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18.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42)
본문 : 마 6:16-18
제목 : 은밀한 중에 보시고 갚으시는 하나님.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마태복음 6장 1절에서 18절에는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주 중요한 세 가지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구제와 기도와 금식 이 세 가지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구제와 기도와 금식은 아주 귀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구제는 참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기도가 참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가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금식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하고 귀한 것에는 언제나 가짜가 있기 마련입니다.
명품에 짝퉁이 있는 것처럼 좋은 것에는 늘 비슷하게는 생겼지만 전혀 아닌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잘못된 것에 대해서 공통적으로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외식하는 자들처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란 말은 배우처럼 연기를 하는 자나 위선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그런 것처럼 거짓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제를 할 때에도 외식하는 자들처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6:2)라고 했습니다.
구제할 때 외식하는 자들처럼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려고 나팔을 불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에도 외식하는 자들처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6:5)라고 했습니다.
금식을 할 때에도 외식하는 자들처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6:16)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공통적으로 하신 말씀이 있는데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구제나 기도나 금식을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해야 하고 그러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금식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을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금식을 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금식은 우리에게 필요하고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금식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나 형식적으로 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금식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외형적으로 흉내만 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금식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이 두 가지에 대해서 염려한 것을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금식의 유익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금식의 필요성을 가볍게 여기며 심지어는 금식은 전혀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금식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미신적인 행위로 타락을 해버리고 만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이 두 가지의 극단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금식은 매우 유익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왜 금식을 하는지를 바르게 알고 외식적으로 흉내나 내는 금식이 아닌 참된 금식을 해야 할 것입니다.
금식을 할 때 외식하는 자들처럼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고 갚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금식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금식이 무엇인지 왜 하는 것인지를 바르게 이해를 함으로서 금식을 바르게 하심으로 영적 유익을 얻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여러 가지 경우의 금식들
구약시대의 금식들은 주로 죄의 회개를 위한 금식이었습니다.
잘못을 해서 전쟁에 패했거나 기근이나 전염병이 돌았을 때 민족적으로 회개해야 할 때 주로 금식을 선포하고 함께 금식을 했습니다.
1)속죄일의 금식
레위기 23장에는 속죄일에 대한 규례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성회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어떤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레23:27-28)라고 했습니다.
유대 종교력으로 7월 10일에 맞이하는 속죄일은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 자신과 이스라엘 모든 백성의 죄를 속하고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를 성결케 하는 날입니다.
이 날은 모든 사소한 노동까지 일절 금지되었으며 스스로 괴롭게 하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괴롭게 하며”에서 '괴롭게 하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낮추다', '억제하다'란 뜻에서 유래한 말로, 곧 하나님 앞에서 금식하며 회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2)여호사밧의 금식
역대하 20장에 유대왕 여호사밧이 금식을 선포하고 전쟁에 승리한 이야기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대하 20:3) 라고 했습니다.
모압과 암몬 그리고 마온 사람들이 동맹하여 유다를 공격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유대 왕이었던 여호사밧이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을 때 적군들이 자기들 스스로 쳐서 죽이고 자멸을 해 버려서 쉽게 전쟁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2)에스더
“죽으면 죽으리이다.”로 유명한 에스더의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사왕 아하수에로의 부하 하만의 음모로 유다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을 때 당시 유대 사람으로 왕비가 된 에스더와 그의 사촌오빠인 모르드개와 함께 그곳에 살던 온 유다인들을 모으고 금식을 선포하고 기적적으로 유다인들을 구원한 이야기가 이렇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에4:15-17) 라고 했습니다.
3)요나의 니느웨성 사람들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욘3:4-6)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니느웨성에 가서 외치자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왕을 포함한 모든 백성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 성의 멸망을 유보하셨던 것을 봅니다.
4)선지자 안나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눅2:36-38) 라고 했습니다.
안나라고 하는 여자 선지자가 결혼 7년 만에 남편이 죽고 즉시 성전에 들어가서 84세까지 봉사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마도 약속하신 메시야를 주야로 금식을 하면서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그 금식과 기도가 응답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5)안디옥 교회
사도행전 13장에는 안디옥교회에서 바나바와 바울을 안수하여 선교사로 파송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13:2-3)라고 했습니다.
금식했을 때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선교사 파송을 명령하셨고 그 명령에 다라 안수를 해서 파송할 때도 금식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국가적으로 민족적으로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금식하면서 기도를 했고 거기에 대해서 대부분 응답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리거나 회개를 촉구하거나 선교사를 파송하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금식을 했습니다.
또 모세나 다윗이나 다니엘 같은 사람들이 공적인 일이나 사적인 일로 금식을 한 일들도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일일이 소개하지 못합니다.
금식은 중요한 것이고 필요한 것이며 유익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국가가 어려움을 당할 때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 그리고 개인이 어려움을 당할 때 금식하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소중한 일을 할 때 또 나 자신의 영적인 문제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은 좋은 일일 것입니다.
2.금식의 방법
금식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음식과 음료를 절제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모든 금식에 건강을 손상시키고 몸을 해칠 정도로 절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의 금식은 “세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단10:3)라는 말씀처럼 좋은 떡이나 고기나 포도주를 입에 대지 않고 빈약한 음식을 먹으면서 지내는 것일 금식의 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경우처럼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는 금식도 금식의 한 가지 방법이기는 하겠지만 항상 그렇게 단식을 하거나 물만 마시고 음식은 먹지 않는 것만이 금식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금식은 무엇 무엇만 먹어야 한다거나 최소한 며칠 이상은 해야 한다거나 이런 규정은 없습니다.
