 주변을 진동시켰을 것입니다.
이렇게 짐승을 잡아죽이는 일을 하라고 부름 받은 제사장 직임을 성경은 거룩한 직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거룩하고 화려한 성전에서 피비린내나는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고 불 태우는 제사를 하게 했던 것은 그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그 비참하게 피를 흘리고 죽임을 당하고 불에 태워지는 그 짐승은 사실은 우리 인생 자신이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에 빠진 인간들을 만나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로 타락한 인간을 만나실 필요가 없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시고 먼저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 주시기 위한 것이 이 제사 제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너희들은 자격이 없고 너희들은 죽어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지만 내가 은혜를 베풀어서 너희를 만나 주겠지만 단 너희가 이 짐승처럼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만나라는 것입니다.
대신 짐승이라도 죽여서 너희의 죄 문제를 깨닫고 나를 만나도 만나고 섬겨도 섬기라고 하신 것이 제사 제도의 목적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제사 제도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그저 하나님이 짐승의 피를 좋아하시나 보다 라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짐승만 잡아 죽이기 시작을 했던 것입니다.
한수 더 떠서 제사장들은 제사보다 제물에 관심을 가지고 제사상에 오른 제물 챙기기에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죄를 마음껏 지으면서 짐승만 바치면 되는 줄로 생각을 했고 타락한 제사장들은 그렇거나 말거나 자기 몫만 많으면 만족해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그 타락한 것을 깨닫게 하기위해 주신 제도 마져도 그들의 욕심으로 오염시켜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과거의 성전과 흡사한 점이 있기 때문에 교회를 성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하는 일이 제사장과 흡사한 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를 제사장처럼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의 기물들을 성전의 기물처럼 생각을 하여 제단이라고 하고 성물이라고도 하여 아주 거룩하게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 성도들이 바치는 헌금을 제물처럼 생각을 하고 바치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바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전이나 교회나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 원리는 같고 비슷한 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구약시대 때의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잘못 이해했던 그대로 이해를 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잘 못 이해하고 성전의 제사제도를 잘못 이해하여 성전의 화려함이나 성구들의 거룩함 또 바치는 제물의 과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교회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잘 못 이해하여 교회당 건물의 웅장함이나 성구들의 화려함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우리 자신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문제들은 비교적 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사람들이 교회당 건물이나 교회의 강단을 제단이라 하여 신성시 하는 것을 보고 아예 설교를 하시면서 강단을 깔고 앉아서 설교를 하셨다고 합니다
이런 건물 이런 기물들이 화려하고 깨끗함 보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여져야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런 물건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구요
그 하나님의 거룩하심대로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제사장이신 예수님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메시야라는 말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기름을 부어서 임직을 하는 직분이 세가지가 있었습니다
선지자 왕 그리고 제사장 이 세 가지 직분을 임직할 때 기름을 부어서 임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라고 하면 왕이시오 선지자이시요 제사장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왕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은 불완전한 부분적인 것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이 직분을 맡으실 때는 완전한 선지지자, 완전한 제사장, 영원한 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왕은 제대로 통치를 하지 못하였고 또 잠시 잠깐 왕이 되었다가 물러나거나 죽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왕이 되시는 예수님의 한 모형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선지들도 예언을 했지만 부분적인 것을 전했고 완전히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한 하나님 나아를 우리에게 전하여 주셨고 진리를 알게 하심으로 직접 길과 진리요 생명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완전한 선지자라고 말합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사람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를 드려야 했고 그나마도 잘 이해도 못한 상태에서 짐승만 죽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자신이 직접 완전한 제물이 되셔서 단번에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완전한 제사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들어오면 제사장이 더 이상 짐승을 잡아죽이는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하고 있는데 바울이 무슨 짐승을 잡아 제사 드린 것이 없습니다.
짐승을 잡아 드리는 제사는 예수님에 의해 종결되었습니다.
짐승을 잡아죽인 이유는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자기 죄 때문에 피 흘려 죽어야 하지만 죄인의 피를 대신해서 짐승의 피를 흘리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죄인의 죄를 대속하는 속죄의 희생을 치러 주셨습니다.
짐승의 피가 아니고 거룩하고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의 값진 피를 흘려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어떤 짐승의 피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대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모든 죄인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만 의지하면 다 죄 씻음 받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3.복음의 제사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가장 완벽한 속죄의 피의 제사를 완성시키셨기 때문에 더 이상의 피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본문 말씀에 바울은 자신을 제사장이라고 지칭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시대의 제사장이나 그렇다고 예수님처럼 완전한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을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제사장이라고 할 때 자신이 받은 사명이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려고 하셨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1)은혜를 전하는 제사장
본문 말씀에 바울은 자신의 복음의 제사장 직을 말하면서 "이 은혜는 나로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범죄한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이어 주는 교량 역할을 하는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 주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이 제사장이었습니다.
