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 7:17-19
제목 : 좋은 나무 아름다운 열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산상보훈의 말씀을 듣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산 위에 올라가셔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고 그 말씀의 내용이 너무나 보배로운 말씀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부분을 산상보훈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씀에는 우리 예수님의 성품이 그대로 들어 있고 하늘나라의 백성들이 본받고 살아야 할 귀한 말씀들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이 예수님의 성품들을 본받아야 하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라고 하면 이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들을 바르게 알고 지켜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와 같이”라는 말씀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바로 앞에 나와 있는 말씀들과 연관해서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앞에는 거짓선지자들을 조심하라는 교훈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도 거짓선지자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짓선지자나 거짓 선생들이 나는 거짓선지자다. 라고 명찰을 붙이고 다니면 조심을 해서 그들의 교훈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인데 명찰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양의 탈을 쓰고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나는 순한 양이고 나는 너희 편이라고 위장을 하고 나타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분간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신 또 하나의 방법이 열매를 보고 그 나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구별하는 것처럼 그 사람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보고 거짓선지자인지 참된 선지자인지를 구별하라는 것입니다.
가시나무나 엉겅퀴 같은 나무에서 포도나 무화과를 딸 수 없듯이 그런 사람의 삶의 목적이 나쁘면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라고 하셨습니다.
거짓선지자는 양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들은 가시나무나 엉겅퀴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지만 그런데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좋은 나무가 누구를 말하는지 아름다운 열매는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아보고 우리가 좋은 나무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열매라는 것은 우리 인생의 삶의 목적을 말씀하는 것이고 그 결과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무가 존재하는 목적은 열매를 맺는 것이고 나무가 열매를 맺었을 때 그 존재 목적을 달성했다고 말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왜 인생을 살아가는가 하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와서 아무렇게나 살다가 가는 허무한 인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열매도 그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열매도 있고 아름답지 못한 열매도 있을 것입니다.
선한 열매도 있고 때로는 악한 열매도 있을 것입니다.
가치 있는 열매도 있고 대로는 무가치한 열매도 있을 것입니다.
유익한 열매도 있고 무익한 열매도 있을 것입니다.
이왕이면 아름다운 열매 즉 선하고 가치 있는 열매 유익한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일 것입니다.
1.좋은 나무
오늘 본문 17절 말씀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 전제조건이 있는데 우선 나무가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무의 종류가 못된 나무라고 한다면 거기서 아름다운 열매를 딸 가능성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좋은 나무가 있고 못된 나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가시나무와 엉겅퀴가 있는가 하면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주와 형벌로 생겨난 가시나무와 엉겅퀴가 있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서 생겨난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나무는 우리 사람들을 비유로 말씀을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도 태어 날 때부터 좋은 나무와 같이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가시나 엉겅퀴처럼 저주받은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을 천국백성으로 선택을 받아서 태어나는 사람이 있고 저주받을 백성 버림받을 백성으로 태어나는 사람이 이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좋은 나무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백성으로 태어난 사람들이고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버림받은 저주받은 인생들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교회에 다니지 않고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되게 기분이 나빠합니다.
그런 게 어디 있느냐고 비웃습니다.
그런 억울한 일이 어디에 있느냐고 항의를 할 것입니다.
그 정도의 차별도 없이 교회에 다니겠습니까?
우리가 할 일없어서 그냥 취미삼아서 교회에 다니는 줄 아십니까?
마음이나 좀 편해 보겠다고 교회에 다니고 세상에서 성공해서 좀 더 잘 살아 보겠다고 교회에 다닙니까?
좀 착한 사람이 되어서 선한 일 좀 더 해서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이나 좀 받아 보려고 교회에 다닙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입니까?
시간 빼앗기지요, 물질도 희생 해야지요, 착한 마음 가지고 살면서 손해도 보고 피해도 입어야 하지요, 요즘같이 재미있는 세상에서 이런 수고와 희생을 감수하면서 교회에 오는 것은 겨우 그런 것들 때문이 아닙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고 만왕의 왕이 되시는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나를 선택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게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교회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교회들이 다 그렇겠지만 특별히 우리 교회에 나오시는 여러분들은 확실히 좋은 나무와 같이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아 이 세상에 태어난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나 이런 교회에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는 고신교단에 속한 교회입니다.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순교를 감옥에서 고난을 받던 성도들이 만든 교단입니다.
