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6.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09)
본문 : 마 5:11-12
제목 :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옛날에 우리 시골 사람들이 흥얼거리며 부르던 이런 노래가 있었습니다.
교복 입고 학교 가는 너만 잘났냐. 지게 지고 산에 가는 나도 잘났다.
똑 같이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어떤 사람은 부자 집에 태어나서 상급학교에 진학을 해서 교복을 입고 학교엘 가고 어떤 사람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지게나 지고 땔감을 하러 산으로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지게를 등에 지고 산으로 올라가면서 멀리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아이를 보면 얼마나 부러웠겠습니까?
엊그제만 해도 같이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친구라도 이렇게 서로 다르다는 것을 느낀 소년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래서 그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지게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릅니다.
교복입고 학교 가는 너만 잘났냐. 지게 지고 산에 가는 나도 잘났다.
시골서 불렀던 그 노래를 도시 사람들도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승용차 타고 출근하는 너만 잘났냐. 대중교통 이용하는 나도 잘났다
얼굴고와 예쁜 너 너만 잘났냐. 주름 많아 늙은 나 나도 잘났다
돈 많아서 양주 먹는 너만 잘났냐. 돈 없어서 소주 먹는 나도 잘났다
공부 잘해 대학가는 너만 잘났냐. 공부 못해 대학 못간 나도 잘났다
오~ 젠젠젠 젠틀맨이다 예 오 젠젠젠 아 젠틀맨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어디에 가나 빈부의 차이가 있고 잘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골이 점점 갈수록 더 깊어지고 한번 가난하게 되면 대대로 가난이 세습이 되어서 회복이 되지 않는 그런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한 주간 내내 고민을 하면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팔복 설교를 끝내고 종합을 해서 우리가 참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라는 제목을 잡아놓고 제목 때문에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행복한 사람일까?
뭘 가지고 우리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지금 우리의 형편으로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백화점에 세일이나 해야 뭐 좀 사러가지만 어떤 사람은 백화점 전체를 싸게 내놓는 것 없나 보러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작은 연립주택 하나도 가지지 못하고 사는데 어떤 사람들은 아파트는 당연히 있는 것이고 저 경치 좋은 곳에 별장 한두 개는 가지고 있고 골프장 만들 만한 땅도 몇 필지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로또 복권이나 하나 맞아야 10-20억 가질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해마다 연봉을 10-20억씩 받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어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참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지지리도 복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우리가 참 복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우리가 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시는가를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1.성경이 말하는 복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복과는 다릅니다.
성경에는 복이라는 말이 엄청나게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나서 바로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하신 산상보훈에서 복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시편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시편 1편의 말씀에서도 복 있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의 교훈에서는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 성경 중심을 흐르고 있는 일관된 사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순종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 복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 오해들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1)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
동양 사람들은 오복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장수하는 것이고(壽, 수),
둘째는 재물을 많이 모으는 것이고(富, 부),
셋째는 건강한 것이고 (康寧, 강녕),
넷째는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듣는 것이고(攸好德, 유호덕),
다섯째는 죽을 때 객사하지 않고 자기 집에서 편안하게 숨지는 것(考終命, 고종명)이라고 합니다.
복이란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으면서 건강하게 오래 살다가 집안에서 평안하게 죽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복 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들이 이런 것들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면 복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을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복 있는 사람이다.
성경말씀에서도 이런 것들을 나쁜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노력을 해서 이런 것들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경말씀대로 살면 이렇게 건강하기도 하고 장수하기도 하고 돈을 많이 모으기도 하고 칭찬을 받기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복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2)성경이 말하는 복
구약성경에서 복이라는 번역된 말이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라크(barak)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을 때 쓰신 단어입니다(창1:28).
'바라크'가 구약에서 복이란 말로 제일 많이 사용된 말입니다.(파생어까지 포함하여 415회 정도 나옴)
이 말의 어원은 “무릎을 꿇다”에서 온 말입니다.
무릎을 꿇다. 라는 말에서 찬송하다 송축하다 축복하다 이런 뜻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바라크라는 단어는 주로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축복할 때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었거나, 신적 권위를 가진 대리인에 의한 축복선포 때 사용되었습니다.
