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 7:6
제목 :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지난주에는 비판을 하지 말라는 주제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진리에 대해서는 잘 살펴보고 잘 판단을 하고 잘못된 것은 비판을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삶에 있어서는 특별히 교회 안에 있는 우리 성도들끼리는 잘못을 보고 비판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좋은 점을 보고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을 비판하기 보다는 나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고 내 눈에 있는 들보를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교훈은 대부분 서로 이해하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대접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돌려대는 것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예수님의 대표적인 가르침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우리 성도들은 늘 모든 사람에게 사랑으로 대해야 하고 성질을 내서도 안 되고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해서 자기들은 함부로 대하고 우리는 늘 친절하게 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제가 뭘 좀 함부로 하거나 내 마음대로 하면 목사가 돼가지고 그럴 수가 있느냐고 비아냥거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손해를 보고 늘 남을 잘 되게 해 주고 은혜를 베풀고 대접을 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오늘 본문은 아주 특별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고 하십니다.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무에게나 은혜를 베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소중한 것을 개나 돼지 같은 사람에게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도는 예수님의 최후의 명령이라고 해서 교회마다 성도마다 전도하는 것을 제일로 여깁니다.
전도하면서 많이 쓰는 용어 중에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향한 멋진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물론 그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고 또 누가 이런 복음을 받을 사람인 줄을 우리가 모르니까 아무나 붙잡고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라고 말을 하지만 거기에는 단서가 붙었다는 것을 우리가 다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그 택한 백성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는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기도에서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는가를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2절)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6절).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6절)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대상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그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 백성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에게는 그 거룩함이 있고 진주와 같은 보배로운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개나 돼지 같은 사람에게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십자가의 복음 이 믿음이 주는 영원한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거룩한 것과 진주
오늘 본문 말씀에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거룩한 것이 무엇인지, 진주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거룩이라는 말의 뜻은 “분리”, “차단”,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아주 다른, 전적으로 구별된 것을 말하며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전적으로 분리되고 차단된 것을 말합니다.
원래 거룩이라는 단어는 우리 하나님께만 해당이 되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본성에만 들어 있는 것으로 깨끗한 것, 정결한 것, 의로운 것, 고귀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본성은 죄로 오염이 되어서 지저분하고 죄로 얼룩져 있고 천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와는 엄청나게 다른 깨끗하신 분이심을 나타낼 때 거룩하시다. 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것들을 거룩하다고 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과 관련이 되어서 거룩하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 교회당을 구약시대 때는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곳이기 때문에 그곳을 거룩한 전 즉 성전이라고 했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쓰는 모든 것들을 성물 즉 거룩한 물건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거룩한 무리 즉, 성도라고 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러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개에게 주지 말라고 한 거룩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직접 말씀을 하지 않으셔서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연관이 된 거룩한 신분인 성도의 자리를 아무에게나 주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를 합니다.
교회에 오면 누구나 다 성도님, 성도님 하고 또 성도는 직분이 없는 평신도를 말할 때 쓰기 때문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성도라는 신분만큼 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이 성도는 아무나 될 수 없는 신분이기 때문입니다.
학교를 다니거나 훈련을 받거나 혹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그런 지위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주어지는 신분입니다.
이런 귀한 신분을 아무에게나, 우리가 주는 것처럼,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처럼 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성령님께서 그 속에서 역사하시고 그 역사하심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거룩함을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아무에게나 줄 수 있는 것처럼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진주라는 말도 예수님께서 직접 설명을 하시지 않으셔서 무엇을 말씀하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복음이나, 하나님의 말씀이나, 진리를 말씀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의 천국비유에서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 13:45,46)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진주란 천국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사람이 되고 천국백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아주 귀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알고 그 복음에서 말씀하고 있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진리를 모릅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을 알지 못합니다.
이 진주보다 더 귀한 것 이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이 귀한 것을 잘 모릅니다.
심지어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도 이 귀한 진주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귀한 것은 놓치고 부스러기로 받는 이 세상의 축복들만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진주보다 더 귀한 십자가의 복음으로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거룩함과 이 진주를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이 거룩함과 진주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지를 안다면 에 세상에서 어떠한 고통과 괴로움이 온다고 해도 염려하거나 근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지를 안다면 이 세상의 일을 가지고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미 가진 이 하나님의 백성 거룩한 무리라는 신분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른 것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재난의 날을 만날 때에도 이 거룩함과 진주, 즉 이 보화만 가지고 있으면 뭘 더 부러워할 것이 없으며 뭘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아더 핑크 목사님은 이 본문을 설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건강과 재산 그리고 친구와 명성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보화는 남는다.”
“이 보화는 가장 어두운 밤을 밝히는 등불이다.”
“이 보화는 가장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위로를 준다.”
“이 보화 때문에 순례의 길에서도 찬송을 부를 수 있다.”
“이 보화를 가지고 있는 한 어떤 기독교인도 가난하거나 부족함이 없다.”
