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20.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62)
본문: 마 7:22-23
제목: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 세상에서 사는 삶에 있어서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고 돈도 좀 잘 벌고 명예나 권세가 있는 사람이 되려면 많은 시험들을 거쳐야 합니다.
입학시험 입사시험 변호사나 의사가 되는 자격시험 진급시험 많은 시험들을 보고 합격을 해야 그런 좋은 지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런 시험이 없이 출세도 할 수 있고 존경받는 자리에 오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시험에 합격할 자신도 없고 도전할 용기도 없고 기회도 없어서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시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는 시험처럼 필기시험이나 실기시험이나 면접시험 같은 이런 형태는 아닐지라도 어떤 형태인지는 모르지만 합격 불합격 여부를 따지는 시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그런 시험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와서 따지는 사람들은 아마도 시험에 불합격한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많은 권능들을 행하였는데 왜 우리가 천국에 못 들어가느냐고 따지고 있는 것을 보니까 천국입국시험에 불합격을 한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도 천국 문 앞에까지 와서 못 들어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여 주여 하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천국에는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주님이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주여 주여 라고 부르기도 했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엄청난 일들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들을 통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일종의 시험이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불합격한 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무엇 때문에 불합격했는지를 살펴보고 대비책을 새워야 할 것입니다.
1.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오늘 본문 말씀은 “그 날에”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그 날”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는 그 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끝이 나고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모든 사람들은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예수님의 재림과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직접 말씀을 하셨고 사도들도 그렇게 증언을 했습니다.
마태복음 24:30절에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후서 3:8-10절에는 예수님의 재림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분명하게 확실하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말씀을 그렇게 심각하게 듣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 약속이 2천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의심을 하거나 방심을 하고 심각하게 생각하고 대비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세월이 지났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시간으로 보면 하루 이틀정도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날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비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도둑이 오는 것처럼 무방비 상태에서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우주적인 종말이 오지 않고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시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어차피 우리는 개인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되고 어느 날엔가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을 늘 준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갑자기 준비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생에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시험이 있다고 생각하고 늘 예상문제를 생각하면서 준비하고 사는 사람하고 시험이 있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준비하지 않고 사는 사람의 차이는 천지차이가 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험의 합격여부가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아주 중대한 것임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가 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세상을 살면서 시험에 떨어져서 비참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보아온 사람입니다.
제 자신도 목사가 되기까지 많은 시험을 본 사람입니다.
시험공부 신물이 나도록 해 봤던 사람입니다.
시험을 본 후 합격자와 불합격자의 차이가 어떤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시험은 언제나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4:37-39절에 예수님께서 그 때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기를 마치 노아홍수 심판 때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라고 했습니다.
노아홍수 때도 10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고 먹고 마시고 놀다가 홍수가 나서 다 멸망을 당할 때까지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42-44절에 합격자와 불합격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두 사람이 밭에 있는데 한 사람은 합격을 해서 예수님이 데려가고 한 사람은 불합격해서 버림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두 여자가 같이 맷돌질을 하고 있는데 한 사람은 합격하여 데리고 가고 한 사람은 불합격하여 버림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불합격 한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아무렇게나 살았겠습니까?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불합격한 것에 대해서 항의를 한다고 했습니다.
아예 예수님을 믿지 않았거나 교회에 다니지 않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와서 항의할 것도 없습니다.
여기 찾아 온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는 그래도 예수님을 믿었다고 생각을 했고 예수님 이름으로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착각을 하고 산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해를 하면서 살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가 들어가지 않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쩌다가 한두 명이라면 우리와 상관이 없겠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런 항의를 하고 있다면 우리도 그 중에 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따지러 온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를 천국에 들여보내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는데 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냈는데 왜 나를 몰라보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는데 왜 나를 모른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분명하게 확실하게 말씀을 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고 소자에게 물 한 그릇 주는 것 가지고도 칭찬을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상으로 주시는 분이신데 왜 이렇게 훌륭한 일을 많이 한 사람들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시는지를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해답은 23절 말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라고 하신 말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좋은 일들을 많이 했지만 주님께서 보실 때는 그것이 불법을 행한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 불법이 무엇을 말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불법이 무엇을 말씀하는 것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21절의 말씀에서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라고 하신 말씀과 연결시켜보면 불법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은 것을 불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세우실 때 그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고 싶으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은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지 않고 자기의 마음대로 선지자 노릇을 한 것이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실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행하기 위해서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이 그런 일을 행한 것이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을 행하게 하실 때는 그 권능 행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나타내시고자 하는 뜻이 있는데 그 뜻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권능을 행한 것이 불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것은 그것이 주님의 이름으로 했다고 해도 아무리 큰일이라고 해도 불법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22절 말씀에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선지자는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미리 알고 백성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서 성경을 기록하기도 하고 백성들에게 전하기도 했습니다.
