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2.1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73)
본문 : 롬 15:13
제목 : 기쁨과 평강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늘 기쁨과 평강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기쁨은 잠깐이요 평강은 잠깐이요 돌아서면 슬픔과 고통이 그리고 다툼과 경쟁이다가 오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일에 방해가 되는 일이 더 많은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기쁨의 날을 위해 수많은 날들을 기다리고 희생을 하면서 살아 보지만 진정한 기쁨과 평강은 잠시거나 아예 오지 않는 것이 이 세상의 일일 것입니다.
내가 잠시라도 기뻐하는 것을 보기 싫어하는 원수가 있는 것처럼 잠시 기쁜 꼴을 못보고 우리에게 슬픔과 괴로움을 주고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일입니다
돈을 좀 벌어 놓으면 살만하지 않겠느냐 해서 열심히 노력해서 돈 좀 벌어 놓으면 그만 몸이 병들고 사고가 나거나 고통스런 일이 생기게 마련인 것이 이 세상의 일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참된 기쁨을 만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평강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경쟁사회라고 말합니다
남을 죽이고 남에게 이겨야 살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일입니다
개인과 개인이 서로 싸워야 하고
나라와 나라가 서로 싸워야 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런 전쟁의 세상에서 서로간에 평화를 누리면서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바울은 그의 간절한 기도 속에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모든 기쁨과 평강"이 넘치게 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기쁨과 평강에 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기쁨이 넘치는 삶 평강이 넘치는 삶을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참된 기쁨과 평강이 우리가 가진 이 믿음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참된 기쁨과 평강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1.주안에서 기뻐하라
인도에서 소외된 이웃을 돌보았던 테레사 수녀를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분은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을 선발할 때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발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웃음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 분들이 웃음에 대해서 이런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성인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서 금식을 시킨 후에 한 쪽 사람들은 아주 웃기는 비디오를 한 시간 동안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 혈액을 뽑아 분석을 해 보았는데 인체 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테페런이라는 항체가 있는데 이 항체가 웃기는 비디오를 본 사람이 보지 않은 사람들보다 약 200배가 증가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증가된 항체가 30분 동안이나 유지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몇 가지 호르몬들은 오히려 감소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별 의미 없이 그냥 웃는 것도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데
정말로 기뻐해야 할 성도들은 그 웃음을 빼앗긴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참된 성도의 생활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생활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사하며 기뻐하는 생활이 참된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안 믿는 사람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세상일이 잘 될 때는 기뻐하지만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세상염려, 걱정근심, 불평 불만 한다면 아직도 참된 신앙과 영적 생활을 못한 연고입니다.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어떤 사람은 불교는 초상집에 비유하고,
유교는 제사집에 비유하지만,
기독교는 기쁨이 충만한 잔치집에 비유합니다.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종교는 오직 기독교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최초의 이적을 행하신 것도 가나의 혼인 잔치집에서였습니다.
혼인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져서 기쁨이 사라질 수 밖에 없을 때에 물을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셔서 혼인잔치집에 더욱 기쁨이 충만케 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구원의 세계는 기쁨이 충만한 혼인잔치집과 같으며, 우리 예수님은 기쁨의 근원이 되시고, 기쁨의 원천이 되십니다.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이 기록한 빌립보서에는 이 기쁨이 주제로 되어 있습니다.
주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은 빌립보서의 총 주제입니다.
그가 빌립보서를 기록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을 때였습니다.
비록 그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주안에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는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3-4절 말씀에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기쁨으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이라고 했습니다
빌1:18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전파되는 일로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빌2:17-18)에는 성도들을 위해 자신이 희생을 당한다고 해도 기뻐한다고 말씀합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또 빌4:4에서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말하고는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고 강조했습니다.
빌4:10에는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한다"고 까지 그가 받은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기쁨에 대해서 강조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11에는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또 요16:22절 말씀에도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환경을 따라서 조건에 의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이 변하면 그 기쁨도 사라지고, 조건이 없어지면 슬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기쁨,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기쁘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1)주 안에서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누리는 기쁨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사실을 깨달을 때에 나오는 기쁨은 절대적인 기쁨입니다.
우리 영혼이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것을 선물로 받은 것인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리면 이 기쁨을 떠나면 우리의 삶은 아무런 의미는 없습니다.
