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믿음을 가진 자
본문 : 히브리서 10:19-25
하나님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 기준은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기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노아의 방주 심판을 하실 때에 그 기준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 사이에서 심판을 하신 것입니다.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다시 오실 예수님도 역시 심판의 기준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입니다. 다른 기준은 없습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요, 믿음이 없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구원과 심판의 기준이 바로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가정에서 믿음이 깨지면 온 전한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사회에서 믿음이 깨지면 기업이나 단체가 운영을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그 귀한 믿음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셨고,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토록 소중한 믿음을 가진 자는 어떤 자 입니까?
1.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입니다(22절).
1) 신실한 마음(참마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거룩한 보혈로 영과 몸이 모두 깨끗하게 씻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육체를 입고 사는 날 동안은 언제나 죄의 유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마음의 분노와 미움과 질투 게으름, 탐욕 등 수 많은 죄악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버리고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억지로나 부적절한 동기나 위선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순수하고 온전하고 진실한 예배의 자세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의 말씀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동기를 평가할 수 있다면 우리가 참 마음을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감찰한다는 말은 재판에 관련된 단어로서, 재판에 능숙한 재판관이 가장 적합한 판결을 내린다는 의미입니다. 거짓이 없는 참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신실한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2) 온전한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여기서 온전이라는 말은 철저한 확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확신에 찬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담대함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육체를 찢으시면서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죄책감에서 해방되어 부끄러워하지 말고 해방의 날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을 의심하지 않고 확신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의심하지 말고 확신으로 나가야 합니다. 확신이 없으면 우리를 미혹하는 많은 미혹의 영들이 우리를 넘어 트리기 위하여 접근을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이 확실하고, 구원받음이 확실하다면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3) 몸을 깨끗한 물로 씻고 나가야 합니다.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정결함을 상징하는 외적인 표시입니다. 그러나 더 심화된 의미는 이 씻음은 죄에 대한 내적인 씻음을 포함하기도 합니다. 우리 성도는 영육 간에 깨끗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점과 흠이 없는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하셨고 받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일단 깨끗함을 얻게 되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세례는 우리 성도에게 중요한 은혜의 방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공적인 표시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물로 몸을 씻는 것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회심의 표현입니다.
2.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는 자입니다(23절).
본문 23절에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굳게’라는 말은 ‘흔들림 없이’, ‘움직이지 않고’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말고 흔들림 없이 내 것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 동사는 1인칭 복수 형태를 가지고 있어 공동체적 행위의 촉구를 더욱 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전통이나 교리에 충실할 것을 말할 때 ‘굳게 잡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를 받는 사람들은 믿는 도리에 충실하라고 권고를 받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글을 주로 유대교로 되돌아갈 유혹을 받고 있거나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던 유대인 개종자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회심하여 세례를 받을 때 자신들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믿는 바를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그들이 이전에 고백하고 주장하였던 것에 머물러 있으라는 권고를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동요하지 말고 믿음을 굳게 잡아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중지하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핍박을 피하여 동굴에 숨어 살거나, 도망을 다녀야 했습니다.
우리 성도는 ‘굳게 잡는’ 기술, 즉 인생의 폭풍이 몰아치는 시기에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 묵상과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 투명성을 유지하는 습관을 훈련해야 합니다. 마음이 허락한다면 그것을 표현해야 합니다. 마음이 침울할 때 그렇다고 인정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폭우가 몰아칠 때 가장 최악의 반응은 내면의 비참한 상태를 은폐하고 즐거움을 가장하는 것입니다. 표현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3. 서로 돌아보며 격려하는 자입니다(24절).
본문 24절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돌아보라는 말은 ‘주의 깊게 관찰하라’는 말입니다. 여기 표현도 위에서 말한 ‘굳게’ 라는 표현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현재, 1인칭, 복수입니다. 이 말은 ‘굳게’라는 말과 ‘돌아보아’라는 말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협력해서 지금 도움을 주라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모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조심스럽게 사람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관찰하며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라고 합니다. 사랑은 감정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우리의 감정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다른 성도들에 대해 사랑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선행은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서 행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격려’하면서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좋은 일에 서로 자극을 받고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형제들이 사랑에 대한 열정이 계속 불타오르고 하나님께 대한 헌신이 적극적일 수 있도록 격려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격려는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열심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우리의 헌신과 주님을 기다림에 대해 태만한 모습을 보시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적절할 때에 나누는 격려의 말 한 마디로 강건한 믿음을 지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빌레몬서 1장 7절에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서로 격려하며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을 가진 자가 취해야 하는 신앙의 행동인 것입니다.
