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7.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골03)
본문 : 골 1:12-14
제목 :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우리 목사님은 왜 설교를 못할까”라는 제목의 책이 있어서 정독을 해서 읽어보았습니다.
데이비드 고든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석사학위를 했고, 유니온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했고 신학교 교수로 목사로 저술가로 활동한 분이 쓴 글이고 또 특별히 바울서신을 집중적으로 가르치신 분이라서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제가 관심을 가진 설교에 관한 책이고 작은 책이지만 “두꺼운 설교학 서적 열권보다 나은 책”이라는 안내 글이 있어서 잘 읽었습니다.
목사들 세계에 있어서 남의 설교를 보고 왈가왈부 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감히 이런 제목의 글을 쓰기 힘들지만 이분이 마침 직장암 3기로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으면서 생존율 25%라는 별 가망이 없는 상태가 되어서 요즘 유행하는 용감한 녀석들처럼 용감하게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분의 주장에 의하면 설교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설교를 듣고 무슨 설교를 했는지 그 주제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는 설교가 15%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좋은 말은 잔뜩 늘어놓기는 하는데 무슨 말을 하기 위해서 그런 말들을 하고 있는지 잘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제가 뚜렷한 15% 설교 중에서 그 주제가 성경본문에서 나온 것은 10% 미만이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설교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설교인데 그 중에 간혹 주제가 있는 설교가 있지만 그나마 성경본문과 관련이 없는 것들이더라는 것입니다.
설교는 개인의 주장을 피력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저자의 주장을 잘 살펴서 그 주장하는 바의 핵심을 바르게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25년 동안 고심한 끝에 설교는 그리스도의 위격과 성품과 사역을 전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 편에 서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설교는 바울의 주장대로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인간의 타락과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을 본문에서 발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분의 주장을 따르면(별별 주장들이 많으니까) 여러분은 진짜 매 주일마다 바른 설교를 듣고 계십니다.
저의 설교는 성경본문의 내용에 충실한 설교이고 그 본문의 핵심주제가 무엇인지를 발견해서 전하려고 늘 고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내용들이 언제나 십자가의 복음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설교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농담이나 하고 대강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는 설교가 아니라 성경의 핵심을 전해서 여러분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중차대한 일을 하기 위한 설교임을 명심하고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지난시간에 공부한 바울의 기도에 연결되어 있는 본문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감사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면서 왜 감사를 드려야 하는지 그 이
유를 함께 설명하고 있습니다.
1.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빛의 나라로 옮기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본문 13절 말씀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 주셔서 빛의 나라인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로 옮겨주셨기 때문에 그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의 첫 번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 주심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 이전에는 흑암의 권세 아래서 살았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이 흑암의 권세 아래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흑암의 권세에서 구원을 받아서 빛의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교회에 오지 못한 모든 세상 사람들은 아직도 흑암의 권세아래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1)영적인 눈이 밝아져서 진리를 알게 됨
이 세상과 교회가 대비되는 것들 중에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이 흑암의 나라와 빛의 나라로 대비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분이시고 교회는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빛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과 신분이 다릅니다.
신분의 변화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본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의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복음의 진리의 말씀을 아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 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인지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진리를 우리는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세계를 아는 것은 머리가 좋거나 공부를 많이 하거나 특별한 훈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선택을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난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무지의 세계 흑암의 세계어서 우리를 건져내셔서 이런 진리를 알게 해주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2)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착한 일을 하게 됨
목회를 해 보고 또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전도를 해 보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없는 그 무엇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어딘가에 착한구석이 있고 하나님을 만날만한 심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전도를 해도 교회에 오지 못한 사람은 우리가 전도를 하지 않고 기도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교회에 오지 못하게 방해를 하고 있는 흑암의 세력이 그 사람 안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교만합니다.
아주 교만한 마음이 그 사람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 볼 수 있는 기본적인 마음마저 봉쇄를 해버립니다.
자기 자신이 아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들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이 세상의 쾌락을 좋아합니다.