영적인 것을 위해서 육체의 즐거움을 금하는 것이라면 금식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잘못을 살펴보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으로 세상의 즐거움을 제한하는 것을 금식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술을 먹는 것 담배를 피우는 것이 신앙생활 즉 영적인 생활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을 금하는 것도 금식의 한 종류라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술이나 담배가 죄라고 규정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술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하는데 방해가 되고 담배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신앙을 위해서 금주 금연 하는 것도 금식의 하나일 것입니다.
내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술을 금식해야지 내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담배를 금식해야지 라고 마음먹고 실천을 하시는 것이 일종의 금식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텔레비전 보는 것을 좋아해서 시간만 있으면 텔레비전을 보는데 가만히 생각을 하니까 텔레비전 보는 것에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는 것 같아서 텔레비전 보는 것을 금식하기로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으로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일 좋은 일에 시간을 더 쓸 수 있게 했다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이런 금식들을 많이 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즐거움을 위하는 일들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고 좋은 일을 하는 데에 시간을 내지 못합니다.
오락도 좀 금식을 하고 컴퓨터도 좀 금식을 하고 영화 관람이나 텔레비전 보는 것도 좀 금식을 하고 이것저것 맛있는 것 많이 먹는 것도 금식을 하고 취미생활도 좀 금식을 하고 그래야 좋은 일에 시간을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금식은 단순히 무엇을 먹지 않고 절제하는 것만으로 금식이 되지 않습니다.
왜 금식을 하는지를 바르게 알고 그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하고 거기 따른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 58장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이 어떤 금식인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금식을 하면서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시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시나이까”(사58:3)라고 했습니다.
금식까지 하면서 자신을 괴롭게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어찌해서 하나님은 들은 척도 하시지 않으시고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느냐고 원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불평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그들의 금식이 잘못된 금식이라는 것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 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 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 될 날이라 하겠느냐”(사58:3-5)
금식을 한다는 사람이 오락을 하고 논쟁을 하고 다투며 주먹으로 치고받고 하는데 그것을 어찌 금식이라고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고 응답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응답을 바로 받기 위해서 금식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하면서 밥만 굶는다고 그것을 금식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58:6-7)라고 했습니다.
금식이란 음식을 먹지 않고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금식은 자신을 포기하는 것인데 자신의 권리를 다 챙기고 그것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권리를 착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결박을 풀러주고, 멍에의 줄을 끌러주고,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고, 빈민이나 헐벗은 자에게 먹이고 입히고, 친인척이 도와달라고 하는데 숨지 말고 도와주면서 금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욕심은 잔뜩 있어가지고 자기만 위해서 돈을 모으고 창고에 재어놓고 몇 끼 굶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시고 그런 금식을 금식이라고 인정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그 마음을 그대로 두고 사십일을 금식한다고 해도 그것을 금식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금식을 하고 나서도 자기의 잘못은 조금도 회개하지 않고 무슨 신령한 은사를 받고 나온 사람처럼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하고 자기 자신의 생각을 더 강하게 주장합니다.
금식이 무엇인지 기초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가 정말로 바른 금식을 했다면 더 겸손해져야 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더 잘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3.은밀한 중에 보시고 갚으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 말씀에 금식할 때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면서 그 이유를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서 보시고 은밀한 중에서 갚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금식을 할 때 표를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하나님만 알게 금식을 하라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제가 40일 금식기도에 들어갔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라고 말합니다.
3일이나 일주일 금식하는 사람도 어떻게 하면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서 칭찬을 좀 받을까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말은 하지 않지만 핼쑥한 얼굴로 힘이 없는 모습으로 은근히 금식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도 금식을 하면서 슬픈 기색을 하고 얼굴을 흉하게 해 가지고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금식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고 깨끗하게 아무 표가 나지 않도록 해서 다니라는 것입니다.
금식을 하는 사람인지 세끼 다 먹고 다니는 사람인지 잘 모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여서 사람에게 칭찬을 받은 사람은 그 사람에게 받는 칭찬으로 끝이 난다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칭찬받으려고 사람 보는 앞에서 금식하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으면 이미 그 금식에 관한 상은 없어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 모르게 은밀하게 하나님만 아시도록 금식을 한 사람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 금식에 대한 것을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금식을 통한 기도에 응답을 해 주시거나 하나님과 더 가까이하려고 하는 마음에 대해 보상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구제를 할 때에도 은밀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시고
기도를 할 때에도 은밀한 것을 좋아하십니다.
금식을 할 때에도 은밀하게 하라고 하시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은밀하게 다 갚아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람인지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것은 받을 때뿐이고 별 의미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습니까?
그냥 말로만 칭찬을 받을 뿐이지 실속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인정을 해 주시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상을 해 주시면 시시한 보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 영원한 사랑, 가장 귀한 것으로 보상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것들에 너무나 취해서 살고 있습니다.
가끔은 세상의 것들을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서 절제하시고 끊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한걸음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사람의 눈에 보이려고 하지 말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 된 마음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