4. 함께 모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자입니다(25절).
본문 25절 말씀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교인들이 모임을 소홀히 하는 것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격려와 도움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함께 나누고 주 안에서 서로를 강하게 하기 위해 모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날이 가까워 올수록 많은 영적인 고통과 심지어 박해를 당하는 때도 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고통과 박해가 가까이 있다면 모이기에 최선을 다 할 수 있을 것인데, 평화의 시대에 정말 모이는 것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주 5일 근무는 우리의 생활 패턴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7월이면 전면 주 5일 수업을 실시한다고 하는데 걱정입니다. 하나님은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모이기에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종말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히브리서 1:2에서 예수님의 성육신하신 시점을 이미 ‘이 모든 날의 마지막’이라고 규정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해서 미래의 종말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믿음을 가진 자는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을 가진 자는 첫째,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입니다. 둘째,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는 자입니다. 셋째, 서로 돌아보는 자입니다. 넷째, 함께 모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자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구원을 받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기 이전에 이웃을 바라보는 일을 먼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웃의 고통을 살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자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을 자진 자의 행동지침입니다. 서로 격려하며 살아야 합니다. 격려는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합니다. 격려는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성도에게 주어진 믿음은 소중한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육체를 찢으시면서 주신 구원의 길에 들어갈 수 있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진 자는 이제 자신의 삶을 사는 자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9절에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멸망 받을 자가 아닙니다. 구원함에 이르는 소중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여 힘차게 일어나서 세상을 향하여 외치십시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말고 예수 믿고 구원함을 받으라고!!!
본문 : 히브리서 10:19-25
하나님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이 기준은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기준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노아의 방주 심판을 하실 때에 그 기준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 사이에서 심판을 하신 것입니다.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다시 오실 예수님도 역시 심판의 기준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입니다. 다른 기준은 없습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요, 믿음이 없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구원과 심판의 기준이 바로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믿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가정에서 믿음이 깨지면 온 전한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사회에서 믿음이 깨지면 기업이나 단체가 운영을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그 귀한 믿음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셨고,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토록 소중한 믿음을 가진 자는 어떤 자 입니까?
1.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입니다(22절).
1) 신실한 마음(참마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거룩한 보혈로 영과 몸이 모두 깨끗하게 씻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육체를 입고 사는 날 동안은 언제나 죄의 유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마음의 분노와 미움과 질투 게으름, 탐욕 등 수 많은 죄악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버리고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억지로나 부적절한 동기나 위선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순수하고 온전하고 진실한 예배의 자세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의 말씀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동기를 평가할 수 있다면 우리가 참 마음을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감찰한다는 말은 재판에 관련된 단어로서, 재판에 능숙한 재판관이 가장 적합한 판결을 내린다는 의미입니다. 거짓이 없는 참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신실한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2) 온전한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여기서 온전이라는 말은 철저한 확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확신에 찬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담대함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육체를 찢으시면서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죄책감에서 해방되어 부끄러워하지 말고 해방의 날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을 의심하지 않고 확신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의심하지 말고 확신으로 나가야 합니다. 확신이 없으면 우리를 미혹하는 많은 미혹의 영들이 우리를 넘어 트리기 위하여 접근을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이 확실하고, 구원받음이 확실하다면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3) 몸을 깨끗한 물로 씻고 나가야 합니다.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정결함을 상징하는 외적인 표시입니다. 그러나 더 심화된 의미는 이 씻음은 죄에 대한 내적인 씻음을 포함하기도 합니다. 우리 성도는 영육 간에 깨끗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점과 흠이 없는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하셨고 받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일단 깨끗함을 얻게 되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세례는 우리 성도에게 중요한 은혜의 방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공적인 표시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물로 몸을 씻는 것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회심의 표현입니다.