인간의 선행과 관계없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은혜로 긍휼과 자비를 베푸실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이 바라크는 우리가 잘 아는 율로게오로 번역이 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말로 칭찬을 해주시고 우리가 서로에게 복을 빌 때 사용하는 율로게오가 바로 이 바라크에서 온 말입니다.
또 하나는 아솨르(ashar)라는 단어입니다.
시편에서 복 있는 사람을 말 할 때 쓴 단어입니다(시1:1).
이 단어는 곧장 가다. 전진하다. 인도하다. 에서 온 말입니다.
이 '아솨르'는 대개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 안에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 대한 보상으로 내리는 복을 말합니다.
이 아솨르가 팔복에서 말하는 '마카리오스'로 번역된 복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두 단어가 약간은 다른 각도로 사용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같은 뜻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생각이 됩니다.
즉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받는 복이나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로 가면서 받는 복이나 결국은 같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받는 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부귀영화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바르게 순종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 그것을 복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에베소서 1장에 기록된 신령한 복을 말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엡 1:3).라고 하신 말씀에서 그 신령한 복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우리가 받는 복입니다.
팔복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도 결국은 이런 뜻을 가진 복입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가짐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복을 참된 복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2.성경이 말하는 복이란 세상에서 오히려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세상에서도 잘 살고 하나님나라에서도 잘 살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도 잘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바른 길도 가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잘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살면 이 세상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행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이나 요셉이나 모세나 다윗 그리고 솔로몬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 세상에서도 성공한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다 잘 알지 못하고 또 마음이 죄로 물들어 있어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노력해서 성공하고 사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성경의 역사에서도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기적도 체험하지 못하고 특별한 능력도 받지 못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보통의 삶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오히려 고난을 당하면서 삽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손해를 보면서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팔복의 말씀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복 있는 삶을 사는 것인지를 배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심령의 가난은 육신의 가난에서 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은 부자로 재물을 많이 모아서 사는 것이 복이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이란 모든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 복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지만 사람들은 오늘도 재물을 모아보겠다고 난리입니다.
애통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생각하면서 울어야 합니다. 자녀들을 생각하면서 울어야 합니다.
교회를 생각하면서 나라를 생각하면서 죽어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생각하면서 애통해 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웃고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재미있게 기쁘게 사는 것도 좋겠지만 때로는 이 말씀을 붙잡고 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사람 그러면서도 의로운 사람 편에 서서 바른 말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면서 그 의를 위해서 살려고 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더 나아가서 자비를 베풀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까지도 이해와 용서와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에 있는 온갖 욕심들 나쁜 생각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깨끗한 양심으로 살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나 때문에 모든 사람이 평화로워지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참된 평화를 누리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의를 위해서 즉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위해서 욕을 먹고 핍박을 당하고 악한 말을 듣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복은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성경이 말하는 복이 참된 복입니다.
팔복에는 복이 있는 사람들의 복 받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복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를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 여덟 가지의 복을 크게 주 가지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첫 번째 복에서 나타나는 천국과 마지막 복에서 나타나는 천국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복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복이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라고 했는데 이 천국을 우리가 이 세상사는 동안에 우리 안에 이루어진 천국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들에게 주는 복인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의 복을 우리가 가서 살게 될 새 하늘과 새 땅 영원한 천국의 복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1)이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는 하나님나라 천국에서 삽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에덴동산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거기에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사는 아담과 하와를 거기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인간이 있고 그 공간인 에덴동산이 있는 곳 그곳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합니다.
인간의 배반으로 그 하나님나라가 무너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 나라를 재건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깨끗한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죄인 중에서 구해내셔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이 세상이 아닌 새 하늘과 새 땅에 다시 에덴동산과 같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는 것입니다.
그곳이 우리가 가서 살게 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중간에서 우리가 사는데 그런 우리를 위해서 우리 각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나라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셔서 천국에 가기 전에 미리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이루어진 이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가난해질 때 심령이 가난해질 때 더 강한 나라가 됩니다.
세상에서 더 밀려나올 때 더 천대받을 때 강해지는 나라입니다.
며칠 전에 제 친구가 사는 아파트에 놀러갔다가 왔습니다.
삼사십평 남짓한 아파트라고 하는데 정말로 크고 좋아보였습니다.
