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2.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72)
본문 : 롬 15:13
제목 : 소망의 하나님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울의 간절한 기도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기도 속에는 우리에게 축복이 되는 아주 중요한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구구절절 아주 소중한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 중요한 주제들을 그냥 한번 설교로 넘어가기에는 너무 아쉬워서 몇 시간에 나누어서 이 말씀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소망에 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처음 시작이 "소망의 하나님"으로 시작이 되었고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끝이 나고 있기 때문에 이 소망이라는 주제는 이 기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세상엔 소망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다 소망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매일 일하고 사는 것은 소망이 있기에 일을 합니다.
학생은 좋은 앞날을 가질 소망으로 공부를 합니다. 
농부는 많은 곡물을 추수할 소망으로 농사를 짓습니다. 
상인은 돈을 많이 벌 소망으로 장사를 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잘 되어 자녀에게 효도를 받을 소망을 기지고 자녀를 기릅니다. 
사실 모든 활동, 모든 사업의 배후에는 이 소망이 있습니다.
모든 노력의 배후에는 이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인간적인 소망에 있어서는 설사 이런 소망들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우리가 본래 기대하던 것처럼 만족은 없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성공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실 성공한 사람보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더 많은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더러는 소망이 이루어져서 성공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한 이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그저 사업만 성공하고 돈만 모으면 천하를 얻은 것처럼 생각하지만 정작 사업에 성공해 놓고 보면 또는 돈도 모아 놓고 보면 기대하던 것처럼 만족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돈이 많으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새로운 문제가 많이 닥칩니다. 
시기하는 사람도 많아집니다. 
설사 사업에 성공하고 돈을 모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환멸의 비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 번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우리 나라 대표선수들이 일명 전차군단이라 불리우 는 독일팀과 맞대결할 때 우리 나라 응원팀 붉은 악마들은 "꿈은 이루어진다"는 카드섹션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우리 나라 축구가 4강에 올랐다는 것만으로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은 그럴듯한 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우리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많으며 이루어진다고 해도 별 볼일이 없는 사소한 것이거나 이루어졌다는 그 꿈도 완전하지 못한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한 때는 미국으로 가서 사는 것이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못살 때 그들은 경제 성장을 이루었고 우리가 독재정치에 시달릴 때 그들은 일찍이 자유로운 나라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부와 그들의 자유스러움이 우리의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 미국이라는 나라는 더 이상 우리의 소망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 나라도 어느 정도 살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고 자유스럽게 사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님을 우리가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좀 지난 것이지만 미국의 60년대 초에서 90년대 말까지의 경제 사회에 관한 통계를 본 일이 있습니다.
미국은 이 30년 동안 인구가 41% 증가했고 국내 총 생산은 3배가 증가했으며 소비도 5배가 증가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동안 폭력범죄는 560%, 불법출산은 400%, 이혼율 400%나 증가했다고 합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범죄나 좋지 않은 일들은 더 많이 성장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 미국의 교사들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문제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순서를 지키지 않는 일, 수업시간에 껌을 씹는 일, 복도에서 뛰는 일, 새치기, 복장위반, 휴지 버리기 등이 문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교사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그 대답은 엄청나게 바뀌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학교에서의 문제는 더 이상 질서를 안 지킨다, 껌을 씹는다, 그런 고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약과 같은 약물의 복용, 알코올 남용, 십대의 혼전임신, 자살, 절도, 강간 등이 오늘날 학생들의 문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경제적인 부와 자유가 우리의 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좀 더 경제적으로 부자가 되는 것이 소원일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누구에게든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사는 것이 소원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꿈이 이루어질수록 오히려 더 파괴적이고 폭력적이고 더 위험한 세상이 되는 것은 물론이요 우리의 영혼은 더욱 더 타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꿈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사시는 여러분들에게 절망을 안겨 주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꿈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꿈 그 소망이 바른 것인가 하는 것은 한번쯤 점검을 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많이 지난 다음에 우리가 속고 살았다는 허무함을 맛보지 않으려면 미리 미리 점검을 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세상에는 완전한 소망이 없다는 것 이 세상의 소망이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만족이 없다는 것을 미리 알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하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 되십니다
성경은 우리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 되신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오늘 본문 말씀에 "소망의 하나님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망이 되신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 인생과 같지 않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소망이 되십니다.
왜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까?

1)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짧은 것은 소망이 아닙니다. 
잠깐 뒤에 시드는 것은 산 소망이 아닙니다.
영원히 변치않는 소망, 시간적으론 길고 길어서 영원한 것이 산 소망입니다.
그 소망은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소망을 둬야 합니다. 

