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 5:10-12
제목 : 천국의 복과 하늘의 상.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그동안 여러 성도님들이 산상보훈의 말씀을 잘 들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좋기는 좋은 말씀인데 우리가 사는 세상하고 너무나 거리가 먼 말씀이기 때문에 아마도 이 말씀은 천국에 가서나 실천할 수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셨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방면으로 생각을 합니다.
좋은 말씀이지만 지금 실천하기에는 너무나 어렵고 우리의 현실과 거리가 먼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은 임박한 종말을 앞 둔 그 때 사람들에게 긴급조치로 비상조치로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지킬 수 없는 말씀이고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실 날이 가까이 올 때 긴급하게 지켜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특별히 수준이 높은 신앙인들이나 지켜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보통사람은 지킬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일이고 성직자나 특별히 하나님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나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은 단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어떤 결단을 하라는 말씀이지 그 말씀대로 지키며 살라고 하는 말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냐 이 세상이냐 두 가지 길 가운데서 선택을 해서 살라는 말씀으로 이해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우리처럼 로마서의 이신칭의의 복음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이런 말씀을 실천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십자가를 붙들라는 말씀으로 이해를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견해들이 다소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 말씀을 실천하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로는 어떤 견해도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모든 세대에 모든 경우에 다 지켜서 행하여야 하는 말씀입니다.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그 말씀을 다 지킬 수는 없고 또 그 말씀을 다 지켜서 의로운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말씀대로 지켜서 행하는 것이 성도된 자의 마땅한 의무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어떤 강해설교가 끝이 나면 늘 아쉬움이 남습니다.
구구절절 귀한 말씀들을 전했는데 전하는 것만큼 성도들의 반응은 시원치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듣고 나면 금방 잊어버리고 설교 듣기 전이나 들은 후에 아무런 삶의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요한 부분들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나누고 싶고 그 말씀을 우리 삶 속에 실천하자고 다짐이라도 다시 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반복하여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부터 몇 시간동안 5장에서 7장까지 산상보훈의 말씀 중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정리를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이렇게 반복하면서 정리하는 말씀을 통하여 부분적으로 생각을 하면서 놓치기 쉬운 전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또 그냥 듣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실천을 해 보아야겠다고 다짐을 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요즘 존 베케트라는 사람이 쓴 “다니고 싶은 회사 만들기”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제목만 봐서는 신앙과 관계가 없는 책 같습니다.
또 저자도 신학자나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이기 때문에 그냥 사업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지극히 신앙적인 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과 세상의 삶은 별개라고 생각을 합니다.
성경은 실천할 수 없는 고상한 이론에 불과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사업을 경영하는 사람이라면 특별히 사람들이 다니기 좋아하는 좋은 회사를 만들려고 한다면 철저하게 성경말씀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성경말씀대로 회사를 경영해서 회사도 좋은 회사가 되었고 특별히 그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들도 행복한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 특별히 산상보훈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나 고상하여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실천할 수 없는 것이라고 포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실지로 이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게 된다면 정말로 행복한 삶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시고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실천해야 하겠다는 각오로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실천하심으로 여러분의 가정이 여러분의 회사가 또 우리 교회가 머물고 싶고 다니고 싶은 복된 곳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태복음 5장의 말씀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12절까지는 팔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13-16절까지는 세상의 빛과 소금된 우리 성도의 신분에 관한 말씀입니다.
17-48절까지는 율법에 관한 예수님의 견해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1-12절 말씀을 중심으로 팔복에 관한 말씀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미 말씀을 드린 대로 팔복은 여덟 가지의 복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한가지의 복입니다.
천국을 소유하는 것이 복이라는 말씀이고 그 천국에서 상을 받는 것이 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 살아야 하고 더 여유가 있는 사람은 천국에서 큰 상을 받기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성도들이 받을 가장 큰 복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천국을 소유한다는 것이 우리가 죽고 난 다음에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다음에 이루어질 영원한 천국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고 있고 그 삶 가운데서도 받는 복과 상급이 있습니다.
영원한 천국과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를 소유하고 거기서 상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이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우리의 가치관을 바꿔야 합니다.
팔복에는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마음의 상태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들은 하나같이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것들과는 반대되는 말씀들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 왔던 행복해지는 길과는 정 반대가 되는 말씀입니다.