구원은 우리가 주 안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알지 못하고 뺏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기쁨은 생각할수록 더 진하고 더 강하고 더 깊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시련을 당하실 때 이 구원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평생 웃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 좋은 사실을 없는 것처럼 잊고 작은 일에 고통하며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주 안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로 기뻐하는 기쁨입니다.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은 다른 의미에서는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주님 안에 있음을 기뻐하라는 의미입니다.
어린 아이가 어머니 품속에 있을 때에 기뻐하고 평안을 누리는 것 같이 우리들에게 있는 참된 기쁨은 주님과 함께 함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데 염려하고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을 때에 기쁨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다 우리를 떠날지라도 그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주 안에서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벧전1:5에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원수들에게서 보호하시는 은혜를 깨달을 때에 주님 안에 거하는 자의 기쁨과 담대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의 생각과 판단으로 도저히 결정할 수 없는 중요한 일들이 너무 많은 세상입니다.
그 때마다 성령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여러 가지 싸인들을 보여 주심으로 우리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4)주 안에서 약속된 미래에 대한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천국이 있습니다.
이는 주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하시면서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려 가신다 하신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늘에 오르사 우리 처소를 예비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소망입니다. 나그네 삶을 사는 자에게 부모 형제가 기다리는 돌아갈 본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망이 되고 기쁨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지치고 힘들 때에라도 얼마 있지 않아서 우리가 들어갈 영원 천국을 소망하면 우리에게 새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아직 우리들이 약속으로만 받은 천국이지만 약속하신 분이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은 부도내시지 않으실 완전하시고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를 믿는 믿음으로 미리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내일 소풍 가는 아이가 그 전날에 좋아서 잠을 못 자듯이 우리들이 이미 이 세상에서 즐거워합니다.
이 세상에서 영생을 맛 보는 기쁨입니다. 우리가 약속을 믿는 이 미래에 대한 소망에 대한 기쁨을 알지 못하면 여전히 우리는 세상만 보게 될 것이고 그럴 때에 우리의 삶은 우리를 여전히 피곤하게 할 것입니다.
5)주 안에서 수고하는 것도 기쁨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수고할 수 있다는 것은 짐이 아닙니다.
얼마나 의미가 있으면 보람이 있습니까?
우리가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남의 일 보듯이 보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구원 사역에 동참하는 일을 바울은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그는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빌립보 교회의 믿음의 제물과 봉사의 제물 위에 자신을 관제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희생으로 드려져도 그는 기뻐하리라 했습니다.
6)이 모든 것이 주안에서 얻은 은혜인 것을 생각할 때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누리는 이 모든 기쁨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기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너무나 큰 것이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 값없이 대가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2.평강이 충만하라
평강이라는 단어도 성경에서 참 많이 쓰이는 단어입니다
평강을 헬라어로는 "에이레네"(ειρηνη)라고 합니다.
평화, 화평, 안전, 화친, 화목 등등으로 번역이 되는 말입니다
이 "에이레네"라는 말의 어원은 "에이로"(ειρω)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이로는 "합하다", "연결하다"라는 뜻입니다
"에이레네"를 어원적인 의미로 생각을 해 볼 때 이 평강이란 어떤 것과 합했을 때 어떤 것과 연결되었을 때 누리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강이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졌을 때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졌을 때 우리가 누리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졌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화목제물이 되게 하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된 상태를 평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강'은 실제로 생명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죽었던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새로운 생명을 받은 그 상태를 평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이 평강은 세상이 말하는 평화정도의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잇습니다
잠시 전쟁을 멈추고 휴전을 하고 평화롭게 사는 그런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새로운 생명을 얻어 영생의 세계로 들어감으로 우리가 누리게 되는 마음의 평화가 오늘 본문이 말하는 평강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세상살기에 바빠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별로 느끼지 못하고 삽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마감할 때 주님이 다시 오실 때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는 채로 그 하나님을 만난다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반대로 그 하나님과 평화로운 상태에서 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상태에서 만난다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우리가 가진 이 하나님과의 평화는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평강을 우리는 지금 누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평강을 다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기쁨과 평강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 롬 15:13
제목 : 기쁨과 평강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늘 기쁨과 평강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기쁨은 잠깐이요 평강은 잠깐이요 돌아서면 슬픔과 고통이 그리고 다툼과 경쟁이다가 오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일에 방해가 되는 일이 더 많은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기쁨의 날을 위해 수많은 날들을 기다리고 희생을 하면서 살아 보지만 진정한 기쁨과 평강은 잠시거나 아예 오지 않는 것이 이 세상의 일일 것입니다.