거기 갔다가 온 후로 입에 흥얼거리는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우울해 왜냐고 묻지 말아요. 아직도 나는 우울 해 그 친구 집 갔다 온 후로....”라는 노래가 있는데 왜 그 노래가 자꾸 입에서 무심결에 흘러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거기 가기 전에는 제가 사는 집에 아무 불만이 없었는데 괜히 거기 가 가지고 비교를 해 보니까 좀 울적해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 본성의 마음인가 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상에서 내가 작아질수록 내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더 커질 거라고 위안을 삼아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좋은 집에 살지 못하고 좋은 차타고 다니지 못한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우리 마음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강성해지고 더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는 서로 반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더 많은 것을 소유할수록 여러분의 마음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는 약해질 것입니다.
세상에 가진 것이 없고 의지할 데가 없어질수록 하나님의 나라는 더 강해질 것입니다.
이 강해진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갖 좋은 것들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사는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고생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더 가까이 오셔서 우리를 위로해주실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하나님은 별명이 보혜사이십니다.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보호해주시고 변호해 주시는 분이 보혜사성령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외로울 때 우리가 약해질 때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때 성령님께서 변호해주시고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배부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강성해지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참된 만족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으로 줄 수 없는 참된 만족을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눈으로 보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를 보게 되고 참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의 기준 십자가의 복음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고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자가 되어서 이 세상을 살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 무엇을 가지고도 바꿀 수 없는 이런 지위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는 자들이요 하나님나라를 상속받을 상속자가 되어서 그 변화된 신분으로 이 세상을 산다는 것입니다.
2)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이렇게 불완전한 하나님나라를 살고 있지만 이제 머지않아서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기다라면서 그 나라를 준비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고 큰 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그 날을 기다리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이 세상에서 잘 살다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아 멸망 길로 달려갈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입니까?
우리는 비록 이 세상에서 좀 못살고 어려움을 당하지만 하나님나라에서 이미 살고 있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은 너무나 복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나는 행복합니다. 라고 고백하시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 마 5:11-12
제목 :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옛날에 우리 시골 사람들이 흥얼거리며 부르던 이런 노래가 있었습니다.
교복 입고 학교 가는 너만 잘났냐. 지게 지고 산에 가는 나도 잘났다.
똑 같이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어떤 사람은 부자 집에 태어나서 상급학교에 진학을 해서 교복을 입고 학교엘 가고 어떤 사람은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지게나 지고 땔감을 하러 산으로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지게를 등에 지고 산으로 올라가면서 멀리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아이를 보면 얼마나 부러웠겠습니까?
엊그제만 해도 같이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친구라도 이렇게 서로 다르다는 것을 느낀 소년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래서 그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지게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릅니다.
교복입고 학교 가는 너만 잘났냐. 지게 지고 산에 가는 나도 잘났다.
시골서 불렀던 그 노래를 도시 사람들도 부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승용차 타고 출근하는 너만 잘났냐. 대중교통 이용하는 나도 잘났다
얼굴고와 예쁜 너 너만 잘났냐. 주름 많아 늙은 나 나도 잘났다
돈 많아서 양주 먹는 너만 잘났냐. 돈 없어서 소주 먹는 나도 잘났다
공부 잘해 대학가는 너만 잘났냐. 공부 못해 대학 못간 나도 잘났다
오~ 젠젠젠 젠틀맨이다 예 오 젠젠젠 아 젠틀맨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어디에 가나 빈부의 차이가 있고 잘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골이 점점 갈수록 더 깊어지고 한번 가난하게 되면 대대로 가난이 세습이 되어서 회복이 되지 않는 그런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한 주간 내내 고민을 하면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팔복 설교를 끝내고 종합을 해서 우리가 참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라는 제목을 잡아놓고 제목 때문에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행복한 사람일까?
뭘 가지고 우리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지금 우리의 형편으로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백화점에 세일이나 해야 뭐 좀 사러가지만 어떤 사람은 백화점 전체를 싸게 내놓는 것 없나 보러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작은 연립주택 하나도 가지지 못하고 사는데 어떤 사람들은 아파트는 당연히 있는 것이고 저 경치 좋은 곳에 별장 한두 개는 가지고 있고 골프장 만들 만한 땅도 몇 필지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로또 복권이나 하나 맞아야 10-20억 가질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해마다 연봉을 10-20억씩 받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어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참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지지리도 복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우리가 참 복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우리가 왜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시는가를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1.성경이 말하는 복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복과는 다릅니다.