15절의 거짓선지자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에스겔 13장에 기록된 거짓선지자들의 특징을 살펴보았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자기 마음대로 예언을 하는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거짓선지자는 자기의 이익만 챙기는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거짓선지자는 점을 치며 이루어지지 않는 헛된 것을 구하게 하는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거짓선지자는 잘못된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선지자들은 이렇게 노골적으로 거짓을 행하는 선지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만약에 자신들이 거짓선지자라는 것을 알았다면 감히 예수님 앞에 와서 따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거짓으로 선지자 노릇을 한 사람들이 어떻게 감히 예수님께 와서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얼굴을 들지 못하고 오히려 더 혼이 날까봐서 숨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떳떳하게 예수님께 나와서 항의를 하는 것으로 보아서 당사자들은 자신이 거짓선지자인 줄을 몰랐던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자신은 잘 한다고 했는데 예수님께서 오해를 하고 계시는 것으로 착각을 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목회를 하는 목사들 가운데 그런 착각을 하고 목회를 하는 목사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오늘날 많은 목사들이 하나님의 뜻과 관계가 없는 자기의 생각과 자기의 철학으로 세상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이 설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기록한 목적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선포를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 반대가 되는 말을 하면서도 그것을 설교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려고 하는데 오히려 그것과 반대되는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이 세상을 나그네처럼 살면서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며 살라고 하시지만 목사들은 이 세상을 본토처럼 살라고 설교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좁은 길로 가면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애를 쓰라고 하시지만 목사들은 넓은 길 넓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가난한 것이 복이고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불가능하다고 가르치지만 목사들은 어떻게 하든지 이 세상에서도 성공하고 부자가 되라고 가르칩니다.
이런 설교들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가 되고 이런 설교를 한 자는 천국에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외면을 받게 된다는 것을 그들이 알았다면 이런 설교를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을 부분적으로 알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설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잘못된 선생들에게 그렇게 배웠거나 주변의 잘못된 목사들의 설교를 비판 없이 받아 들였기 때문에 바르게 설교를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설교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고 생각 없이 그렇게 설교를 하면서 자기 자신은 설교를 잘 한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설교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지 않는 것을 조금도 알지 못하고 엄청나게 잘못된 불법을 행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설교하면 성도님들은 그래 목사들이 문제야 나는 선지자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고 선생도 되지 않았으니까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우리 한국교회의 성도들도 하나님의 뜻을 바로 전하지 않은 불법을 행하는 목사들과 공범이라고 생각합니다.
불법을 행하는 목사들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설교라고 하는데도 자기 기분에만 맞춰주면 아멘이라고 화답을 하고 그런 목사를 높여주고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목사들은 더 신이 나서 잘못된 설교를 합니다.
그것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인가를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냥 자기 기분에 맞고 재미만 있으면 좋아하고 그런 교회에 사람들이 몰려드니까 목사들이 다 그렇게 설교를 하면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설교를 반대로 말하는 설교를 좋다고 아멘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다 불법 선지자와 공범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는 자들도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가 없이 불법적으로 이적과 권능을 행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많은 귀신들을 쫓아내셨고 많은 권능들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줄 알게 하려고 그렇게 하셨고 우리 인간을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시켜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과 비슷한 이적들을 행하였습니다.
그것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오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증거하기 위한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과 관계가 없이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서 자신의 영리를 목적으로 주님의 권능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지 않고 또 사람들로 하여금 구주 예수님을 발견하고 믿게 하려는 목적으로 하지 않고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는 일들은 그 일이 아무리 기가 막히는 기적적인 일이라고 해도 그 일이 아무리 엄청난 일이라고 해도 우리 주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며 천국에 들어가는 일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불법을 행하는 일이며 우리 예수님께서 밝히 말씀하시기를 아주 정확하게 분명히 말씀을 하시기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천국에 가 봤더니 그 유명한 조 아무개 목사가 천국에 올 사람 명단에 없다 카더라. 그렇게 많은 능력을 일으킨 아무개 권사도 없다고 카더라 이런 출처가 불분면한 카더라는 이야기가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거기에 반대의사를 말하지 않고 맞아 아마 그럴 거야라고 맞장구를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자기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 다 눈에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3.내게서 떠나가라
이렇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에게 내린 예수님의 판결은 “내게서 떠나가라”입니다.
이 사람은 불법을 행하였으니까 사형에 처한다. 이 사람은 불법을 행하였으니까 지옥형벌에 처한다. 이런 판결이 아니고 떠나가라 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떠나라고 하는 말은 그런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에 한참 인기 있던 코미디언이 유행어를 하나 만들었는데 나이 드신 분들은 아마 기억이 나실 것입니다.
“지구를 떠나거라~.”라는 유행어였습니다.
사람보고 지구를 떠나라는 말은 어쩌란 말입니까? 죽으라는 말입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떠나라는 말은 영원한 죽음 영원한 형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떠난다는 말은 사탄에게 가라는 말이고 사탄에게 가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이고 사탄을 위해서 예비 된 지옥형벌로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나는 것을 쉽게 생각합니다.
교회를 떠나는 것을 쉽게 생각합니다.
기분 좋으면 좀 다니다가 기분 나쁘면 쉽게 끊어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떠나는 것이 이집에서 살기 싫으면 팔아서 저 집으로 이사 가는 그런 정도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떠나는 것은 영원한 죽음 영원한 지옥으로 가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를 떠나거나 예수님을 떠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고 예수님을 떠나라는 판결을 받아서도 안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 안에 붙어 있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좌우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날이 오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주적인 종말이 오고 있고 개인적인은 종말도 날마다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날에 불법을 행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항의를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일을 해도 위대한 일을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를 떠나라는 이 처분을 받으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멸망의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