쾌락을 너무나 좋아해서 그것이 불법이건 합법이건 상관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도덕적이건 비도덕적이건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이기주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지금 나만 좋으면 그만입니다.
사람들과 더불어서 사는 것이나 남을 위해서 사는 것은 관심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거나 배려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오직 나뿐이고 오직 내 생각뿐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불법을 행하는 일을 아주 쉽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인간이 만든 법이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법이건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먹고 싶으면 먹고 놀고 싶으면 놀고 하기 싫으면 때려치우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그만입니다.
물론 이런 마음들이 우리에게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은 알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은 하더라는 것입니다.
더 착한 일을 하려고 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이런 마음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착한 마음을 주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에게 이런 마음을 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들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특별히 선한 마음을 주시고 그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살도록 늘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3)영원한 지옥에서 벗어나 천국백성이 됨
흑암과 밝은 것을 제일 확실하게 구별하는 것이 천국과 지옥입니다.
흑암에 사는 사람들은 눈이 어두워서 볼 수 없기 때문에 자신들이 어디를 향해서 가는지를 알지 못하고 살다가 결국은 그 끝인 지옥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빛 가운데서 살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길을 잘 보고 살았기 때문에 우리가 바라던 소망의 나라 영원한 천국 밝고 맑은 그곳으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흑암에서 건저 내셔서 빛 가운데서 살게 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면서 사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가장 귀한 일입니다.
2.그의 아들 안에서 속량 곧 죄 사함을 얻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본문 14절 말씀에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배로운 피로 값을 치르고 우리의 모든 죄가 완전히 다 사함을 받았다는 이 말씀은 우리 교회에서 저의 설교에서 가장 많이 들으신 말씀일 것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다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죄의 책임에서 다 해방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그 누구라도 우리를 다시 정죄할 수가 없도록 완전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최고의 법정에서 의인이라고 판결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의인들입니다.
그 죄 사함은 우리의 죄를 그냥 불법적으로 없애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로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고 정정당당하게 의로운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생일대에 있어서 너무나 귀하고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해서 우리 자신에게 가장 자랑스럽고 복된 일입니다.
이 중요한 일을 생애가 끝이 나기 전에 이미 미리 완결을 지어버릴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귀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최고의 법정에서 최후의 법정에서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느냐 죄인으로 판정을 받느냐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일이 결정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다 걱정 속에서 하는 일들일 수박에 없습니다.
고삼수험생을 둔 부모님이나 가족들은 시험을 치르고 대학 합격통지를 받는 그날까지 정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거기에 따라서 이 세상에서 그 아이의 운명이 좌우되기 때문에 그날까지 살얼음판을 걷습니다.
그런데 요즘 수시모집이라는 것이 있어서 입시 때까지 가지 않고 미리 합격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학생은 얼마나 기쁠까요? 그 대학이 일류대학이라면 더 기쁠 것입니다.
우리는 수시로 합격한 그 학생보다 더 발리 합격 판정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아예 태어날 때부터 합격 판정을 받고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약간의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이 합격을 소중하게 여기고 포기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에서 의인으로 판정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대신 죽게 하시고 그 피 값으로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러주심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은 이런 소중한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죄 사함의 비밀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교회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일들을 포기해버렸습니다.
교회가 무슨 취미생활이나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 운동하러 다니는 곳처럼 만들어버렸습니다.
교회가 무슨 교양강좌나 윤리 도덕 교육하는 곳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의 비위에 맞추다가 보니까 교회의 본질이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더 웃기는 일은 구원이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동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에 가도 나름대로 구원이 있고 유교나 사이비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구원의 의미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구원은 죄에서의 구원입니다.
영원한 멸망에서 지옥에서 구원입니다.
그런데 거짓지도자들은 그 구원을 이 세상의 가난에서 구원이나 질병에서 구원도 구원이라고 얼버무려버렸습니다.
그렇게 보면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습니다.