진정한 복을 누리려면 우리가 생각해왔던 반대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을 받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의미를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든지 영적인 면에서 가난하든지 육신이 가난하든지 가난한 것은 복이 될 수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넉넉하고 부자가 복이 있는 것이지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으면 무시당하고 불행합니다.
이런 생각이 지금까지 우리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천국은 그런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지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천국을 그 복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많이 가지고 부자가 되어서 떵떵거리면서 살아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생각을 바꾸어보자는 것입니다.
꼭 많이 가지고 부자가 되는 것만이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가난한 것이 복이 됩니다.
많이 가진 것 보다는 많이 가지지 않은 것이 행복하기도 합니다.
움켜쥐지 말고 나누어주고 그래서 부족함을 느끼고 겸손해지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2)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애통하는 것이 무엇이 복이 되겠습니까?
웃고 즐겨야 행복하지 우는 사람에게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집안에 일이 잘 안 될라고 하면 아이들이 유난히 많이 웁니다.
아이들이 집안 분위기를 잘 아는 것 같습니다.
또 뭔가 정상적이지 않으니까 아이들이 불편해서 많이 울 것입니다.
우는 것이 행복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는 것 그것도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한 잔 마시고 떠들고 웃고 즐기며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웃고 즐기다가 보면 인생의 참된 의미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때로는 나 자신의 연약함을 붙들고 울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지은 죄 자신이 저지른 실수들을 붙잡고 후회하고 울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나를 지금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붙잡아 주시고 함께해 주시고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의 사랑 앞에 감격의 눈물도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더 큰 행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온유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자는 세상 살기가 힘이 듭니다.
마음 좋고 착한 사람이 대우를 받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좀 빡세고 거칠게 살아야 합니다.
온유하게 살면 사람들에게 이용이나 당하고 속아 넘어가기나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질어지도록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온유한 자가 참 좋습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많은 것이 천국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3층과 4층에 번호로 된 키가 있고 또 열쇠로 여는 자물쇠가 있습니다.
3층과 4층 열쇠를 따로 가지고 다니니까 번거롭고 귀찮아서 두 개가 다 열리는 마스터키를 만들어서 나누어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두 개를 다 열어야 하니까 복잡해서 그런지 말을 잘 듣지를 않습니다.
한번 열었다가 잠글 때는 아주 애를 먹습니다.
잘 안 되니까 장로님은 열쇠를 부러뜨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바꾸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한 것이 윤활유를 좀 발라 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윤활유를 사다가 조금 뿌렸더니 세상에 그렇게 부드럽고 쉽게 열리는 것을 몰라서 고생을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누가 그런 윤활유를 뿌려준다면 이런 빡빡한 삶이 참 부드러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윤활유가 온유한 마음입니다.
4)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애를 쓰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와 반대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법을 어기고 나만 편하게 살려고 합니다.
나에게 유익이 되는 일이면 불법이든 합법이든 상관이 없이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세상입니다.
교통법규도 어기고 쓰레기도 아무데나 버리고 공중도덕이나 예의도 지키지 않고 마음대로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규칙들이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나 한 사람 지키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지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규칙들을 잘 지킬 줄 아는 것이 복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좀 더 바르고 좀 더 모범적이고 좀 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은 정말 행복한 삶입니다.
5)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매정한 세상입니다.
동정심도 없고 불쌍히 여기지도 않습니다.
더더군다나 긍휼히 여기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손해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남에게 적용하는 것은 원칙대로입니다.
법대로 잘못한 사람은 벌을 받게 하고 손해를 입힌 사람은 배상을 하게하고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불쌍히 여길 줄 아는 마음 긍휼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참 행복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6)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진실 된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기가 참 힘이 듭니다.
나만 정직하고 마음이 깨끗하면 손해를 많이 봅니다.
거짓말을 해야 하고 남을 속여야 하고 내 거짓된 마음은 남에게 보여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많이 오염이 되어 있습니다.
내 스스로도 더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이 내 마음에다가 온갖 부정적인 것들 온갖 지저분한 것들을 쏟아 부어서 더 지저분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진실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면 참 행복합니다.
거짓이 없는 마음 깨끗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우리의 삶을 참 행복하게 해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7)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세상은 전쟁터입니다. 소리 없는 총성이 오가는 전쟁터라고 했습니다.
