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8.2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59)
본문 : 롬 14:13-15
제목 :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들 

성경말씀 그 어느 곳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 가 없을 정도로 다 필요하고 중요한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는 귀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중에도 아주 귀한 말씀 한 구절이 소개되어 있는데 그 말씀은 15절의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 자신이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형벌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 아주 소중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업차 다른 도시를 여행하던 어떤 교인이 한 도시의 커다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답니다. 
예배가 끝나자 그는 목사에게 오늘의 예배와 설교가 매우 훌륭했었노라고 말하고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그렇지만 목사님이 만일 제가 고용하고 있는 세일즈맨이라면 저는 목사님을 해고할 것입니다. 목사님의 표정, 목소리, 몸짓이라든가 기도, 성경 봉독, 설교의 논리 등은 저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할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또 목사님의 설교는 크게 감동시켜 그 속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목사님은 제게 목사님의 설교하신 것에는 중심이 되는 핵심이 강조되어 있지 않습니다.
왜 설교를 하는지 그 목적을 잊어버리신 것 같습니다.
제가하고 있는 사업과 같은 경우 중요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결국에는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오늘날 많은 교회의 설교가 또 많은 성도들이 신앙의 핵심을 놓쳐 버리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붙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신앙의 핵심을 제처 두고 쓸데없는 것을 붙잡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뚝 솟아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여 죽어 주셨다는 것이 우리가 믿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그 신앙의 핵심은 간곳없고 마치 우리가 윤리나 도덕이나 실천하려고 모인 사람들처럼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내에 좀 오래 교회에 다니고 자칭 신앙이 좀 좋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그런 의식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남들처럼 주일을 잘 지키지 않은 적도 없고, 술이나 담배를 피운 적도 없고, 남에게 피해를 입힌 일도 없고 바르고 정직하게 산다는 것을 자랑합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그런 윤리적이나 종교적인 잣대를 가지고 남을 비평하기를 잘합니다.

아이고 뭐 저런 사람이 교인이라고 교회에 다니나 한심하다 
저렇게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흠이 많은 사람이 뻔뻔스럽게 교회에 잘도 다닌다.
교회에 다니려고 하면 행실을 올바르게 해야지 그렇게 살면서 무슨 천국타령이냐 라고 남을 비판합니다.

지금 바울은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이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은 네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날 대신하여 죽어주신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는 것은 또 다른 성도의 행동을 비판하는 것은 나를 위해 죽어주신 그들을 위해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못된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우리 스스로의 선행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대신 죽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저를 아껴 주시고 기도해주시는 친척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혹 저를 만나거나 전화를 하면 저를 위해서 하시는 말씀이 "양 목사 바르게 살기 위해서 목사가 되었으니 부모에게 형제들에게 잘하고 모든 일에 잘해야 되네"라고 제법 힘 주어서 권면을 합니다.

그러면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예 그래야지요 잘하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스스로 바르게 살고 선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와 같이 스스로 선하게 의롭게 될 수 없는 불쌍한 인생들을 위하여 목사가 되었습니다"

나같은 것도 사랑해 주는 이가 있어서 날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 대신 사형을 당해주시는 분이 있어서 그 은혜로 인해 구원을 받았다는 이 사실 때문에 목사가 되었고 이 귀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나와 같은 죄인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저를 도덕군자로 성인군자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여러분에게 전하고자 하는 복음의 핵심은 바로 그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의 중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죄인이 너희를 위하여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형벌을 받아 죽으셨다는 바로 그것이 복음의 핵심이요 우리가 믿는 믿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혹시 여러분들 중에 아 양 목사가 도덕적으로 아무렇게 살아도 된다고 한다 앞으로 아무렇게나 살자 라고 말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니오 분명하게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 성도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면서 이 악한 세상 이 썩어 가는 세상에서 바르게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바르게 살지 말자가 아니라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 앞에서 나는 의인입니다라고 하 수 없다는 것과 바르게 살수 없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 주님께서 대신 죽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핵심을 붙잡고 오늘 본문을 이해하시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1.형제들 앞에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을 두지 말라 
본문 13절 말씀에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라고 했습니다.
1)"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이 부분은 10절 하반절부터 12절까지의 내용에서 끌어낸 결론으로서 이제 더 이상 서로 판단(비판)하는 습관에 빠지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나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을 하면 참 괴롭습니다.
왜 자식들이 부모님을 싫다고 하고 자꾸 부모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으려고 하는 지 아십니까