그들도 기도해서 병을 낫게 하고 그들도 기도해서 부자 되는 복을 받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타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구원은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병 좀 낫는 것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을 가지고 구원이라는 말을 써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은 그냥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께 도우심을 받아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병들고 어려움을 당할 때 너무나 극심한 가난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도우심을 바라고 의지하고 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와 비교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죄 사함이라는 구속이라는 엄청난 축복을 그런 부스러기 은혜와 비교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죄가 사해졌다는 것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 대신 형벌을 받으심으로 그 값을 치루고 우리는 이런 죄 사함이라는 큰 은혜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바르게 알고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본문 12절 말씀에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실 아주 쉬운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렵게 번역을 해서 무슨 말인지 신경 써서 살펴보지 않으며 잘 모르는 말로 들립니다.
그냥 쉽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좀 고상하게 쓰다가 보니까 어려운 말처럼 보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라고 했습니다.
여기 “빛 가운데서”라는 말은 현대어 성경에서는 “빛의 나라에서”로 번역을 했습니다.
흑암의 나라를 이 세상으로 본다면 빛의 나라란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빛 가운데서나 빛의 나라에서라는 말은 진리 가운데서 라는 말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복음의 진리 십자가의 진리를 통해서 보는 것을 말합니다.
그냥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만들어 낸 말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기록한 성경말씀 그것도 성경말씀의 핵심인 구원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를 통해서 볼 때 우리는 영원한 천국을 차지하기에 합당한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기업의 부분”은 영원한 기업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기업이란 주로 땅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땅을 지파별로 나눌 때 기업을 나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있어서 기업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 천국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분이라는 말도 잘못이해하면 그 일부를 조금 받은 것으로 오해를 할 수 있는 번역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이라는 말은 분깃, 몫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내 분깃 내 몫을 받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영원한 천국에서 기업의 분깃을 받게 되는데 그것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합당한 자격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얻을 때 불법이나 편법으로 받는 것은 불안하고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특별히 공짜로 얻게 될 때 노력이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그냥 받게 될 때 남이 받을 것 새치기해서 얻게 되면 별로 즐겁지가 않습니다.
저는 특별히 그런 것 싫어합니다.
불법이나 편법을 싫어합니다.
정정당당하게 자격을 가지고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이 영원한 천국의 기업은 너무나 좋은 것이기 때문에 불법이라도 편법이라도 새치기를 해서라도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차지해야 할 것입니다.
마음 착한 사람들은 이럴 때 불리합니다.
나는 괜찮아요. 다른 사람 먼저 주세요. 나는 안 받아도 돼요 이런 마음 착한 척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마음이 착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천국의 소중함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이 영원한 천국 영원한 생명이 얼마나 귀한 것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든 것을 다 포기한다고 해도 이것만큼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싸워서라도 쟁취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다행스러운 것은 하나님께서 합법적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떳떳하게 받으면 됩니다.
너무나 좋은 것을 주시면서 저 구석에 기다리고 있다가 치사하게 애걸을 하면서 구걸을 하면서 별별 것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얻는다고 해도 너무나 감사할 것인데 당당하게 자격을 주셔서 합당하게 떳떳하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직장에 다니시면서 월급 몇 푼 받으려고 하면 얼마나 치사한 일을 많이 당하십니까?
하루에도 수십 번 사표를 쓰고 싶을 만큼 아니꼬워도 처자식이 있어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참는 것입니다.
장사하시는 분들이 남의 주머니에 돈 좀 빼앗아 오려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
요즘은 손님이 왕이다 못해 손님이 하나님인 세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귀한 것 이렇게 엄청난 것을 주시면서도 떳떳하게 합당하게 뻐기면서 받을 수 있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조건도 걸지 않고 그냥 거저 은혜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알면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빛의 나라 성도의 기업인 천국을 당당하게 받게 해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진심으로 감사하시는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 성도들이 감사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흑암의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를 구원하셔서 밝은 빛의 나라에 거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의 보혈로 값을 치르고 구속하셔서 죄 사함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빛의 나라 영원한 기업 천국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합법적으로 당당하게 받도록 자격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