여러분은 이 거룩함과 진주를 다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거룩한 무리 성도라는 귀한 신분을 다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 진주보다 귀한 십자가의 복음을 이미 다 가지고 계시고 그 복음대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들이 다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위대한 존재다. 나는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께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2. 개와 돼지
본문에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라고 하셨는데 여기 개와 돼지는 누구를 말씀하는 것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개와 돼지는 정말 개와 돼지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개와 같은 사람 돼지와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개에게 거룩한 신분을 부여합니다.
개에게 사람의 아들딸이라는 지위를 부여하고 스스로 개 엄마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런 것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나 돼지에게 이런 귀한 신분을 주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람인데 개나 돼지처럼 행동하는 사람에게 이런 귀한 것을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개나 돼지를 말할 때 동물 중에서도 부정한 동물로 분류합니다.
그래서 개나 돼지는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지 못하는 짐승이고 또 먹을 수 없는 짐승으로 분류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고기와 돼지고기를 제일 맛있게 잘 먹지만 사실 성경적으로 보면 매우 불결한 짐승입니다.
빌립보서 3장에는 그런 개와 같은 사람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빌3:2)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람에 대해서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8,19)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을 개와 같은 사람, 행악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먹고 사는 것을 우상으로 섬기고 이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율법이나 선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거나 아예 구원 같은 것을 생각하지도 못하는 사람은 개 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사는 사람을 개 같은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제일인줄 알고 영원한 세상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관심도 없이 사는 사람을 개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에는 개나 돼지 같은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0-22)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고 세상의 죄에서 그 더러움에서 피해서 교회에 다니다가 그 후에 다시 세상으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알고 그 복음에서 말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그 믿음의 소중함을 알고 믿음을 고백하고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이 그 생활을 집어치우고 다시 세상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복음을 알지 못한 것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주보다 더 귀한 진리를 알고 거룩한 신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다시 세상으로 가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마치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로 미루어보면 개나 돼지는 전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복음을 우리가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고 교회에 다녀보기도 한 사람이면서 십자가의 복음을 부인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진리에 대해서 들었지만 십자가의 복음에 대해서 들었지만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에 대해서 들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세상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세상의 축복을 위해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땅의 일만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날 대신 십자가에 죽어주신 예수님의 희생에 감사하지 못하고 감격하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 은혜를 안다면 그로 인해서 우리가 받은 귀한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안다면 감사할 것 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고 합니다.
교회에 다니다가 복을 받은 사람들이 이제 더 받을 것이 없어서 떠납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주시는 그 귀한 것을 알지 못하고 신앙의 진수를 알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만 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나 왕년에 교회에 다녀 본 사람이야 나 집사였어, 나 장로였어, 심지어 나 목사였어, 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의 단점 나쁜 점들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목사 때문에 장로 때문에 교회 다니는 것 그만 두었다고 핑계를 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개와 같은 사람 돼지와 같은 사람입니다.
개가 그 토했던 것에 다시 돌아가고 돼지가 그 씻었다가 더러운 웅덩이에 다시 돌아가는 것과 같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소중한 것을 주어도 그것이 소중한 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뭐가 못줘서 아쉬워하는 사람들처럼 받아달라고 사정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귀하게 여기지 못하는 개나 돼지 같은 사람들에게 이 귀한 복음을 던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3.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오늘 본문 말씀에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라고 했습니다.
개나 돼지는 앞에서 살펴본 대로 좋은 것을 주어도 그것의 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전혀 분별력이 없는 짐승입니다.
개나 돼지 앞에는 변이라는 별명이 붙습니다. 변견 변 돼지라고 부릅니다. 왜 그런지 모르시지요?
옛날에 시골에서 아이를 키우는 집에는 이 변견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응가를 하면 엄마가 개를 부릅니다. 그러면 끝입니다.
제주도에만 변 돼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골에도 있었습니다.
위에서 사람이 볼일을 보면 밑에서 변 돼지가 다 처리합니다.
이렇게 무엇이 무엇인지 분별을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것을 주어도 별 볼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좋은 것을 발로 짓밟습니다.
그래서 귀한 것을 아주 지저분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흠집을 내고 더럽게 만들어서 그 가치를 흐려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이켜서 그 좋은 것을 준 우리를 물어뜯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은혜에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그것을 준 사람을 오히려 공격을 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좋은 일을 하려고 하다고 오히려 상처를 받고 다칠 수가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주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십자가의 복음 천국복음을 전하다가 사람들에게 많은 핀잔을 받는 사람입니다.
20여 년 동안 한결 같이 이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했는데도 누구하나 알아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성도들이 몰려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칭찬을 해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동료목사들도 어떤 사람은 제가 하는 일을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처럼 복음을 전하지 않는 목사들과 말싸움도 하고 따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무나 이 복음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이 복음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알아주든 몰라주든 사람들이 몰려오건 떠나가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귀한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거룩한 백성입니다.
우리는 진주보다 더 귀한 십자가의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귀한 것을 아무렇게나 아무에게나 던져주지 말라고 하신 뜻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소중하게 귀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