물론 바울이 받은 은혜는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은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받은 은혜를 인하여 그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자신이 제사장과 같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크신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이런 귀한 자리에 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2)예수님의 일꾼으로 제사장
역시 본문 말씀에 자신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말하면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완성하신 그 구속사역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예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하셨던 대로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예수님의 일입니까.
예수님처럼 바르고 정직하게 죄없이 사는 것이 예수님의 일입니까
물론 그런 일들도 예수님의 일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성하신 인간의 속죄사역을 믿는 일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그 구속에 참여시키는 일이 예수님의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자신을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하는 말이 자신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으로서 이 직분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의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사람들에게 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속죄함을 받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3)이방인을 위한 제사장
바울은 또 자신이 복음의 제사장이 된 목적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방인을 위하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임을 자부하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짐승을 잡아 죽여야 겨우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죄인이었다고 한다면 그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이방 신을 섬기는 이방인들은 말할 것도 없는 흉악한 죄인입니다.
그 짐승처럼 여겼던 이방인들을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냥 제사장이 아니고 복음의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그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가진 복음의 위력은 너무나 위대한 것이어서 이방인 이니라 이방인들 중에 가장 흉칙한 죄를 지은 사람까지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 앞이라면 짐승을 한 트럭을 싣고 가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복음으로 간단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 복음은 언제나 누구나 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기에 바울은 복음의 제사장이 되어 이방인들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설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복음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천국 시민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도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처럼 복음의 제사장이 되어 이 복음을 전함으로 이 복음을 받은 자들이 죄를 깨끗하게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잘 이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속함을 받고 천국 백성이 되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 롬 15:16
제목 : 복음의 제사장
"복음"이라는 말과 "제사장"이라는 말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요 서로 상극이 되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공의를 세우는 직무로 백성들이 범죄했을 때 짐승을 가져 오게 하여 그 짐승을 비참하게 죽임으로서 죄를 용서받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복음이란 범죄한 인생들에게 무조건 죄의 용서를 선포하는 복된 소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단어를 같이 써서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바울이 자신을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하는 의미를 생각하고 우리도 그 복음의 제사장인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여 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구약시대의 제사장
구약 시대의 제사장은 제물을 잡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구약 시대의 성전은 화려하고 아름답게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성전 앞마당에서 행해졌던 일은 그렇게 화려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날마다 짐승을 잡아 그것을 불로 태우는 일이 주된 일이었습니다
성소에 들어가서 분향한다거나 일주일에 한번 진설병을 갈아 놓는다던가 하는 일을 하였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일은 아무래도 날마다 짐승을 잡아 제사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산 짐승을 잡아죽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짐승을 전문적으로 잡는 사람들을 백정이라고 하여 가장 천한 직업으로 취급을 했습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이 실제적으로 하던 일은 이런 백정의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성전은 아름답고 화려했지만 또 거룩한 곳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곳이었습니다.
특별한 절기에는 수십 수 백 마리의 짐승을 잡기도 했는데 그 많은 짐승들이 흘리는 피의 냄새는 그 주변을 진동시켰을 것입니다.
이렇게 짐승을 잡아죽이는 일을 하라고 부름 받은 제사장 직임을 성경은 거룩한 직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거룩하고 화려한 성전에서 피비린내나는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고 불 태우는 제사를 하게 했던 것은 그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그 비참하게 피를 흘리고 죽임을 당하고 불에 태워지는 그 짐승은 사실은 우리 인생 자신이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에 빠진 인간들을 만나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로 타락한 인간을 만나실 필요가 없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시고 먼저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 주시기 위한 것이 이 제사 제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너희들은 자격이 없고 너희들은 죽어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지만 내가 은혜를 베풀어서 너희를 만나 주겠지만 단 너희가 이 짐승처럼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만나라는 것입니다.
대신 짐승이라도 죽여서 너희의 죄 문제를 깨닫고 나를 만나도 만나고 섬겨도 섬기라고 하신 것이 제사 제도의 목적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제사 제도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그저 하나님이 짐승의 피를 좋아하시나 보다 라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짐승만 잡아 죽이기 시작을 했던 것입니다.
