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4. 광성교회 성례식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절기1108)
본문 : 고후 5:18-21
제목 : 하나님과 화목 하라.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들은 우리 하나님을 매우 엄격하시고 죄를 미워하시고 죄를 지은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내리시는 공의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우리 하나님을 사랑이 많으시고 관대하시고 자비로우신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우리교회 성도님들은 아마도 우리 하나님이 사랑이 많으시고 너그러우신 하나님으로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그동안 제가 사랑의 하나님에 대해서 더 많이 소개를 했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보면 우리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만 풍부하신 분은 아니십니다.
아주 엄격하고 공정한 정의로움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죄는 절대로 용납을 하시지 않으시고 죄를 범한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많은 부분에서 죄에 대해서 엄격하신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부 몇 구절만 소개를 합니다.
“거짓 일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출23:7)
악인을 의롭다고 하시지 않으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악인은 악인으로 정죄하고 벌을 내리신다는 말씀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
육신의 생각은 늘 죄에 속해 있습니다.
그 육신의 생각 즉 죄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시7:11-12)
우리 인간의 죄에 대해서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며 회개하지 않는 자를 처벌하시기 위해서 칼을 갈고 계시는 분이시며 활을 이미 당겨서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엄하신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 용서의 하나님으로 만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화해를 하는 것입니다.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된 우리 인생들이 어떻게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되는가를 설명해 주고 그 길로 인도하는 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 화목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고 어떻게 화목할 수 있는 가도 말씀을 해 주시고 하나님과 화목한 자가 되라고 하시는 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하나님과 더욱 화목한 자들이 되시고 또 서로 화목을 이루는 귀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화목을 원하시는 하나님
18절 말씀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습니다.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것들, 모든 질서들, 모든 진리들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오늘 본문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하시는 것은 앞 17절의 말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라고 하신 말씀을 볼 때 우리 성도들이 구원을 받아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다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셨기 때문에 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싫어합니다.
사실은 잘 생각해 보면 잘 살펴보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연 만물이 하나님이 계심을 증거하고 자기 속에 있는 양심이 증거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하나님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 라고 변명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없다고 고함을 지르고 반대를 하는 것은 바르게 살지 못하는 것을 꾸짖으시고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을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밥 해주지요, 옷 사 입히고 더러워지면 빨래해주지요, 학비 대주지요 행복하게 살라고 기도해 주지요 그런데 자녀들은 부모님을 싫어하고 틈만 있으면 탈출해서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합니다.
혜택을 받는 것보다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지처럼 살아도 내 맘대로 살고 싶은 것이 인생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해서도 그럽니다.
복 받아서 잘 살기 싫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 그런 것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내일 죽어도 오늘은 자유롭게 맘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내일이 무슨 소용이며 나중에 출세가 무슨 소용이며 영원한 나라가 무슨 소용이냐는 것입니다. 오늘 지금 내 맘대로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 스스로는 하나님께 나아오지도 않습니다.
또 막상 인생들이 자신의 죄악을 알고 하나님께로 나아오고자 해도 인간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만들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선행을 해서 착한 사람이 돼서 하나님을 한번 만나보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율법을 지키고 고행을 해서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아서 하나님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도 나올 수도 없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기 위해서 먼저 일을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 손을 내미시고 우리와 화해를 청해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 하나님을 만날만한 때에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셨을 때에 하나님께서 화목하자고 하실 때에 우리가 얼른 손을 내 밀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지내게 된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바르게 아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에 대해서 감격하시고 감사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2.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하게 하심
본문 19절 말씀에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화목을 하자고 하시면서 그 화목 하는 길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하도록 해 주셨습니다.
본문 21절에도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잘 아시는 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 죄 대신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가 깨끗하게 용서함을 받았고 의로운 사람으로 대우를 받아 죄를 싫어하시고 미워하시고 원수와 같이 여기시는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성찬예식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우리 대신 죽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게 될 떡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고 우리가 마시게 될 잔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 즉 의로운 사람이 되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하는 것입니다.
1)대속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케 되었다는 말을 대속이라는 말로도 씁니다.