그래서 순교자의 피가 흐르는 교회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교단의 교회입니다.
특별히 여러분의 목사는 순교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순교자 양용근 목사님의 집안의 장손입니다.
순교자 집안의 장손이라고 해서 별 다를 것이야 있겠습니까?
특별히 그 피가 흐른다고 다를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이 다르고 목회관이 다릅니다.
목회를 하는 목적이 다르고 방법이 다릅니다.
성경말씀을 보는 눈이 다르고 설교가 다릅니다.
가는 길이 좁은 길이고 가는 목적지가 하나님의 나라 천국입니다.
저는 저 자신을 살펴보면서 실망을 할 때가 많습니다.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성질 도 좀 못됐고 머리도 월등하게 좋은 것도 아니고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좋은 생각이 나고 좋은 길로 가려고 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깊이 있게 깨닫게 되고 하는 것들을 보면 참 이상하다 어찌 나 같은 것의 머리에서 이런 지혜로운 것 선한 것들이 나올까?
우리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순교자의 후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고신 하면 사람들이 고리타분한 목사와 고리타분한 예배를 생각합니다.
기타도 못 치게 하고 늘 율법적인 설교나 하는 교단의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습니까?
전통 있는 보수주의 개혁주의 교단에 속한 교회이면서도 설교에는 늘 십자가의 복음이 들어 있고 예배와 찬송은 온갖 악기를 다 동원하면서 이렇게 기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또 찬양을 잘 하고 다소 감정적인 교회에서는 찬양만 하고 아무 일도 안 하고 찬양하고 나와서 삶은 엉망일 것이라고 오해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이웃도 사랑하기 위해서 그것도 입으로만 사람이 아니고 형식적으로만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복지시설을 해서 정말로 어려운 사람들 편에서 그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끔 길에서 커피나 먹을 것을 나누어 주면서 전도를 하는 교회를 보면 조금 마음이 답답합니다.
커피 한 잔 과자 한 봉지 가지고 사람들을 속여서 낚시나 하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그런 형식적인 사랑을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이렇게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에 다니는 여러분은 좋은 나무처럼 좋은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이 분명합니다.
아무나 이런 자리에 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여기에 좋은 교회를 세우시고 좋은 나무들을 심어주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 좋은 나무로 여기 심겨졌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부심을 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한 은혜를 베푸신 우리에게 특별한 열매도 기대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아름다운 열매
오늘 본문 18절 말씀에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는 반드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못된 나무에서 기대할 수 없기에 좋은 나무는 반드시 그 목적대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나무가 병들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좋은 나무라고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좋은 나무인데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할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포도는 포도인데 시고 먹지도 못할 포도를 맺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5장에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었도다....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 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사5:1-4)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고 지극정성으로 돌봤는데 열리기를 바른 좋은 포도는 열리지 않고 달지도 않고 맛도 없고 작은 들 포도를 맺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특별한 민족으로 선택을 하시고 특별히 그들을 사랑하시고 좋은 것으로 주셨는데 그 사랑을 받은 만큼 열매를 맺지 못하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사5:7)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사5:5-6)
오늘날 교회 내에도 이런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어 하나님이 자녀가 되게 하시고 좋은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해 주셨는데 도무지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그냥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20여 년간 같은 목소리로 은혜의 복음을 전했는데 이만하면 사람들이 그 은혜를 깨닫고 감격도 좀하고 좀 화끈하게 변할 것도 같은데 늘 제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실망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편으로 생각하면 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이 변하면 십중팔구는 나쁜 쪽으로 변하지 좋은 쪽으로 변하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기 때문에 나쁜 쪽으로 변하는 것보다 그 자리에라도 있는 것이 좋은 일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한번쯤은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그 나무가 병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나무에 좋은 영양분을 공급하면 반드시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나무인데도 불구하고 좋은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열매가 없다면 그 나무가 병들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충이 나무를 갉아 먹으면 충분한 영양분이 공급되지 못합니다.