서로 경쟁해야 하고 서로 싸워서 이겨야 하고 진 사람은 고통을 당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서로 경쟁을 하고 싸움을 하는 한 진정한 평화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양보를 하고 누군가는 나보다 남을 더 잘 살게 해 주려고 하고 누군가가 자신을 희생하려고 할 때 이 세상은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8)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여기 의는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위해서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뭔가를 얻고 뭔가를 누리려고만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수고하고 희생하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서 박해를 받는 것이 복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된 사람들의 심성을 살펴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보편적인 생각들과는 역설적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면 불행해진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복이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복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께서 보상해주시는 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산상보훈의 말씀대로 살 때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 말씀대로 살면 반드시 나에게 피해가 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손해 보는 것을 주님께서 그냥 두시지 않으시고 보상을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스스로 노력을 해서 쟁취한 것들은 쉽게 또 없어져버립니다.
그리고 그 값어치가 별로 없습니다.
우리가 엄청 많은 노력을 해서 무엇을 성취한다고 해도 그것이 별 것 아닐 때가 많습니다.
밤잠을 안자고 공부를 해서 얻은 것이나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온갖 고생들을 하면서 모은 것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기도 합니다.
허무한 것들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것은 특별히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손해를 입는 것에 대해서 보상으로 주시는 것은 너무나 귀한 것이고 영원한 것입니다.
그 보상을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위로를 받을 것이다,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배부를 것이다,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을 볼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고 하늘에서 큰 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복들이 결국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사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보상으로 주시는 복들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를 알고 영원한 천국에서 큰 상을 받고 살게 될 것이며 이 세상에 사는 동안도 하나님의 보호하심 안에서 진정으로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가난하게 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보상을 해 주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난하게 살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지나치게 부자가 되어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해서는 안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세상에서 열심히 노력을 해서 부자도 되고 그 부로 좋은 일 선한 일도 많이 하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 될 때 오히려 가진 것을 잃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상을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나거나 잘 안돼서 문을 닫을 때 정말로 괴롭습니다.
직장을 다니다가 정리해고를 당하거나 실수를 해서 본의 아니게 실직을 하게 되면 참 괴롭습니다.
건강하게 살다가 불치의 병에 걸리거나 쇠약해지면 정말로 괴롭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 그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세월 따라 늙어가고 육신이 쇠약해지면 참으로 허무한 생각이 듭니다.
비단 이런 것뿐이겠습니까?
이 세상을 살다가 보면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좌절할 수밖에 없고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괴로움들을 어디 가서 해소를 할 수가 없습니다.
가슴에 안고 한이 되고 우울증이 되고 병들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가진 것들을 잃고 가난하게 되었을 때 우리 주님께서 보상을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가난해졌을 때 영원한 천국의 소망과 약속이 더 강하게 느끼게 해 주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는다고 해도 천국만 보상을 받는다면 무엇을 더 아까워하겠습니까?
영원한 생명 영원한 안식처 영원한 천국을 받게 된다는데 이 세상의 그 무엇이 우리를 섭섭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애통의 눈물을 흘릴 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해 주신다고 하면 우리의 눈물이 기쁨의 눈물이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외면해도 주님의 위로만 있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더욱 감사할 일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박해를 받게 될 때 우리에게 더 큰 상급으로 보상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당하는 박해는 무엇일까요
주일을 지킴으로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충성을 함으로 손해를 입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주님께 충성하다가 주님의 일에 봉사하다고 손해를 보는 것이 박해를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받은 은혜만 생각해도 당연히 성도가 해야 할 의무는 해야 하는 것이고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는 손해도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고 보상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에서 상급은 물론이거니와 이 세상에서도 우리에게 보상을 하십니다.
여러분의 주변을 보십시오.
교회를 중심으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하는 자들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사는지를 살펴보십시오.
자신에게 부요하면서 하나님께 대하여 가난한 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잘 살펴보십시오.
사람들은 계속해서 핑계만 댑니다.
바쁘다, 시간이 없다, 가난하다, 생활이 어렵다,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느냐, 그냥 교회만 와도 되지 않느냐, 이런 저런 핑계와 변명 속에 세월만 보냅니다.
그냥 이왕에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려고 한다면 다 내려놓고 말씀대로 한번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충성함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보상을 한번 기대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말씀은 역설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도저히 실천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한번 가치관을 바꿔보시기 바랍니다.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주님의 위로와 보상을 기대해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천국의 상급과 하나님의 위로와 보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