2) 하나님은 변치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식에 투자해서 망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가가 오르고 벤처기업이 뜨고 있을 무렵에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고 투자를 했습니다. 그러나 주가처럼 세상의 흐름에 따라 요동이 심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주가처럼 올랐다 떨어졌다 하는 것은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영원히 변치않는 소망이 참된 소망입니다.
그 소망은 하나님께만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3)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은 가치가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값으로 따질 수 있는 물건이 있고 값으론 따질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보석, 귀금속, 부동산등은 값으로 정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의 피는 값으로 따질 수가 없습니다.
값으로 칠 수 있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값을 계산하거나 정가 표를 부칠 수 없는 소망, 
금이나 보석보다 더 귀하고 값진 소망이 참 소망입니다. 
그 소망은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의 소망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런 허무한 세상에서 영원한 죄악에서 구원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5)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시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시지 않거나 우리의 삶과 관계가 없는 분이시라면 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살아 계시고 우리 곁에 계서서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이 최고의 소망이 있는 삶입니다

6)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소망을 두고 있는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께 대하여 다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일평생 사는 동안 그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며 그 하나님께 대하여 믿음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늘 명심하면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을 보면 그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 자신에게 혹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두는 사람은 멸망의 길로 갔고
세상에 소망이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던 사람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이 되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3.그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은 고통과 인내를 수반합니다
제가 한편의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여러 책들을 봅니다
이 소망에 관한 설교를 준비하는데 볼만한 책이 없어서 서점에를 갔습니다
비교적 책이 많은 서점에서 두시간여를 찾았고 컴퓨터로 조회를 해 보았지만 소망에 관한 책은 책방에는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신앙적인 면에서 소망을 찾지 않고 사는구나
신앙이란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인데 그렇다면 기독교 서점에는 그 소망에 관한 책들이 제일 많아야 할 것인데 왜 이렇게 그 중요한 주제의 책이 없을까

벌써 우리 나라도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일이 부끄러운 일이 되고 말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소망에 대하여 왜 이렇게 무관심하면서 살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을 헤 보았습니다
교회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교회에서 성공신학이다 부흥신학이다 하는 것들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이 땅에 묶어 두는 일을 많이 해 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마음이 하늘나라에 있지 않고 이 세상에서 잘 사는 일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게 된 것입니다

반대로 사이비 이단들이 시한부 종말론이나 현실을 무시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천국만 바라보고 살게 하는 극단주의자들 때문에 내세에 소망을 두는 것은 이단시화 되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삶도 우리가 포기하거나 무시할 삶이 아닙니다
나에게 주어진 가정 회사 교회 사명들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삶이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영원한 본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 안타까운 생각을 하면서
그러다가 겨우 아주 작은 네비게이토에서 나오는 소책자 한 권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제목은 "고난 중의 소망"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소망이란 고난을 통과함으로 얻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난의 길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 고통의 문 그 좁은 문 뒤에 있는 소망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지금 고난을 당하고 후일을 기약하는 이야기나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사후의 천국의 소망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배운 로마서 5:3-4절 말씀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환난을 허용하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말미암은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제거하시지 않고 두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환난을 겪음으로 그 환난을 통해 인내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환난을 통해 인내를 배우게 되고 그 인내는 우리가 참고 견디는 연단을 배우게 하고 그 연단은 우리에게 참된 소망을 갖게 해 주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고난 중의 소망이라는 글을 쓴 덕 스팍스 선교사는 자기 처제가 암으로 고통을 당하다가 죽었고 자신도 엄청 위험한 암을 수술했으며 자기 딸 부부가 교통사고로 비참한 죽음을 당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고통을 당하면서 그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왜 우리 삶 가운데 이런 고통이 있어야만 하는가를 깊이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깊은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이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고통을 통해서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 참된 소망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지금 현실에 안주하면서 지금현재 편하게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래의 좀더 나은 삶을 위해서 기꺼이 지금 고난을 당하려고 합니다

더 먼 미래 즉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영원한 나라를 위해서 지금 현세에서 기꺼이 고난을 당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 미래 즉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우리 성도들이 현세에 안주하며 참된 소망에 대해서 소홀히 여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참된 소망은 없습니다
이 세상의 소망은 일시적이거나 우리를 속이는 것일 뿐 그것은 소망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 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영원하심이 그 변함이 없으심이 그 영원한 나라가 참된 소망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소망은 우리가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할 때 얻게 된다는 것도 기억을 하시기 바랍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우리에게 참된 소망을 가지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