한수 더 떠서 제사장들은 제사보다 제물에 관심을 가지고 제사상에 오른 제물 챙기기에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죄를 마음껏 지으면서 짐승만 바치면 되는 줄로 생각을 했고 타락한 제사장들은 그렇거나 말거나 자기 몫만 많으면 만족해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그 타락한 것을 깨닫게 하기위해 주신 제도 마져도 그들의 욕심으로 오염시켜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과거의 성전과 흡사한 점이 있기 때문에 교회를 성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하는 일이 제사장과 흡사한 일도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를 제사장처럼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의 기물들을 성전의 기물처럼 생각을 하여 제단이라고 하고 성물이라고도 하여 아주 거룩하게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 성도들이 바치는 헌금을 제물처럼 생각을 하고 바치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바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전이나 교회나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 원리는 같고 비슷한 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구약시대 때의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잘못 이해했던 그대로 이해를 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잘 못 이해하고 성전의 제사제도를 잘못 이해하여 성전의 화려함이나 성구들의 거룩함 또 바치는 제물의 과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교회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잘 못 이해하여 교회당 건물의 웅장함이나 성구들의 화려함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우리 자신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문제들은 비교적 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사람들이 교회당 건물이나 교회의 강단을 제단이라 하여 신성시 하는 것을 보고 아예 설교를 하시면서 강단을 깔고 앉아서 설교를 하셨다고 합니다
이런 건물 이런 기물들이 화려하고 깨끗함 보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여져야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런 물건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구요
그 하나님의 거룩하심대로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제사장이신 예수님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메시야라는 말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기름을 부어서 임직을 하는 직분이 세가지가 있었습니다
선지자 왕 그리고 제사장 이 세 가지 직분을 임직할 때 기름을 부어서 임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라고 하면 왕이시오 선지자이시요 제사장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왕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은 불완전한 부분적인 것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이 직분을 맡으실 때는 완전한 선지지자, 완전한 제사장, 영원한 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왕은 제대로 통치를 하지 못하였고 또 잠시 잠깐 왕이 되었다가 물러나거나 죽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왕이 되시는 예수님의 한 모형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선지들도 예언을 했지만 부분적인 것을 전했고 완전히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전한 하나님 나아를 우리에게 전하여 주셨고 진리를 알게 하심으로 직접 길과 진리요 생명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완전한 선지자라고 말합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사람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를 드려야 했고 그나마도 잘 이해도 못한 상태에서 짐승만 죽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자신이 직접 완전한 제물이 되셔서 단번에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완전한 제사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들어오면 제사장이 더 이상 짐승을 잡아죽이는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하고 있는데 바울이 무슨 짐승을 잡아 제사 드린 것이 없습니다.
짐승을 잡아 드리는 제사는 예수님에 의해 종결되었습니다.
짐승을 잡아죽인 이유는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자기 죄 때문에 피 흘려 죽어야 하지만 죄인의 피를 대신해서 짐승의 피를 흘리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죄인의 죄를 대속하는 속죄의 희생을 치러 주셨습니다.
짐승의 피가 아니고 거룩하고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의 값진 피를 흘려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어떤 짐승의 피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대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모든 죄인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만 의지하면 다 죄 씻음 받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3.복음의 제사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가장 완벽한 속죄의 피의 제사를 완성시키셨기 때문에 더 이상의 피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은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본문 말씀에 바울은 자신을 제사장이라고 지칭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시대의 제사장이나 그렇다고 예수님처럼 완전한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을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제사장이라고 할 때 자신이 받은 사명이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려고 하셨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1)은혜를 전하는 제사장
본문 말씀에 바울은 자신의 복음의 제사장 직을 말하면서 "이 은혜는 나로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범죄한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이어 주는 교량 역할을 하는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나 주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이 제사장이었습니다.
물론 바울이 받은 은혜는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은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받은 은혜를 인하여 그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자신이 제사장과 같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크신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이런 귀한 자리에 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2)예수님의 일꾼으로 제사장
역시 본문 말씀에 자신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말하면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완성하신 그 구속사역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예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하셨던 대로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예수님의 일입니까.
예수님처럼 바르고 정직하게 죄없이 사는 것이 예수님의 일입니까
물론 그런 일들도 예수님의 일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완성하신 인간의 속죄사역을 믿는 일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그 구속에 참여시키는 일이 예수님의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자신을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하는 말이 자신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으로서 이 직분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의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사람들에게 전하여 많은 사람들이 속죄함을 받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3)이방인을 위한 제사장
바울은 또 자신이 복음의 제사장이 된 목적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방인을 위하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 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임을 자부하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짐승을 잡아 죽여야 겨우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죄인이었다고 한다면 그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이방 신을 섬기는 이방인들은 말할 것도 없는 흉악한 죄인입니다.
그 짐승처럼 여겼던 이방인들을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냥 제사장이 아니고 복음의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그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가진 복음의 위력은 너무나 위대한 것이어서 이방인 이니라 이방인들 중에 가장 흉칙한 죄를 지은 사람까지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 앞이라면 짐승을 한 트럭을 싣고 가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복음으로 간단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 복음은 언제나 누구나 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기에 바울은 복음의 제사장이 되어 이방인들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설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복음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 천국 시민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도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처럼 복음의 제사장이 되어 이 복음을 전함으로 이 복음을 받은 자들이 죄를 깨끗하게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잘 이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속함을 받고 천국 백성이 되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