영양분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면 그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가 없게 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영양분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날마다 공급이 잘 되어야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설교를 듣지 않는 사람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시들시들 말라 죽어 갈 뿐입니다.
좋은 설교를 듣기 위해서 여러분은 목사의 생활비를 대 주면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서 시간마다 설교를 듣습니다.
그런데 그런 설교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시간마다 조는 사람이나 시간마다 딴 생각하고 설교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어쩌다가 피곤하니까 한 번씩 졸리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복잡한 세상 살다가 보니까 교회까지 와서도 세상 걱정해야 하는 것 어찌하겠습니까?
직장 때문에 사업 때문에 한두 번씩 빠지는 것 어찌하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습관화 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자꾸 반복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해충 같은 사탄이 들어와서 여러분의 신앙을 갉아먹고 있다면 그것은 큰일입니다.
2)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실천할 때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법칙은 그렇게 어렵거나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하나님의 법칙의 대 강령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새벽기도에 나와라 기도를 여러 시간씩 해라 집을 팔아서 갖다 바쳐라 가정생활을 희생해라 헌신해라 그런 것 아닙니다.
주일날 이렇게 한번 나와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왕 왔으니까 입술만 달싹달싹하지 말고 박수를 쳐도 제대로 힘차게 성의 있게 치고 가슴이 벌렁벌렁하게 감격도 하고 눈물도 흘려보고 제대로 한번 예배를 드려보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실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을 주는 작은 일이라도 실천을 하시고 말 한 마디 눈 빛 하나 서로 배려해 주는 작은 마음 하나로 우리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작은 일 하나라도 실천하기 시작하면 여러분의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손도 까닥 안하고 남을 위해서 작은 희생이나 헌신이 없이 무슨 열매가 맺히겠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영혼이 병든 사람입니다.
더 불쌍한 사람은 자신이 병이 들었는데 그 병든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속은 암 덩이로 썩어가고 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죽어가는 사람은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어디 가서 자랑이나 하고 다니는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나무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셨는데 평생을 살아도 열매하나 없이 인생을 마치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열매를 방해하는 해충을 지금이라도 잡아 죽이고 건강을 되찾으시기 바랍니다.
3.열매 없는 나무의 최후
본문 19절 말씀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원래 가시나무나 엉겅퀴는 불에 태워버리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저주의 대상으로 버림받은 인생으로 태어난 사람은 벌을 받고 멸망을 당하고 지옥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문제는 좋은 나무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교회 안에서 살았는데 열매를 맺지 못한 것 때문에 세상 사람들처럼 멸망을 당하고 지옥에 간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습니까?
교회에 안 다닌 사람은 할 말이라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몰라서 그랬습니다. 알고도 그렇게 살겠습니까? 라고 변명이라도 할 것입니다.
얄궂은 교회에 다녔으면 진리라도 몰랐으면 목사 때문에 그랬다고 핑계라도 댈 것입니다.
그런데 좋은 교회 안에서 좋은 환경 속에서 알만한 것은 다 알고도 열매가 없다면 뭐라고 변명할 여지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열매가 좀 없다고 지옥에 간다는 것은 교리적으로는 설명하기가 곤란한 대목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분명히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진다고 했습니다.
그 나무가 가시나무든 엉겅퀴든 그 나무가 비록 좋은 나무라고 할지라도 아름다운 열매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가 잘 하든지 못하든지 언제나 변함이 없으신 우리 하나님께서
열매가 없다고 사랑하는 자녀를 사정없이 불에 던져버리실까요?
한 가지 가능성은 그 사람이 좋은 나무처럼 위장을 하고 있었지만 알곡이 아닌 가라지였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남들이 가니까 그냥 한 번 따라와 본 사람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신앙인 같지만 속으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병들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정신을 차리게 하는 훈계의 말씀일수도 있습니다.
열매가 없음을 보고 병든 자임을 알고 병을 고쳐서 열매를 맺으라는 마지막 경고의 말씀일수도 있습니다.
그 경고의 말씀도 듣지 못하고 계속 그대로 있는 사람이라면 가라지일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좋은 나무와 같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런 우리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꼭 좋은 열매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