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29.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종합04)

본문 : 마 5:17-19

제목 : 완전한 율법 2.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로마서 7장에 보면 우리 성도와 율법관계를 설명하면서 율법에 대하여 우리는 죽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설명을 하기를 남편이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지만 그 남편이 죽은 다음에는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성도들은 율법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음으로 율법에서 벗어나서 더 이상 율법조문에 매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구나. 우리는 율법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이 되었구나. 이제는 율법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살자.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 그런 생각이 사라지게 됩니다.

산상보훈의 말씀은 특별히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직접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가 무시하고 넘어갈 수가 없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중요한 말씀에서 율법을 무시해서도 안 되고 일점일획까지 다 지켜야 된다고 하시니까 혼란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완전하게 하시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룬다고 했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지 말고 다 지켜야 된다고 했습니다.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하는 것일까요?

율법을 지켜야 되는 것일까요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지키면 어디까지 지켜야 되는 것일까요?

오직 믿음 오직 은혜가 중요한 것이니까 율법은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요?

이것을 우리의 마음속에 바르게 정립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율법을 여인과 비교해서 설명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여인이 시집을 갔는데 아주 엄격한 남편을 만났습니다.

시키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은 이것해라 내일은 저것해라 빨래는 깨끗하게 빨아라. 밥은 되지 않게 해라 반찬은 짜지 않게 해라 온갖 잔소리로 아내를 괴롭게 합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답니다.

잔소리 되게 하면서 아내를 괴롭히더니 자기가 죽어버리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잘됐다 이제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아야지 하고 재혼을 했는데 정말로 좋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정말로 아내를 사랑해주고 위해주는 남편과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날들을 보내면서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까 사실은 옛날에 하던 일이나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다 같더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일은 옛날보다 더 많이 더 잘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남편으로 섬기면서 억지로 시키는 대로 하다가 보니까 힘이 들었고 지금은 정말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과 같이 살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을 하다가 보니까 똑 같은 일을 하면서도 힘들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율법과 우리의 관계를 비유로 이야기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 억지로 율법을 지키려고 할 때는 힘이 들고 율법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고 나면 율법을 지키는 것이 힘들지 않고 오히려 행복하고 즐겁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기위해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자로서 율법은 쉽고 행복합니다.

 

 

지난주에는 율법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구체적으로 율법이 어떤 유익을 주는 것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전하게 하셨고 완전하게 하신 그 율법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1.도덕적인 율법의 완성

예수님께서 폐하러 오시지 않고 완전하게 하러 오셨다는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성경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여러 가지 도덕적인 율법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도덕에 관한 율법들을 완전하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오셨고 계속해서 대표적인 계명들을 재해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미 선한 양심들을 넣어주셔서 율법이 없더라도 양심적이고 선한 삶을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의 마음속에는 이런 선한 일을 하면서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바르게 살려는 선한 양심이 사라지기 시작을 합니다.

악한 마음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악한 일을 하면서 살기 시작을 합니다.

 

그런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지킴으로 복을 받게 하거나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게 하는 율법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여러 가지 율법들을 제정해 주시고 그 율법을 지키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고 지키지 않는 자들에게 벌을 주심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선한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법이라는 것은 그때그때 당시의 사람들에게 필요하고 맞는 법들을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을 통해서 재해석해 주신 대표적인 도덕적인 율법이 5장 21절 이하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헛맹세를 하지 말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 이런 기초적인 계명에 대해서 재해석을 해 주셨습니다.

 

옛날 유대인들의 시회에는 이렇게 하면 그들이 선한 삶을 살 수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해 주셨지만 지금은 그런 정도로 선한 삶을 살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과 같았습니다.

특별히 가난한 사람 천민들 노예들은 짐승과도 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런 시절의 사람들에게는 살인하지 말라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격이 많이 향상이 되었습니다.

살인을 하는 것은 정말로 나쁜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지 보통 사람에게 계명을 만들 정도의 일은 아닙니다.

우리 성도는 그런 초보적인 법이나 지키면서 살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형제에게 화를 내서도 안 되고 욕을 해서도 안 되고 무시하는 말을 해서도 안 됩니다.

원망을 들을만한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예배를 드리기 전에 형제에게 원망을 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 얼른 가서 화해를 하고나서 예배를 드려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옛날에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 정도가 선한 사람이 되는 기준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보복을 하되 몇 배로 보복을 해야 마음이 풀렸습니다.

그래서 당한 만큼만 되갚는 것은 신사적인 사람으로 간주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런 정도로 선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를 대적해서 안 되며 오른뺨을 때리면 외편도 돌려대는 그런 정도의 사람이 되어야 선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특별히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도덕적인 율법을 주신 이유는 그것입니다.

법 자체를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서로를 사랑하면서 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2.하나님을 섬기는 율법의 완성

율법에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도덕적인 율법도 있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에 관한 율법도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는 것을 영적인 것이라고도 하고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인지 관심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신앙생활을 잘 하면서 사는 것이 성도된 자들의 목표일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섬기는 대표적인 것은 제사를 드리는 것 절기를 지키는 것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신약시대의 성도들도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할 때 안식일을 지키는 것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 그것을 제일로 여깁니다.

 

옛날 사람들은 안식일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안식일이 아닌 주일을 지키지만 주일을 안식일을 지키는 것처럼 지킵니다.