내가 잠시라도 기뻐하는 것을 보기 싫어하는 원수가 있는 것처럼 잠시 기쁜 꼴을 못보고 우리에게 슬픔과 괴로움을 주고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일입니다
돈을 좀 벌어 놓으면 살만하지 않겠느냐 해서 열심히 노력해서 돈 좀 벌어 놓으면 그만 몸이 병들고 사고가 나거나 고통스런 일이 생기게 마련인 것이 이 세상의 일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참된 기쁨을 만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평강이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경쟁사회라고 말합니다
남을 죽이고 남에게 이겨야 살 수 있는 것이 세상의 일입니다
개인과 개인이 서로 싸워야 하고
나라와 나라가 서로 싸워야 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런 전쟁의 세상에서 서로간에 평화를 누리면서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에 바울은 그의 간절한 기도 속에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모든 기쁨과 평강"이 넘치게 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기쁨과 평강에 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기쁨이 넘치는 삶 평강이 넘치는 삶을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참된 기쁨과 평강이 우리가 가진 이 믿음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참된 기쁨과 평강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1.주안에서 기뻐하라
인도에서 소외된 이웃을 돌보았던 테레사 수녀를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분은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을 선발할 때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는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발했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웃음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 분들이 웃음에 대해서 이런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성인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서 금식을 시킨 후에 한 쪽 사람들은 아주 웃기는 비디오를 한 시간 동안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 혈액을 뽑아 분석을 해 보았는데 인체 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테페런이라는 항체가 있는데 이 항체가 웃기는 비디오를 본 사람이 보지 않은 사람들보다 약 200배가 증가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증가된 항체가 30분 동안이나 유지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몇 가지 호르몬들은 오히려 감소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별 의미 없이 그냥 웃는 것도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데
정말로 기뻐해야 할 성도들은 그 웃음을 빼앗긴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참된 성도의 생활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생활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사하며 기뻐하는 생활이 참된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안 믿는 사람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세상일이 잘 될 때는 기뻐하지만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세상염려, 걱정근심, 불평 불만 한다면 아직도 참된 신앙과 영적 생활을 못한 연고입니다.
기독교는 기쁨의 종교입니다.
어떤 사람은 불교는 초상집에 비유하고,
유교는 제사집에 비유하지만,
기독교는 기쁨이 충만한 잔치집에 비유합니다.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종교는 오직 기독교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최초의 이적을 행하신 것도 가나의 혼인 잔치집에서였습니다.
혼인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져서 기쁨이 사라질 수 밖에 없을 때에 물을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셔서 혼인잔치집에 더욱 기쁨이 충만케 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구원의 세계는 기쁨이 충만한 혼인잔치집과 같으며, 우리 예수님은 기쁨의 근원이 되시고, 기쁨의 원천이 되십니다.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이 기록한 빌립보서에는 이 기쁨이 주제로 되어 있습니다.
주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은 빌립보서의 총 주제입니다.
그가 빌립보서를 기록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있을 때였습니다.
비록 그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주안에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는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3-4절 말씀에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기쁨으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이라고 했습니다
빌1:18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전파되는 일로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빌2:17-18)에는 성도들을 위해 자신이 희생을 당한다고 해도 기뻐한다고 말씀합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또 빌4:4에서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말하고는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고 강조했습니다.
빌4:10에는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한다"고 까지 그가 받은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기쁨에 대해서 강조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11에는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또 요16:22절 말씀에도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환경을 따라서 조건에 의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이 변하면 그 기쁨도 사라지고, 조건이 없어지면 슬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기쁨,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기쁘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1)주 안에서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누리는 기쁨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사실을 깨달을 때에 나오는 기쁨은 절대적인 기쁨입니다.
우리 영혼이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것을 선물로 받은 것인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리면 이 기쁨을 떠나면 우리의 삶은 아무런 의미는 없습니다.