대속이란 그리스도가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에 대한 징벌을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의 죄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징계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을 의로운 자로 여기실 수 있게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복종을 마치 우리들이 복종한 것처럼 인정하실 수 있게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믿는 자들의 죄를 위한 대가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인 우리들을 대신하여 심판대 앞에 서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인 우리들의 죄책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인 우리들을 대신하여 징벌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의 치욕, 채찍질을 당하심, 못 박히심, 하나님의 중한 진노를 온몸으로 감당하심이 우리들을 위해서 우리들을 대신해서 당하셨습니다.
그 대속으로 우리의 죄가 사함 받게 해 주셨습니다.
2)전가
앞서 인용한 21절의 말씀은 전가라는 말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했습니다.
전가한다는 말은 법률적으로 “그렇게 여긴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죄책을 전가한다는 것은 그 죄책을 그가 담당하는 것으로 할당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의를 전가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의롭다고 여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인들의 죄책이 그리스도께 전가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조금도 죄에 오염이 되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단지 하나님의 법정 앞에서 죄를 지은 것으로 여김을 받으셨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이라는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죄인이 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죄가 전가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은 죄책이 그리스도께 전가되었다는 말씀입니다.
3)칭의
앞서 인용한 21절의 말씀은 죄인이 어떻게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어려운 문제에도 답변을 제공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하신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의”는 칭의를 가리키는 것으로 주석을 합니다.
죄인의 죄책이 그리스도께 전가된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가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책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실지로 악해지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께 전가되어서 악한 자처럼 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실제로 완전하게 의로운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마치 우리의 의인 것처럼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할 때 실지로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물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의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의로운 사람처럼 인정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켜주셔서 실지로 의롭지는 못하지만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비록 어리석고 모자라고 죄에 오염이 되어 있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보시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켜서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해 주십니다.
칭의를 얻는 유일한 조건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더 정확하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이 칭의를 얻는 유일한 조건입니다.
무슨 공로를 세운다고 해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종교적 의식도 의롭다함을 얻는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경건치 않는 자를 의롭게 여김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믿음에는 행함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믿음생활을 잘 하는 것이 칭의를 얻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이란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것을 신뢰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를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단순한 마음으로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진실 되게 사랑하고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대속, 전가, 칭의라는 이런 귀한 것들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와 화목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같은 죄인들에게 하나님 같이 너무나 거룩하고 존귀한 분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3.화목하게 하는 자들이 되라
우리는 이런 귀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 화목의 중요성을 늘 마음에 새기면서 더욱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면서 하나님과 가까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과 화목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18절 말씀 하반 절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19절 말씀 하반 절에는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했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여기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사람이나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받은 사람은 일차적으로 바울과 사도들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그 시대의 모든 성도들과 또 오늘날의 모든 성도들도 같은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무시하고 오히려 성도들과 하나님 사이를 더 멀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다는 명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보다 사람의 공로를 내세우게 만들고 있습니다.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무서운 하나님을 소개하여 무거운 마음으로 살게 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신 하나님을 소개하지 않고 지금도 몽둥이를 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두려워 떨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냥 오라고 하십니다.
그냥 와서 값도 없이 그냥 은혜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믿음만 가지면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해 주시고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돈 벌어서 오려는 사람들은 참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착한 사람이 되어서 오려는 사람들은 바보 같은 사람들입니다.
뭔가 선한 공로를 많이 세우고 오려는 사람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대신 지시면서 우리의 죄를 전가 받으시고 그 완전한 순종을 우리의 의로 여김을 받도록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에 그 이상 아무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길은 없고 다만 유일한 길이 이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교회는 이 화목의 복음을 전하는 곳입니다.
목사는 이 화목의 복음을 전하는 직분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도 함께 이 화목의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화목케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온 세상에 전해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사람들은 성도들 간에도 화목을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우리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는 곳에는 어디든지 하나님과의 화목 서로간의 화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성찬예식을 거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이 떡은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의 몸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이 잔은 우리를 위해 흘려주신 예수님의 보혈입니다.
이 살과 이 피를 믿는 믿음이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담을 허물고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살게 해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감격함으로 감사함으로 떡과 잔을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