 

저는 어려서 재건교회를 개척하신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장성해서는 고신 측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고신도 그랬지만 재건교회는 철저하게 주일을 안식일처럼 지켰습니다.

주일날 차를 안타는 것은 기본이고 농사철이 되어도 그날은 쉬었고 시험을 보는 것도 못 보게 했습니다.

지금도 주일이 되면 전화도 받지 않고 텔레비전 시청도 하지 않는 재건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사실 그렇게 문자적으로 철저하게 구약의 율법을 지키려고 한다면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각종 절기며 제사며 옷을 입는 것과 음식을 먹는 것과 지키면서 살아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하필 안식일만 그렇게 강조한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많은 율법 가운데 꼭 안식일만 그렇게 강조한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안식일에 대해서 재해석을 하시면서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문자적 그대로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 제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우리가 쉬고 또 세상일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섬김으로서 인간의 본분을 다하게 하기 위해서 안식일을 제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식일 대신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일을 안식일처럼 그렇게 지킬 것은 아니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위해서 사는 날로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고 그 복음의 말씀을 듣고 전하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도 구약의 제사제도가 주는 의미를 생각해야 하겠지만 어떤 방법이든지 더 하나님을 찬양하고 더 많은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의 제사를 다 완성을 하시고 이제 제사가 아닌 예배를 드리게 해 주셨습니다.

구약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짐승을 끌고 와서 피를 흘리게 하고 태우고 하는 복잡한 제사를 드려야 했겠지만 지금 우리는 그 제사의 완성인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 때신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너무나 큰 축복일 것입니다.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도 옛날 사람들이 시편찬송가만 불렀다고 해서 시편찬송가나 아니면 찬송가에 있는 찬송만 부르는 것이 꼭 좋은 일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기쁨으로 넘치고 가슴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운 찬송을 불러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그때 필요하고 정서에 맞는 새 노래를 만들어서 부름으로서 우리의 마음이 늘 뜨겁고 새롭게 주님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참 복 있는 행동입니다.

늘 부르던 그런 찬송을 무의식적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고 늘 새로운 마음으로 새 노래를 만들어서 감격하며 감동하며 부르는 찬송은 정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진리를 따라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들을 잘 살펴보면 우리에게 행하라고 하신 말씀 속에는 그 말씀대로 행하면 우리에게 유익한 것들이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월간고신 8월호에 한의원 원장이신 김양규 장로님이 쓴 건강에 관한 글이 실려 있습니다.

“기가 가벼워야 건강하다”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한방에서 기가 막힌다는 것은 기가 무거워져서 피도 무거워져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서 몸도 무거워지고 아픈 형상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사랑하는 마음이 되고 기쁜 마음이 되고 감사하는 마음이 되면 기가 가벼워져서 혈색도 피어나고 건강해진다고 합니다.

 

기가 가벼워진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호르몬 효과라고 합니다.

사랑과 기쁨이 넘치면 엔도르핀이라는 호르몬이 나와서 항암 항염증 항노화 작용이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엔도르핀보다 4천배나 효과가 좋은 강한 호르몬이 있는데 그것은 다이돌핀이라는 호르몬이라고 합니다.

이 다이돌핀은 깊은 감동에 빠질 때 폭발적으로 분비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감동적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때 그것을 너무나 좋아하시기 때문에 거기에다가 엄청난 축복을 넣어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감동적인 찬송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3.구원에 관한 율법의 완성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구원에 관한 많은 기사들을 읽습니다.

노아홍수 때부터 살펴보면 세상 사람들이 다 홍수로 죽게 될 때 노아와 그 가족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탈 때 거기 살던 사람들 중에 롯과 그 딸들만 구원을 받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셔서 그들을 탈출시킵니다.

기적적인 방법으로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고 요단강을 건너게 해서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유다가 망해서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 하나님께서 그 남은 자들 중에서 소수의 사람들을 귀국시킵니다.

수많은 전쟁 수많은 재난 수많은 병마와 고통 속에서 사람들을 구해주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구원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숨은 그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입니다.

그런 구원들의 완성이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한 구원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구약성경이 이야기하고자 한 핵심입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많은 절기들과 의식들을 봅니다.

유월절이나 여러 감사절이나 속죄일이나 짐승을 잡아서 드리는 여러 종류의 제사들이 모두가 다 하나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절기의 의미들이 그 제사에 쓰인 제물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활동한 위대한 인물들을 봅니다.

요셉이나 모세나 다윗이나 솔로몬이나 그렇게 유명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과 맺어주신 많은 언약들을 발견합니다.

노아에게 무지개를 보여주시면서 약속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들을 보여주시면서 약속을 하셨습니다.

다윗에게 그 후손들을 통한 왕의의 보장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외에 수많은 크고 작은 언약들이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시겠다는 언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구원의 사건들과 제도들과 언약들의 성취가 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구약성경을 부인하거나 없애기 위하심이 아니라 그 예언들을 성취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 성취의 결과로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게 된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께로 인도해준 구약성경을 우리는 소홀하게 여길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율법 자체를 지키는 것보다는 율법이 우리에게 준 참된 의미들을 살펴보고 그 귀한 뜻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을 알고 보면 율법은 우리에게 참으로 유익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완전하게 하신 그 율법은 너무나 귀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전하게 하셔서 참된 도덕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전하게 하셔서 하나님을 섬기는 바른 모습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완전하게 하셔서 참된 구원의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이렇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만드신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