2.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는 자입니다(23절).
본문 23절에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굳게’라는 말은 ‘흔들림 없이’, ‘움직이지 않고’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말고 흔들림 없이 내 것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 동사는 1인칭 복수 형태를 가지고 있어 공동체적 행위의 촉구를 더욱 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전통이나 교리에 충실할 것을 말할 때 ‘굳게 잡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를 받는 사람들은 믿는 도리에 충실하라고 권고를 받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글을 주로 유대교로 되돌아갈 유혹을 받고 있거나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던 유대인 개종자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회심하여 세례를 받을 때 자신들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믿는 바를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들은 그들이 이전에 고백하고 주장하였던 것에 머물러 있으라는 권고를 듣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동요하지 말고 믿음을 굳게 잡아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중지하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핍박을 피하여 동굴에 숨어 살거나, 도망을 다녀야 했습니다.
우리 성도는 ‘굳게 잡는’ 기술, 즉 인생의 폭풍이 몰아치는 시기에도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 묵상과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 투명성을 유지하는 습관을 훈련해야 합니다. 마음이 허락한다면 그것을 표현해야 합니다. 마음이 침울할 때 그렇다고 인정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폭우가 몰아칠 때 가장 최악의 반응은 내면의 비참한 상태를 은폐하고 즐거움을 가장하는 것입니다. 표현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3. 서로 돌아보며 격려하는 자입니다(24절).
본문 24절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돌아보라는 말은 ‘주의 깊게 관찰하라’는 말입니다. 여기 표현도 위에서 말한 ‘굳게’ 라는 표현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현재, 1인칭, 복수입니다. 이 말은 ‘굳게’라는 말과 ‘돌아보아’라는 말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협력해서 지금 도움을 주라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모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조심스럽게 사람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관찰하며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하라고 합니다. 사랑은 감정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우리의 감정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다른 성도들에 대해 사랑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선행은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서 행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격려’하면서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좋은 일에 서로 자극을 받고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형제들이 사랑에 대한 열정이 계속 불타오르고 하나님께 대한 헌신이 적극적일 수 있도록 격려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격려는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열심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우리의 헌신과 주님을 기다림에 대해 태만한 모습을 보시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적절할 때에 나누는 격려의 말 한 마디로 강건한 믿음을 지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빌레몬서 1장 7절에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서로 격려하며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을 가진 자가 취해야 하는 신앙의 행동인 것입니다.
4. 함께 모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자입니다(25절).
본문 25절 말씀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교인들이 모임을 소홀히 하는 것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격려와 도움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함께 나누고 주 안에서 서로를 강하게 하기 위해 모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날이 가까워 올수록 많은 영적인 고통과 심지어 박해를 당하는 때도 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고통과 박해가 가까이 있다면 모이기에 최선을 다 할 수 있을 것인데, 평화의 시대에 정말 모이는 것이 힘들고 어렵습니다.
주 5일 근무는 우리의 생활 패턴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7월이면 전면 주 5일 수업을 실시한다고 하는데 걱정입니다. 하나님은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모이기에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종말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히브리서 1:2에서 예수님의 성육신하신 시점을 이미 ‘이 모든 날의 마지막’이라고 규정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해서 미래의 종말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믿음을 가진 자는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을 가진 자는 첫째,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입니다. 둘째,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는 자입니다. 셋째, 서로 돌아보는 자입니다. 넷째, 함께 모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자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구원을 받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은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이기 이전에 이웃을 바라보는 일을 먼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웃의 고통을 살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자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을 자진 자의 행동지침입니다. 서로 격려하며 살아야 합니다. 격려는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합니다. 격려는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성도에게 주어진 믿음은 소중한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육체를 찢으시면서 주신 구원의 길에 들어갈 수 있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가진 자는 이제 자신의 삶을 사는 자가 아니라 타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9절에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멸망 받을 자가 아닙니다. 구원함에 이르는 소중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여 힘차게 일어나서 세상을 향하여 외치십시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말고 예수 믿고 구원함을 받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