성경에는 복이라는 말이 엄청나게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나서 바로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하신 산상보훈에서 복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시편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시편 1편의 말씀에서도 복 있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의 교훈에서는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 성경 중심을 흐르고 있는 일관된 사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순종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 복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 오해들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1)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복
동양 사람들은 오복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장수하는 것이고(壽, 수),
둘째는 재물을 많이 모으는 것이고(富, 부),
셋째는 건강한 것이고 (康寧, 강녕),
넷째는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듣는 것이고(攸好德, 유호덕),
다섯째는 죽을 때 객사하지 않고 자기 집에서 편안하게 숨지는 것(考終命, 고종명)이라고 합니다.
복이란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으면서 건강하게 오래 살다가 집안에서 평안하게 죽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복 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들이 이런 것들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면 복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을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복 있는 사람이다.
성경말씀에서도 이런 것들을 나쁜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살면서 노력을 해서 이런 것들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경말씀대로 살면 이렇게 건강하기도 하고 장수하기도 하고 돈을 많이 모으기도 하고 칭찬을 받기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복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2)성경이 말하는 복
구약성경에서 복이라는 번역된 말이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라크(barak)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복을 주셨을 때 쓰신 단어입니다(창1:28).
'바라크'가 구약에서 복이란 말로 제일 많이 사용된 말입니다.(파생어까지 포함하여 415회 정도 나옴)
이 말의 어원은 “무릎을 꿇다”에서 온 말입니다.
무릎을 꿇다. 라는 말에서 찬송하다 송축하다 축복하다 이런 뜻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바라크라는 단어는 주로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축복할 때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었거나, 신적 권위를 가진 대리인에 의한 축복선포 때 사용되었습니다.
인간의 선행과 관계없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은혜로 긍휼과 자비를 베푸실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이 바라크는 우리가 잘 아는 율로게오로 번역이 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말로 칭찬을 해주시고 우리가 서로에게 복을 빌 때 사용하는 율로게오가 바로 이 바라크에서 온 말입니다.
또 하나는 아솨르(ashar)라는 단어입니다.
시편에서 복 있는 사람을 말 할 때 쓴 단어입니다(시1:1).
이 단어는 곧장 가다. 전진하다. 인도하다. 에서 온 말입니다.
이 '아솨르'는 대개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 안에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 대한 보상으로 내리는 복을 말합니다.
이 아솨르가 팔복에서 말하는 '마카리오스'로 번역된 복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두 단어가 약간은 다른 각도로 사용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같은 뜻을 나타내는 단어라고 생각이 됩니다.
즉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받는 복이나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로 가면서 받는 복이나 결국은 같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받는 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부귀영화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바르게 순종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 그것을 복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에베소서 1장에 기록된 신령한 복을 말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엡 1:3).라고 하신 말씀에서 그 신령한 복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우리가 받는 복입니다.
팔복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도 결국은 이런 뜻을 가진 복입니다.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가짐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복을 참된 복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2.성경이 말하는 복이란 세상에서 오히려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세상에서도 잘 살고 하나님나라에서도 잘 살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도 잘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바른 길도 가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잘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살면 이 세상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행복을 누리면서 살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이나 요셉이나 모세나 다윗 그리고 솔로몬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 세상에서도 성공한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다 잘 알지 못하고 또 마음이 죄로 물들어 있어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 노력해서 성공하고 사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성경의 역사에서도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기적도 체험하지 못하고 특별한 능력도 받지 못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보통의 삶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오히려 고난을 당하면서 삽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손해를 보면서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팔복의 말씀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복 있는 삶을 사는 것인지를 배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심령의 가난은 육신의 가난에서 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은 부자로 재물을 많이 모아서 사는 것이 복이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이란 모든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 복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지만 사람들은 오늘도 재물을 모아보겠다고 난리입니다.
애통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생각하면서 울어야 합니다. 자녀들을 생각하면서 울어야 합니다.