구원은 우리가 주 안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알지 못하고 뺏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기쁨은 생각할수록 더 진하고 더 강하고 더 깊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고 시련을 당하실 때 이 구원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평생 웃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 좋은 사실을 없는 것처럼 잊고 작은 일에 고통하며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주 안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로 기뻐하는 기쁨입니다.
구원을 얻었다는 사실은 다른 의미에서는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주님 안에 있음을 기뻐하라는 의미입니다.
어린 아이가 어머니 품속에 있을 때에 기뻐하고 평안을 누리는 것 같이 우리들에게 있는 참된 기쁨은 주님과 함께 함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데 염려하고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을 때에 기쁨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다 우리를 떠날지라도 그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주 안에서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벧전1:5에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원수들에게서 보호하시는 은혜를 깨달을 때에 주님 안에 거하는 자의 기쁨과 담대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의 생각과 판단으로 도저히 결정할 수 없는 중요한 일들이 너무 많은 세상입니다.
그 때마다 성령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여러 가지 싸인들을 보여 주심으로 우리가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4)주 안에서 약속된 미래에 대한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천국이 있습니다.
이는 주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 하시면서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려 가신다 하신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늘에 오르사 우리 처소를 예비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소망입니다. 나그네 삶을 사는 자에게 부모 형제가 기다리는 돌아갈 본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망이 되고 기쁨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지치고 힘들 때에라도 얼마 있지 않아서 우리가 들어갈 영원 천국을 소망하면 우리에게 새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아직 우리들이 약속으로만 받은 천국이지만 약속하신 분이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은 부도내시지 않으실 완전하시고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를 믿는 믿음으로 미리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내일 소풍 가는 아이가 그 전날에 좋아서 잠을 못 자듯이 우리들이 이미 이 세상에서 즐거워합니다.
이 세상에서 영생을 맛 보는 기쁨입니다. 우리가 약속을 믿는 이 미래에 대한 소망에 대한 기쁨을 알지 못하면 여전히 우리는 세상만 보게 될 것이고 그럴 때에 우리의 삶은 우리를 여전히 피곤하게 할 것입니다.
5)주 안에서 수고하는 것도 기쁨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수고할 수 있다는 것은 짐이 아닙니다.
얼마나 의미가 있으면 보람이 있습니까?
우리가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남의 일 보듯이 보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구원 사역에 동참하는 일을 바울은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그는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빌립보 교회의 믿음의 제물과 봉사의 제물 위에 자신을 관제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희생으로 드려져도 그는 기뻐하리라 했습니다.
6)이 모든 것이 주안에서 얻은 은혜인 것을 생각할 때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누리는 이 모든 기쁨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기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너무나 큰 것이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 값없이 대가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2.평강이 충만하라
평강이라는 단어도 성경에서 참 많이 쓰이는 단어입니다
평강을 헬라어로는 "에이레네"(ειρηνη)라고 합니다.
평화, 화평, 안전, 화친, 화목 등등으로 번역이 되는 말입니다
이 "에이레네"라는 말의 어원은 "에이로"(ειρω)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이로는 "합하다", "연결하다"라는 뜻입니다
"에이레네"를 어원적인 의미로 생각을 해 볼 때 이 평강이란 어떤 것과 합했을 때 어떤 것과 연결되었을 때 누리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강이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졌을 때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졌을 때 우리가 누리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졌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화목제물이 되게 하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된 상태를 평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강'은 실제로 생명과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죽었던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 새로운 생명을 받은 그 상태를 평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이 평강은 세상이 말하는 평화정도의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잇습니다
잠시 전쟁을 멈추고 휴전을 하고 평화롭게 사는 그런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새로운 생명을 얻어 영생의 세계로 들어감으로 우리가 누리게 되는 마음의 평화가 오늘 본문이 말하는 평강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세상살기에 바빠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별로 느끼지 못하고 삽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마감할 때 주님이 다시 오실 때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는 채로 그 하나님을 만난다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반대로 그 하나님과 평화로운 상태에서 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상태에서 만난다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우리가 가진 이 하나님과의 평화는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평강을 우리는 지금 누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 평강을 다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기쁨과 평강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