부모가 자식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간섭하고 비판하고 훈계하고 하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든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서 그런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그런 비판세력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부모자식간에도 그렇다면 남남으로 만난 성도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칭찬하고 격려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위하여 라는 이름 하에 더 이상 서로를 비판하고 정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2)"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라고 했습니다.
길을 가고 있는데 그 길에다가 발에 부딪힐 돌이나 장애물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그 길에다가 함정이나 덫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마련해주신 구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 구원의 길에다가 부딪쳐서 넘어지게 하는 것이나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 덫이나 함정을 파서 빠지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구원의 길에다가 선행이라는 덫을 놓습니다
선행이라는 것을 강조한다고 누가 시비를 하겠습니까
그러나 선을 행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 덫에 걸려 넘어져서 이 구원의 길을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구원의 길에다가 율법들을 늘어놓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치 구원의 조건인 것처럼 늘어놓을 때 그것이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함정이 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구원의 길에다가 종교적 열심들을 늘어놓습니다
금식기도를 하고, 방언을 하고, 신유의 은사를 받고, 예언을 하고, 어떤 기적적인 체험을 하고, 신비한 음성을 듣고, 귀신을 쫓아내고 하는 이런 것들을 늘어놓습니다.
이런 것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들도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입니다
이 길에 날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만 우뚝 솟아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가는 길이 이 구원의 길입니다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리는 그 어떤 것도 용납을 해서는 안됩니다
아무 것도 그것을 대치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음식물 자체는 속된 것이 없다 
본문 14절 말씀에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라고 했습니다.

1)"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그 진리 안에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가진 확신이 스스로 자기 안에서 생긴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통해서 얻은 객관적인 진리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 즉 복음 안에서 갖는 확신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스스로'라는 말 '그 자체가' 혹은 '본질적으로'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주신 음식물 그 자체'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먹는 음식으로 주신 모든 것 그것 자체에는 어떤 음식물도 속(俗)된 것, 즉 불결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음식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으니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먹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딤전 4:4에서도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심으로 이 사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들에게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막 7:15-23)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 가운데는 모든 음식물이 그 자체는 깨끗하다는 사실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라는 창조 기사의 말씀에 근거를 두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바울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에 힘입어 확실하게 그렇게 믿는다고 선언했습니다,

3)'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라고 했습니다.
어떤 음식들은 속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직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구약의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으려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어떤 음식물을 깨끗하지 않다고 그의 마음에 확신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아직 믿지 못하는 사람이요 그런 그에게 있어서 그 음식물은 깨끗하지 않은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는 신자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가하여' 율법이 부정하다고 선언한 음식이 더 이상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사랑으로 행하여야 한다 
본문 15절 말씀에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식물을 인하여 근심한다고 했습니다.
식물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형제가 식물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 괴로움을 당하도록 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사랑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어떤 규칙들이 아니라 우리 형제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이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율법이 필요한 것이고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 여러 규칙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런 규칙들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보아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영원히 멸망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의 눈으로 보면 그 사람의 약점과 단점들을 보아도 오히려 그 약점을 가지고 있는 형제를 이해하게 되고 불쌍히 여기게 되고 도와주게 됩니다.
사랑이 없는 매정한 눈으로 보면 그 사람의 장점까지도 기분 나쁜 것이 되어서 시비거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율법이나 선행이나 종교행위들을 가지고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면서까지 의롭게 해 놓으신 우리 서로를 정죄하거나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설교를 마치기 전에 한 말씀 덧붙여서 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중에는 날 때부터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일평생을 술 한잔 안 마시고 담배한대 안 피우고 한눈 한번 팔지 않고 남에게 해로운 일 한번 하지 않고 바르게 살아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설교를 통해 그분들이 평생 고생하시면서 이루어 놓은 그 선한 일들을 평가절하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분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좋은 술 담배 세상향락을 거부하고 일편단심 주님만을 사랑하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들에게 특별한 상을 내리실 줄 믿습니다
별볼 일 없는 인생들도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주님을 위해 이렇게 헌신하는 사람들을 그대로 두시지 않고 특별한 상을 내리신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다만 우리의 삶에 있어서 아무리 훌륭하고 아무로 선하고 아무리 자랑할만한 삶이라고 해도 그 삶 자체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과 아울러 우리 형제들에게 그러한 삶을 살라고 요구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기준으로 형제를 판단해서도 정죄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 서로가 서로를 사랑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