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5.2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46)
본문 : 롬 13:8-9
제목 :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도산 안창호선생은 1895년 구세학당에 들어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22세 때인 1899년 평남 강서에 「점진학교」를 세웠는데 이는 점진적으로 착실하게 민족을 교육시켜야 나라가 산다는 뜻에서였습니다. 이후 신민회 흥사단을 조직하고 「민족개조론」을 대대적으로 외쳤습니다.
그가 남긴 두 가지 명언은 오늘 우리 가슴에 새롭게 다가옵니다.
『우리 민족은 무엇보다 서로 사랑해야겠습니다. 서로 사랑하면 살고 서로 물고 찢으면 망합니다』
『우리 백성이 다 손에 성경을 쥐고 사랑을 실천하는 날에야 나라가 바로설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나쁜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 선하고 어떤 사람이 악한가 하는 것을 구별하는 아주 간단하고 쉬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고 나쁜 사람입니다. 남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선하고 좋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참된 신앙인이고 어떤 사람이 명목상의 신앙인가를 구별하는 것도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자신만을 위하고 자신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요 다른 사람을 위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그 말이 우리 성도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말입니다. 성경을 들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참으로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손에 없는 사랑은 그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지 않는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을 손에 들고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가 됩니다 성경의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제아무리 많이 읽고 제 아무리 많이 외우고 제 아무리 많이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사랑의 실천이 없다면 그 사람은 성경을 잘 못 읽고 잘 못 이해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의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한 말씀은 참으로 소중한 말씀입니다.
1. 우리의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 9절 말씀에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했습니다. 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을 다 지키는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이웃이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율법사가 자기의 유식함과 자기의 의로움을 자랑하기 위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고 질문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강도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율법사의 이웃을 소개하지 않으시고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을 소개합니다.
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났는데 제사장도, 레위인도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그를 치료해주고 짐승에 태우고서 여관으로 옮기고 2 데나리온을 여관 주인에게 주고 주비가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겠다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과 사마리아 사람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냐고 묻습니다.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 누구냐는 질문에 율법사는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이웃이 누구냐고 묻던 율법사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이웃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 사람이 바로 우리의 이웃이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에게 잘 해주고 나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는 그 사람이 내가 사랑할 나의 이웃이 아니라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 사람이 나의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랑할 대상을 나에게 잘 해 주는 사람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 나보다 뭔가 나은 사람을 그 대상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나보다 못한 사람 뭔가 부족한 사람 어려워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사랑할 이웃으로 삼으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가족일 것입니다. 가족은 뭔가 우리 서로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혼자의 힘으로 살 수 없음을 아시고 서로 돕고 살도록 배필도 주시고 자녀도 주시고 부모님도 주시고 형제도 주셨습니다. 그런데 마땅히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해야 할 가족이 뭔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외면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옳지 못한 일입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때 너무나 필요한 존재입니다. 자녀가 아직 물불을 가리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없을 때 너무나 필요한 분입니다. 그 사랑과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 부모들이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자녀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잘못된 일입니다.
자녀들은 보모님들이 나이가 들어 경제적으로나 육신적으로 스스로 살 수 없을 때 절실하게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 필요한 때에 자식이 부모님을 외면하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형제는 어려울 때에 필요한 존재입니다. 형제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외면하는 형제는 참된 형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성도들의 충성이 절실하게 필요한 곳이 작은 교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작은 교회는 외면하고 충성을 하겠다고 큰 교회를 찾아가는 것은 옳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잘 하고 있는 곳에 잘 되고 있는 곳에는 사실 별 도움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들고 뭔가를 잘못해서 고통 중에 있는 곳에 우리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아내가 못났다고 남편이 성실하지 못하다고 그를 외면하고 떠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 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인 줄 알았다면 실제적으로 그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해야 합니다.
미국에 이민간 교포 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미국의 유명한 대학교에 시험을 보아서 전체 수석의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면접시간에 면접을 하고 난 이후에 그는 그 명문대학교에 입학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탈락시켰습니다. 이유는 그 학생이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아무도 도와준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면접 때 공부하느라고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라고 이야기했지만 면접교수는 우리 학교는 자네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다면서 탈락시켜 버렸다는 것입니다.
공부만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웃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역사를 위해서 쓰지 못할 공부는 더 이상의 가치를 상실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웃을 위해 가난한 사람을 위해 강도만난 사람을 위해서 도움이 되지 못할 공부는 해서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웃을 위하여 사랑을 나누어 줄 줄 모르는 사람이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중요한 직책에 앉게 된다면 그가 속한 단체는 무익한 단체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가 돈 벌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내가 열심히 살아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강도만난 사람을 위해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으면 살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치가 없는 삶을 우리가 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2. 내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 말씀에 이웃을 사랑하되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할 때 먼저 내 자신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을 드린 대로 나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남을 사랑함에 있어서 나 자신도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이 남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 <나> 혹은 <나 자신>, <내 생명> <내 영혼>이 천하보다. 소중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16:26)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천하보다 더 소중한 <자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내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만 그토록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 생명, 내 영혼을 내게 그토록 소중한 것으로 주셨기 때문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왜 내가 정말로 소중한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몇 가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다. 내가 비록 여러 가지로 부족해 보인다고 할지라도 내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떠한 생물체도 흉내를 낼 수 없는 소중한 것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내가 미워한다면 나는 죄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에 나도 나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3) 우리의 죄가 씻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고,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근거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그 근거를 마련하시고,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비하시켜서 죄책감에 시달리고 범죄한 나 자신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자신에게 죄가 그대로 있다고 고집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말갛게 씻어 주셨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입니다. 우리의 삶의 상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부자로 태어나기를 원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우리를 가난한 자로 보내셨습니다. 우리의 신분, 출생, 용모, 성격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기의 출생을 원망하고, 신분을 부끄러워하고, 외모와 성격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것이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천하보다 소중한 존재입니다. 비록 우리가 비교적 남보다 가난하고 못났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 하나님은 특별한 은혜로 의롭다 인정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오늘 본문 9절 말씀에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8절 말씀에도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1)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간음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족의 보호를 위해 부부간을 보호하기 위해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간음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고 그 가정이 파괴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가정의 파괴로 인해 그 가정을 통해 양육을 받아야 할 자녀들도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 자신의 잠시의 쾌락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2)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살인을 할 수 없습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너무 악해져서 단돈 몇 만 원 때문에 살인을 저지릅니다. 그러나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웃의 귀중한 목숨을 절대로 빼앗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남의 것을 도적질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도적질 하는 것을 꼭 직접적으로 남의 물건이나 돈을 가져올 때 도적질한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도적질의 범위는 그보다 더 넓게 적용됩니다. 남의 시간을 빼앗거나 남의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남의 인권을 빼앗거나 남에게 손해를 보게 하거나 남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들이 다 남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 이웃의 손해로 나의 이익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4)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남의 것을 탐낼 수 없습니다.
탐심은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욕심 때문에 나만을 위하고 나의 것을 남에게 줄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자신도 소중한 존재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내 자신이 나를 사랑하는 것 같이 이웃도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을 완성하는 소중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나의 가까운 가족 형제 이웃을 사랑하며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따듯한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