교회를 생각하면서 나라를 생각하면서 죽어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생각하면서 애통해 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웃고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재미있게 기쁘게 사는 것도 좋겠지만 때로는 이 말씀을 붙잡고 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사람 그러면서도 의로운 사람 편에 서서 바른 말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면서 그 의를 위해서 살려고 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더 나아가서 자비를 베풀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까지도 이해와 용서와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에 있는 온갖 욕심들 나쁜 생각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깨끗한 양심으로 살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나 때문에 모든 사람이 평화로워지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참된 평화를 누리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의를 위해서 즉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위해서 욕을 먹고 핍박을 당하고 악한 말을 듣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시는 복은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성경이 말하는 복이 참된 복입니다.
팔복에는 복이 있는 사람들의 복 받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복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를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 주고 있습니다.
그 여덟 가지의 복을 크게 주 가지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첫 번째 복에서 나타나는 천국과 마지막 복에서 나타나는 천국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복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복이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라고 했는데 이 천국을 우리가 이 세상사는 동안에 우리 안에 이루어진 천국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들에게 주는 복인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의 복을 우리가 가서 살게 될 새 하늘과 새 땅 영원한 천국의 복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1)이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는 하나님나라 천국에서 삽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에덴동산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거기에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사는 아담과 하와를 거기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인간이 있고 그 공간인 에덴동산이 있는 곳 그곳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합니다.
인간의 배반으로 그 하나님나라가 무너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 나라를 재건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깨끗한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죄인 중에서 구해내셔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이 세상이 아닌 새 하늘과 새 땅에 다시 에덴동산과 같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는 것입니다.
그곳이 우리가 가서 살게 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중간에서 우리가 사는데 그런 우리를 위해서 우리 각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나라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셔서 천국에 가기 전에 미리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 마음에 이루어진 이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가난해질 때 심령이 가난해질 때 더 강한 나라가 됩니다.
세상에서 더 밀려나올 때 더 천대받을 때 강해지는 나라입니다.
며칠 전에 제 친구가 사는 아파트에 놀러갔다가 왔습니다.
삼사십평 남짓한 아파트라고 하는데 정말로 크고 좋아보였습니다.
거기 갔다가 온 후로 입에 흥얼거리는 노래가 하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우울해 왜냐고 묻지 말아요. 아직도 나는 우울 해 그 친구 집 갔다 온 후로....”라는 노래가 있는데 왜 그 노래가 자꾸 입에서 무심결에 흘러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거기 가기 전에는 제가 사는 집에 아무 불만이 없었는데 괜히 거기 가 가지고 비교를 해 보니까 좀 울적해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 본성의 마음인가 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상에서 내가 작아질수록 내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더 커질 거라고 위안을 삼아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좋은 집에 살지 못하고 좋은 차타고 다니지 못한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우리 마음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는 더욱 강성해지고 더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는 서로 반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더 많은 것을 소유할수록 여러분의 마음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는 약해질 것입니다.
세상에 가진 것이 없고 의지할 데가 없어질수록 하나님의 나라는 더 강해질 것입니다.
이 강해진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갖 좋은 것들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사는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고생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더 가까이 오셔서 우리를 위로해주실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하나님은 별명이 보혜사이십니다.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보호해주시고 변호해 주시는 분이 보혜사성령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외로울 때 우리가 약해질 때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때 성령님께서 변호해주시고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배부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강성해지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참된 만족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으로 줄 수 없는 참된 만족을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눈으로 보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를 보게 되고 참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의 기준 십자가의 복음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고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아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을 자가 되어서 이 세상을 살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 무엇을 가지고도 바꿀 수 없는 이런 지위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받는 자들이요 하나님나라를 상속받을 상속자가 되어서 그 변화된 신분으로 이 세상을 산다는 것입니다.
2)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이렇게 불완전한 하나님나라를 살고 있지만 이제 머지않아서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기다라면서 그 나라를 준비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고 큰 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나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그 날을 기다리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이 세상에서 잘 살다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아 멸망 길로 달려갈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입니까?
우리는 비록 이 세상에서 좀 못살고 어려움을 당하지만 하나님나라에서 이미 살고 있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은 너무나 복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나는 행복합니다. 라고 고백하시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